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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울리히 알렉산더 보슈비츠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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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수정의 밤’이라는 사건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꽤나 낭만적인 이름으로 보이기도 한다. 거리에 어지러이 흩어진 유리 덩어리에서 유래된 ‘수정의 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어난 유대인 박해의 출발점이었다. 독일 외교관인 에른스트 폼 라트가 폴란드계 유대인 헤르셀 그린슈판의 총을 맞고 사망하자, 1938년 11월 9일 전국의 돌격대원과 친위대 등 나치 회원들이 유대인 사회를 공격하였다. 유대인이 운영하는 상점, 유대인의 저택, 백화점 등이 약탈당했고 예배당과 묘지까지 모두 훼손되었다. 강제 수용소로 보내지기도 하였다. 유대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잡히지 않기 위해 도망 다니며 언제 또 다시 습격받을지 몰라 불안에 떨었다. 특히 유대인 박해가 막 시작되는 시점이었기에 그들은 더욱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울리히 알렉산더 보슈비츠의 『여행자』는 ‘수정의 밤’ 사건을 바탕으로 유대인에 대한 주변 독일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한 유대인이 겪는 심리적 고통을 자세히 묘사한 책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안네의 일기』보다 앞선 고발 문학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이 책이 작가 모국어인 독일어로 출간되기까지 80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바로 유대인이었던 작가 자신의 기구한 삶 때문이다. 1938년에 ‘수정의 밤’ 사건을 겪은 뒤 곧바로 4주 만에 집필한 『여행자』는 1939년에 영국, 1940년에 미국에서 출간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에서 지냈던 저자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맨 섬의 수용소로 끌려갔다. 이후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스의 수용소로 옮겨 갔다가 다시 영국으로 귀환하게 된다. 배를 타고 영국으로 귀환하는 길, 독일 잠수함이 쏜 어뢰로 인한 배의 침몰로 저자는 다시는 세상의 빛을 볼 수 없게 되었다. 27세의 젊은 나이었다. 원고를 잃는 게 죽기보다 두려웠다고 말한 저자는, 영국으로 귀환하는 배에서 수정된 여행자 원고를 가지고 있었다. 고쳐 쓴 원고를 미리 어머니에게 보냈지만 전달되지 않았다. 단지 그가 쓴 초고만 남아 있었을 뿐이다. 2018년, 독일인 편집자가 초고를 다듬어 출간하였고, 『여행자』는 우리에게 왔다. 


주인공 오토 질버만은 사업가로, 아내와 함께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서서히 유대인을 이방인 취급하는 독일 사람들의 태도에 혼란을 느낀다. 독일에 존재하는 유대인 때문에 자신이 이렇게 되었다며 같은 유대인을 혐오하기도 한다. 그는 ‘수정의 밤’ 사건 당일, 나치의 갑작스러운 습격으로 하룻밤 사이 여행자, 아니 도망자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 간신히 도망쳐 수용소에 끌려가는 상황은 면했지만, 고난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집을 떠나 호텔에 묵기로 했지만, 가만히 누워 있으면 덮쳐오는 불안을 그는 견디지 못했다. 함께 사업하는 친구에게 찾아가 보기도 하고, 국경을 넘는 시도도 해 보고, 아리아인 아내가 피신하고 있는 처남의 집에도 방문하지만 결과는 모두 참담했다. 함께 사업하는 친구는 그를 배신했고, 벨기에 국경을 넘다 경찰에게 붙잡혔으며, 처남은 유대인 질버만을 받아줄 수 없다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주인공에게 그나마 편안한 장소는 바로 기차 안. 움직이는 기차 안에 있으면 독일 전역을 돌아다니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고 안심한다. 언제까지나 기차를 갈아타며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주인공이 맞이하게 될 최후는 과연 무엇일까. 궁금하다면 직접 읽어 보기 바란다. 


『여행자』는 박해받는 유대인을 묘사한 단순한 소설이 아니다. 질버만은 유대인이면서도 독일인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기독교로 개종한지도 오래다. 사업가로 부유한 생활을 해 오면서 그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은 어떠한 문제도 되지 않았기에, 변해버린 상황이 너무 낯설게 느껴진다.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불안에 떨면서도 거리의 유대인을 욕한다. 또한 웃음거리가 된다며 유대인 질버만을 내치던 처남에게 분노의 감정을 느끼면서 기차에서 만난 노인에게는 웃음거리가 된다는 비난을 내뱉는다. 이 얼마나 모순적 상황인가. 질버만의 심리가 당시 독일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무관심도 질버만의 혼란을 가중시킨다. 시간이 지날수록 질버만은 점점 이성을 놓고 악에 받쳐 소리친다. 나는 습격 받은 유대인이다, 법과 경찰은 나를 지켜줘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며 여행을 계속해야 한다고 되뇐다. 질번만 스스로를 도망자가 아닌, 여행자로 칭하는 것은 정당한 이유 없이 박해받는 자신은 죄가 없다는 최후의 소신 표현이 아닐까. 


