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들이 겪는
일상폭력과 마주하다
차마 끔찍하고 잔혹해서
두 눈을 뜨고 읽어내지 못한다. 책을 잠시 내려놓고 마음을 가다듬은 뒤 다시 일상폭력의 희생자들을 만난다. 그들이 겪는 실상을 마주해야 비로소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알게 되니까. 페루, ('꽃보다~' 로
시작되는 케이블 TV 여행 프로그램에서 만난 그 곳은 아름다운 잉카문명이 꽃피었던 곳에 불과했던 곳이었다.) 그 나라 한 동네에서 가난한 여덟 살 소녀 유리는 성폭행을 당하고 처참하게 살해된 뒤 가해자의 집 앞에 버려진다. 가해자의 집에서는 소녀가 입었던 옷이며 혈흔까지 무수한 증거물들이 발견되었지만 법 앞에서 가해자는 무죄였고, 소녀의 죽음은 가난한 사람이 운없이 당한 한낱 사건에 불과했다. 가해자는
부유했고 경찰과 검찰, 판사에 이르기까지 돈으로 손쉽게 매수되었다. 그
나라에서 제대로 된 법 집행은 기대도 할 수 없었다.
하루 2달러로 살아가는 세계 곳곳에 있는 빈민들을 돕는 손길들은 많다.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식량을, 배우지 못하는 아이에게 교육의 기회를,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의료의 혜택을 주고자하는 NGO단체와 그를 후원하는 마음 착한 이들을 쉽게 만난다. 우리 집 아이들도 방글라데시의 한 남자 아이를 돕기 위해 집안 일을 열심히 하고 얻은 용돈 3만원을 매달 후원단체에 보낸다. 그런데 정작 개발도상국가에 사는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그들이 겪는 가장 큰 고통은 '일상폭력'에 있었다. 여자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 이유를 들어볼 때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학교는 성폭력이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곳이며 가해자는 다름 아닌 교사와 학생들이었다. 개도국에서는 값싼 노동력에 폭력을 당하며 노예와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 매음굴에
끌려가는 소녀들, 가해자를 처벌할 수도 없는 성폭행의 희생자들, 토지를
빼앗겨 도시 빈민가로 내쫓기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왜 가난한 자들은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을까? 책의 여러 장에 걸쳐서 저자는 그 원인을 반복해서 힘주어 말한다. 개도국의 경찰과 검찰은 돈에 매수되어 가진자의 편에 서 있고, 그
나라에 좋은 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법을 집행하는 공공 사법제도가 작동하지 않아서라고 말이다. 말라리아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먼저 할 일은 모기장을 치고 살충제를 뿌리는 일이지 빈곤이 퇴치되기를 기다리는 일은 아닐 것이다. 마찬가지로 극빈자들의 폭력을 줄이기 위해 빈곤이 해결되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고 가해자를 처벌하고 사법질서를
먼저 정립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 게리 하우겐은 글로벌 인권단체
IJM(International Justice Mission)설립자이며 대표이다. 그 단체는
개도국의 가난한 사회에서 일상 폭력에 신음하는 피해자들-노예살이를 하고, 성폭력을 당하고, 땅을 빼앗기고 경찰에 짓밟히고, 불법 구금되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있다. 책의 후반부에서 그들의
프로젝트와 활약들을 볼 수 있다. 책을 읽으며 의로운 분노에 사로잡혔던 내게 큰 위로가 된 대목이었다. 이제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세계 빈곤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바꾸어야 한다. 빈곤 뒤에 숨어있는 폭력을 제대로 마주해야 하며 그에 대해 말해야
한다. 제대로 집행되지 않는 형사사법 제도에 대해서도 말해야 한다. 후원금
몇 푼으로 하루 끼니를 때울 지는 몰라도 온갖 폭력에 시달린 마음을 달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폭력> 책 속에서 세계 빈곤의 민 낯을 만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