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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라 그래 (양장)
양희은 지음 / 김영사 / 2021년 4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 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내 맘의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 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내 맘의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 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아침 이슬, 양희은
가수 양희은 님께서 부르신 ‘아침 이슬’이라는 노래의 가사를 가져와 봤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아침 이슬’과 ‘양희은’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듯싶은데, 20대인 나만 해도 피아노 학원에서 ‘유명 노래 모음집’ 곡을 배우면서 초등학교 때부터 알게 되었다. 아침 이슬이 발매된 1971년에는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민주화 운동을 상징하는 노래가 되어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다고 한다. ‘아침 이슬’뿐만 아니라 양희은 님의 ‘엄마가 딸에게’라는 곡은 전국의 수많은 학생들, 딸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다. 구세대부터 신세대까지, 적게는 10대부터 7~80대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때로는 위로를, 공감을, 마음을 대변하는 노래를 부르신 양희은 님은 우리에게 한없이 따뜻한 이미지로 남아 있다.
노래와 글이 주는 울림이 비슷한 사람
가수 양희은이 아닌, 작가 양희은 님의 글은 어떨까? 글을 쓰는 사람의 이미지와 그가 쓴 글의 이미지는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 한없이 착하고 순해 보이는 사람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사회를 비판하는 글을 쓴 작가일 수도 있고, 진지하고 무거워 보이는 사람이 유쾌한 소설 작가일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의 이미지를 가지고 그의 글을 판단하면 안 되고, 그의 글을 가지고 그 사람의 이미지를 멋대로 판단할 수 없다. 반면, 글과 작가가 놀랍도록 일치하는 경우도 존재하는데, 양희은 님의 신간 에세이 『그러라 그래』를 읽으면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대중에게 알려진 양희은 님의 이미지와 글의 분위기가 정확하게 일치한다. 당시 시대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로 많은 사람들을 울렸던 양희은 님은, 글로도 우리에게 ‘나대로 살면 그만이지’라는 위로를 건네주신다. 마침 좋은 기회로 김영사에서 가제본을 먼저 받아 출간 전 미리 읽을 수 있었다.
가수이자 방송인, 작가이기도 한 양희은 님은 1952년 서울에서 태어나셨다. 어렸을 적 아버지가 돌아가신 바람에, 일찍이 돈벌이를 하기 위해 사회생활에 뛰어드셨다. 당장 먹고 살기 위해 마이크를 집어들었고, 1971년에 첫 정규앨범 ‘아침 이슬’을 발매하셨다. 이후 본격적으로 가수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많은 노래를 부르셨다. 1981년에는 미국과 유럽 등으로 여행을 떠나셨지만,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난소암 진단을 받았고 이 시기가 ‘인생의 분기점’이라고 칭할 만큼 삶을 바꿔놓은 때였다고 한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뒤 힘겨운 암 투병 끝에 기적적으로 완치되었다. 지금까지 가수, 방송인, 라디오 디제이로 노래 부르고 이야기하며 지내오셨다. 또한 양희은 님은 <월간 여성 시대>에 글을 기고하는 작가 활동도 하셨다. 지금은 절판된 산문집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 <월간 여성 시대>에 쓴 글을 수정하고 더하여 음악 인생에 대한 짧은 글을 모아 만든 에세이가 바로 『그러라 그래』이다.
가제본으로 먼저 만나본 『그러라 그래』
내가 받은 가제본 『그러라 그래』의 목차는 이러하다.
1. 무얼 하며 이 좋은 날들을 보냈나
2. 사실 노래에 목숨을 걸진 않았다
3. 어떻게 인생이 쉽기만 할까
4. 좋아하는 걸 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두고
5. 나대로 살면 그만이지
목차 하나당 총 9편의 글이 실려 있고,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는 주제들과 관련된 글을 묶어 놓았다. 1장에서는 흘러간 세월을 추억하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겪었던 에피소드들, 떠오르는 생각들이 담겨 있다. 2장에서는 작가님의 노래 인생, 3장에는 살아오면서 겪었던 고난, 아픔들을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4장에는 제목 그대로 작가님이 좋아하시는 것들, 강아지, 남편, 요리 등에 대한 글이 있다. 마지막 5장에는 다른 사람이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나대로 살면 그만이지 라는 작가님의 인생철학이 녹아 있는 글들이 모아져 있다.