​“나는 유대인을 좋아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아요. 관심이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유능한 사업가라는 점에는 감탄하지요. 그들이 뭔가 부당한 일을 겪는다면 유감이긴 하지만 놀라지는 않습니다. 세상사가 다 그래요. 한쪽이 파산하면 다른 쪽은 성공하는 법입니다.

『여행자』 30p


​이런 식으로 계속할 수 있을 거야, 나는 이제 여행자다. 끝없이 계속 움직이는 여행자.

나는 안전해, 지금 움직이고 있잖아.

『여행자』 24p

​영원히 이런 식으로 계속될까? 

여행하고, 기다리고, 도주하고? 

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지? 

왜 나를 붙잡고, 체포하고, 때리지 않을까? 

나를 절망의 끝으로 몰고 가 거기 서 있게 만드네.

『여행자』 295p


『여행자』의 번역가 전은경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지쳐서 여행을 그만두려는 여행자는, 모든 것을 견디기 위해 생각을 그만둔 우리 사회의 유대인은 누구일까.” 팬데믹 시대에, 바이러스의 근원지라며 쉽게 분노 표출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쉽게 타인에게 잘못을 돌리고,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며 신경 쓰지 않는 태도의 희생양들이다. 이들이 고통받도록 놔두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혐오와 증오의 대상 만들기를 멈춰야 하는 때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여행자』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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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라 그래 (양장)
양희은 지음 / 김영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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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 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내 맘의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 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내 맘의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 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아침 이슬, 양희은


가수 양희은 님께서 부르신 ‘아침 이슬’이라는 노래의 가사를 가져와 봤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아침 이슬’과 ‘양희은’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듯싶은데, 20대인 나만 해도 피아노 학원에서 ‘유명 노래 모음집’ 곡을 배우면서 초등학교 때부터 알게 되었다. 아침 이슬이 발매된 1971년에는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민주화 운동을 상징하는 노래가 되어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다고 한다. ‘아침 이슬’뿐만 아니라 양희은 님의 ‘엄마가 딸에게’라는 곡은 전국의 수많은 학생들, 딸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다. 구세대부터 신세대까지, 적게는 10대부터 7~80대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때로는 위로를, 공감을, 마음을 대변하는 노래를 부르신 양희은 님은 우리에게 한없이 따뜻한 이미지로 남아 있다. 



​노래와 글이 주는 울림이 비슷한 사람


가수 양희은이 아닌, 작가 양희은 님의 글은 어떨까? 글을 쓰는 사람의 이미지와 그가 쓴 글의 이미지는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 한없이 착하고 순해 보이는 사람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사회를 비판하는 글을 쓴 작가일 수도 있고, 진지하고 무거워 보이는 사람이 유쾌한 소설 작가일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의 이미지를 가지고 그의 글을 판단하면 안 되고, 그의 글을 가지고 그 사람의 이미지를 멋대로 판단할 수 없다. 반면, 글과 작가가 놀랍도록 일치하는 경우도 존재하는데, 양희은 님의 신간 에세이 『그러라 그래』를 읽으면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대중에게 알려진 양희은 님의 이미지와 글의 분위기가 정확하게 일치한다. 당시 시대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로 많은 사람들을 울렸던 양희은 님은, 글로도 우리에게 ‘나대로 살면 그만이지’라는 위로를 건네주신다. 마침 좋은 기회로 김영사에서 가제본을 먼저 받아 출간 전 미리 읽을 수 있었다.


​가수이자 방송인, 작가이기도 한 양희은 님은 1952년 서울에서 태어나셨다. 어렸을 적 아버지가 돌아가신 바람에, 일찍이 돈벌이를 하기 위해 사회생활에 뛰어드셨다. 당장 먹고 살기 위해 마이크를 집어들었고, 1971년에 첫 정규앨범 ‘아침 이슬’을 발매하셨다. 이후 본격적으로 가수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많은 노래를 부르셨다. 1981년에는 미국과 유럽 등으로 여행을 떠나셨지만,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난소암 진단을 받았고 이 시기가 ‘인생의 분기점’이라고 칭할 만큼 삶을 바꿔놓은 때였다고 한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뒤 힘겨운 암 투병 끝에 기적적으로 완치되었다.  지금까지 가수, 방송인, 라디오 디제이로 노래 부르고 이야기하며 지내오셨다. 또한 양희은 님은 <월간 여성 시대>에 글을 기고하는 작가 활동도 하셨다. 지금은 절판된 산문집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 <월간 여성 시대>에 쓴 글을 수정하고 더하여 음악 인생에 대한 짧은 글을 모아 만든 에세이가 바로 『그러라 그래』이다.


