가만히 끌어안다 - 죽음과 마주한 과학자 게리 씨의 치유 여행기
게리 홀츠.로비 홀츠 지음, 강도은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호주 원주민의 치유법을 담은 책 『가만히 끌어안다』는 서정적인 책 이름에 끌려서 읽게 되었다. 다만 ‘자연 치유’, ‘대안 의학’이란 말 앞에서 조금 망설여졌다. 과학이나 현대 의학을 부정하고 좀 별난 사람들이 찾는 책이 아닐까란 생각 때문이다. 일단 선입견을 내려놓고 책이 무얼 말하려는가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사십 대 물리학자이자 사업가인 게리 홀츠는 다발성경화증을 앓게 되면서 2년 안에 생을 마감하리란 선고를 받는다. 게리는 아주 우연히 재즈바에서 자연치유사를 만나게 되고 어떤 끌림으로 호주의 원주민 부족을 찾아 떠나는 치유의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감각이 없는 몸을 휠체어에 의지한 채 미국에서 호주까지 날아갔고 레이와 로즈라는 자연치유사를 만난다. 게리는 몸이 굳어져가는 자신의 병처럼 몸뿐 아니라 마음, 영혼, 감정이 마비되어 있었다. 그의 몸은 그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병의 증상보다 병의 원인에 집중하라고 말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았던 게리는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었다. 어릴 적 아버지와 같은 공간에 있을 때마다 숨죽여 가만히 있거나 그 자리를 얼른 회피해 버리려고 했다. 어릴 적 상처는 아내나 자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게 했으며 결혼의 실패로 이어졌다. 자연치유사는 몸-마음-영혼-감정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며 ‘기꺼이 하려는 마음’, ‘알아차리기’, ‘받아들이기’, ‘힘 부여하기’, ‘집중하기’(77쪽)의 다섯 가지 중요한 과정을 거쳐 치유에 이른다고 설명한다. 호주 원주민 부족이 사는 그 열악한 곳에서 게리는 하루하루 치유의 걸음을 내디딘다.

치유의 과정은 물리치료와 영적인 배움(상담)으로 계속되었다고 하는데 물리치료에 대한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자연치유사가 게리한테서 이끌어내는 상담은 상당히 깊이가 있어 보였다. 계속되는 치유를 통해 게리는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한다.
“아버지가 가진 힘은 단지 환영일 뿐이었다. 마음만 먹었다면 언제든지 거기서 걸어 나올 수 있었다.”(113쪽) “연민에 대해 많은 걸 배웠습니다. 만일 다발성 경화증을 앓지 않았더라면 나는 결코 삶의 속도를 늦추지 않았을 겁니다...타인의 고통을 전혀 공감하지 못했을 겁니다.”(123쪽)

종교인이라면 호주 원주민 사이에서 오랜 세월 전해 내려온 자연 치유를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자신이 믿고 있는 신의 기적이 이러한 방법을 덧입고 표현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또 책에서 미처 소개되지 않은 물리치료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을지, 몸에 대한 해부학적 지식이 있어야 하지 않을는지, 상담만으로 온전한 치유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끌어안다』는 포근히 나를 안아주는 책이었다. 자연치유사들이 내 마음과 감정을 툭툭 건드려 주었고 모른 척하거나 무뎌있던 감수성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상처받은 영혼은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을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선명하게 마주보고, 거기서 분명히 벗어나, 새롭게 시작하는 과정이 게리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책에 빽빽하게 줄을 그어가며 읽는 동안 내게 상처를 준 누군가가 떠올랐고 그와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누군가를 가만히 끌어안을 때 스스로를 가만히 끌어안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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