타인의 삶에 대한 글은 간접 체험의 장
사람이 꿈을 꾸는 이유는, 아직 내게 벌어지지 않은 일들을 미리 체험하고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글이라고 해서 다를 것 없다. 꿈이 무의식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라면 글은 언어를 통해 스며와 내 의식 속에서 벌어지는, 간접 체험의 장이다. 약 50년간 치열하게 가수 생활과 방송 생활을 하셨고, 세월에 굴하지 않으시고 여전히 젊은 세대와 소통하시는 작가님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에세이를 읽으면서 내가 살아보지 않은 나이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친구들과 서로의 노후 준비를 이야기하면서, 그들과 다르게 일을 그만두지 않고 살아가는 작가님은 나는 이대로 괜찮은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셨다고 한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나 걱정하는 20대의 고민과, 작가님의 고민의 결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업을 구하지 못해서 고민인 사람과 직업을 그만두지 않아서 고민인 사람. 결국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끝나지 않는 것이다. 어차피 끝나지 않을 고민, 곱씹으며 괴로워하는 대신, 마음 편하게 먹고 살아가야겠다는 위안을 얻는다.
위로를 말하는 한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라디오에서 사연을 읽으며, 사연이 방송된다고 실질적으로 당사자의 현실에 도움이 될 수 없다는 생각에 회의적일 때도 있으셨다고 한다. 우리도 가끔, 힘든 일 겪는 친구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갈피조차 잡히지 않고, 나의 위로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아 힘이 빠질 때가 있다. 하지만 결국 입 밖으로 글을 소리 내어 읽고 위로와 공감, 또는 음악을 전하는 건 어떻게든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이다. 위로는 결코 아무것도 아닌 일이 아닌 것이다. 오랫동안 다른 분들의 사연을 읽어 오시면서 얻어낸 이러한 결론에 담긴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자기 사연을 남의 목소리로 들으면서 객관화가 되고, 비슷한 처지의 누군가가 그 얘길 들으면서 공감하며 응원해주는 것을 경험한다. 이렇듯 보이지 않는 파장이 서로를 연대시키며 거대한 어깨동무를 만들어낸다. 그것이 세상을 묶어주는 띠가 되어 기댈 곳 없는 마음을 잡아주기도 한다."
『그러라 그래』 (가제본) 147p
책 마지막에는 '그러라 그래'라고 하시며 나대로 살아도 괜찮다는 위로를 전하신다. 타인에 평가에 휘둘리지 않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건 아무런 대가 없이 가능한 일이 아니다. 숱하게 넘어지고, 상처받고, 눈물 흘려본 다음에 다시 일어나 나를 돌아보는 과정에서 가질 수 있는 마음가짐이라고 말씀하신다. 작가님의 이 말씀이 지금은 이렇게 눈치 보고 걱정하며 괴로워하지만, 언젠가는 ‘그러라 그래’ 이 한 마디가 내 속에서 저절로 생각날 수 있겠지라며 낙관할 수 있는 힘이 된다.
"모두 결국 자기의 테두리 안에서 딱 아는 만큼만 볼 뿐이다. 그러니 남의 말에 휘둘리고 상처받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에 대해서 네가 뭘 알아!’하고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라 그래』 (가제본) 225p
"그러라 그래. 그건 어디까지나 당신 생각일 뿐이야."
『그러라 그래』 (가제본) 227p
양희은 님의 오랜 팬은 물론이고 작가 양희은, 가수 양희은 님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 읽어보신다면 좋겠다. 에세이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기 때문에 단순한 팬심을 넘어, 존경심까지 느낄 수 있는 글이다. 또, 남녀노소 독자층에 구애받지 않는 글이기에 누구에게나 추천한다.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는 따뜻한 인생 선배의 조언이 되고, 동년배들에게는 공감과, 치열한 삶을 산 작가님의 열정이 전해져 오는 책일 것이다. 서점에서 이 책과 조우하게 되면, 망설이지 말고 집어 들라고 권하고 싶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