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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인생의 문장들
오다시마 유시 지음, 송태욱 옮김 / 푸른숲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책을 읽다가 밑줄을 긋고 싶은 문장을 만난다. 마음속으로 공감이 되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그런 문장 말이다. 이런저런 인생살이에서 얻은 나만의 가치 같은 것이 단지 내 생각만은 아니었구나 싶어 반갑고, 때론 내 경험치를 뛰어넘는 한 수 위의 문장들이 나를 설레게도 한다.
“사랑은 그림자 같아서 쫓아가면 달아난다네, 쫓아가면 달아나고 달아나면 쫓아온다네. Love like a shadow flies when substance love pursues; Pursuing that flies, and flying what pursues.”<<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제2막 제3장. 쫓아가면 도망가고 도망가면 쫓아오는 연인의 변덕을 그림자에 비유한 멋진 표현이다(48쪽).
“자비란 의무에 의해 강제되는 게 아니오, 하늘에서 내려와 저절로 대지를 적시는 가뭄의 단비 같은 것이오. The quality of mercy is not strain'd, it droppeth as the gentle rain from heaven upon the place beneath.”<<베니스의 상인>> 제4막 제1장, 이른바 법정 장면. 여기서는 포셔의 입을 통해 셰익스피어 자신의 인간관이 울려 퍼지는 듯하다. 인간은 누구든 약한 부분, 어리석은 부분이 있고 실수를 저지르기 쉬운 존재이므로 정의를 관철하기보다는 자비로 서로를 용서하는 것이 인간적이지 않겠는가 하는(110쪽).
“신들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얼마간의 결점을 주었소. you, gods, will gives us some faults to make us men.”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제5막 제1장. 인간은 결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결점이 있기에 사랑할 만한 존재라는 것이다(317쪽).
『셰익스피어, 인생의 문장들』 에는 셰익스피어가 남긴 서른일곱 편의 극작품 속의 명문장 백 개가 선별되어 있다. 이를 가려낸 이는 일본의 셰익스피어 연구 일인자, 오다시마 유시 교수다. 사랑의 기쁨과 슬픔, 남과여, 미덕의 가르침과 악덕의 속삭임, 슬픔의 전율, 사물을 보는 방식, 영혼의 외침, 인간의 진실과 저편이란 소제목만 보더라도 인생을 함축해 놓은 것 같다. 이 소제목 아래에 놓인 명문장 앞에서 마음을 움직이는 강한 공감이 생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접하지 못했더라도 각 작품의 줄거리와 배경을 간략히 소개해 줘서 이해를 도왔다. 그리고 명문장 해설 뒤에, 저자의 경험이 담긴 짧은 글이 실려 있는데 자못 흥미로웠다. 조금은 익살스럽고 엉뚱한 글을 읽으면서 저 멋진 문장도 우리네 삶 속에서는 이렇게 소박하게 적용될 수 있구나 싶었다.
하나, 우려가 된 점이 있었다. 영어 문장을 일본어로 번역하고, 다시 그것을 한국어로 옮기면서 저자만의 번역 색깔이 우리 말로도 잘 옮겨졌을까 하는 의아함이 남긴 한다.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로 잘 알고 있는 햄릿의 대사를 저자는 “이대로 있어도 될까, 안 될까, 그것이 문제로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question.” 으로 번역한 걸 보면 말이다.
셰익스피어의 문학이 훌륭한 이유는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서 인간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거리’ 들이 수북이 들어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그 가운데서 백미만 쏘옥 빼놓은 명문장들을 만나본 경험은 흥미로웠다. 더 나아가 셰익스피어의 문학 작품 속으로 빠져들고 싶은 마음도 생겨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