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첫 문장 -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세계문학의 명장면
윤성근 지음 / MY(흐름출판)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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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 책 제목과 책 표지의 이미지를 대충 훑고는 첫 장을 들춰 첫 문장을 눈 여겨 본다. 특히 소설의 첫 문장은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는지 상상력을 돋우기도 하고,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하는 힘이 있다. 작가가 선보인 처음 문장이 내 구미에 맞을 때 그 책은 내 마음을 끌고 간택 당하게 된다.

 

헌 책방 주인, 윤성근이 쓴 책 <<내가 사랑한 첫 문장>>은 제목만으로 내 마음을 끌어내기 충분했다. 23편의 소설 첫 문장과 만날 수 있는 설렘을 주기 때문이다. ‘이상한나라의헌책방이란 이름도 어여쁜 가게를 운영한다는 저자는 어릴 적부터 책을 많이 읽어온 책쟁이었다. 1 때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독일어 원서로, 심지어 제2외국어로 배운 적도 없는 언어로 원서를 읽어내려는 무모한 시도만 보더라도 책에 대한 열정이 잘 나타난다. 책 후반부로 갈수록 책 읽기에 대한 저자의 개인 경험이 드러나는 부분도 흥미로웠다. 특히 소설가가 말하는 이야기를 듣는 방법을 저자만이 터득한 방식으로 설명해 주는 부분도 재미있었다. 가령 아무리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 책을 어떻게 이해하고 넘어갈 것인가? 에 대해서 저자는 소설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거나 완전히 그 반대인 삶을 산다. 어떤 소설가들은 자신이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거나 할 필요가 없다는 걸 얘기하고 싶어서 소설을 쓴다.”(358) 라는 관점을 말하면서 어떻게 어려운 글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지침을 제시해 준다.

 

과연 저자가 사랑한 첫 문장의 주인공이 되는 작품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상의 <<날개>>,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 두 편이 우리 문학이며 나머지 스물한 편은 유럽의 여러 나라와 미국, 일본, 러시아, 이란 작가들의 소설이었다. 낯익은 작가가 있는가 하면 신선한 작가들도 만날 수 있었는데 우리 문학을 넘어 방대한 세계 문학으로 눈길을 돌릴 수 있어 좋았다. 그럼, 이 가운데 내가 사랑한 첫 문장은 무엇이 될까? 나는 어느새 이 문장을 나지막히 소리내어 읽고 있었다.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 혀끝이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 걷다가 세 걸음 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린다. . . .”(143)

롤리타신드롬, 뭐 이런 건 제쳐두련다. <<롤리타>>의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소녀 롤리타(Lo-lee-ta) 이름을 꼭 소리내어 불러보게 만든다. 혀끝은 /l/발음과 /t/발음을 하기 위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 그 이름을 불러보며 사랑스런 소녀 롤리타를 또 한 번 마음 속에서 불러 보게 된다.

 

첫 문장이 가지는 힘은 대단하다.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첫 문장 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51)처럼 첫 문장에 주인공의 캐릭터가 다 들어가 있는 문장이 있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의 첫 문장 상당한 재산을 가진 독신 남성에게 틀림없이 아내가 필요할 것이라는 사실은 널리 인정된 진리다.”(221)처럼 책의 제목과 주제를 고스란히 한 문장에 담은 문장도 있다. 첫 문장의 매력은 분명 우리를 책 속으로 이끈다. 책 속으로 빠져든 후, 더 풍성하고 깊은 책의 세계로 매료되고 싶다면 <<내가 사랑한 첫 문장>>을 읽었으면 한다. 첫 문장이 소설을 읽게 하는 첫 걸음이라면, 그 걸음 이후 여기저기를 흥미롭고 즐겁게 다닐 수 있게 이끌어주는 책이 바로 <<내가 사랑한 첫 문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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