가제본으로 먼저 만나본  『그러라 그래』


내가 받은 가제본 『그러라 그래』의 목차는 이러하다. 


1. 무얼 하며 이 좋은 날들을 보냈나

2. 사실 노래에 목숨을 걸진 않았다

3. 어떻게 인생이 쉽기만 할까

4. 좋아하는 걸 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두고 

5. 나대로 살면 그만이지


​목차 하나당 총 9편의 글이 실려 있고,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는 주제들과 관련된 글을 묶어 놓았다. 1장에서는 흘러간 세월을 추억하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겪었던 에피소드들, 떠오르는 생각들이 담겨 있다. 2장에서는 작가님의 노래 인생, 3장에는 살아오면서 겪었던 고난, 아픔들을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4장에는 제목 그대로 작가님이 좋아하시는 것들, 강아지, 남편, 요리 등에 대한 글이 있다. 마지막 5장에는 다른 사람이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나대로 살면 그만이지 라는 작가님의 인생철학이 녹아 있는 글들이 모아져 있다. 



타인의 삶에 대한 글은 간접 체험의 장


사람이 꿈을 꾸는 이유는, 아직 내게 벌어지지 않은 일들을 미리 체험하고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글이라고 해서 다를 것 없다. 꿈이 무의식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라면 글은 언어를 통해 스며와 내 의식 속에서 벌어지는, 간접 체험의 장이다. 약 50년간 치열하게 가수 생활과 방송 생활을 하셨고, 세월에 굴하지 않으시고 여전히 젊은 세대와 소통하시는 작가님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에세이를 읽으면서  내가 살아보지 않은 나이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친구들과 서로의 노후 준비를 이야기하면서, 그들과 다르게 일을 그만두지 않고 살아가는 작가님은 나는 이대로 괜찮은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셨다고 한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나 걱정하는 20대의 고민과, 작가님의 고민의 결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업을 구하지 못해서 고민인 사람과 직업을 그만두지 않아서 고민인 사람. 결국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끝나지 않는 것이다. 어차피 끝나지 않을 고민, 곱씹으며 괴로워하는 대신, 마음 편하게 먹고 살아가야겠다는 위안을 얻는다. 


위로를 말하는 한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라디오에서 사연을 읽으며, 사연이 방송된다고 실질적으로 당사자의 현실에 도움이 될 수 없다는 생각에 회의적일 때도 있으셨다고 한다. 우리도 가끔, 힘든 일 겪는 친구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갈피조차 잡히지 않고, 나의 위로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아 힘이 빠질 때가 있다. 하지만 결국 입 밖으로 글을 소리 내어 읽고 위로와 공감, 또는 음악을 전하는 건 어떻게든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이다. 위로는 결코 아무것도 아닌 일이 아닌 것이다. 오랫동안 다른 분들의 사연을 읽어 오시면서 얻어낸 이러한 결론에 담긴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자기 사연을 남의 목소리로 들으면서 객관화가 되고, 비슷한 처지의 누군가가 그 얘길 들으면서 공감하며 응원해주는 것을 경험한다. 이렇듯 보이지 않는 파장이 서로를 연대시키며 거대한 어깨동무를 만들어낸다. 그것이 세상을 묶어주는 띠가 되어 기댈 곳 없는 마음을 잡아주기도 한다."

 『그러라 그래』 (가제본) 147p


책 마지막에는 '그러라 그래'라고 하시며 나대로 살아도 괜찮다는 위로를 전하신다. 타인에 평가에 휘둘리지 않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건 아무런 대가 없이 가능한 일이 아니다. 숱하게 넘어지고, 상처받고, 눈물 흘려본 다음에 다시 일어나 나를 돌아보는 과정에서 가질 수 있는 마음가짐이라고 말씀하신다. 작가님의 이 말씀이 지금은 이렇게 눈치 보고 걱정하며 괴로워하지만, 언젠가는 ‘그러라 그래’ 이 한 마디가 내 속에서 저절로 생각날 수 있겠지라며 낙관할 수 있는 힘이 된다. 


"모두 결국 자기의 테두리 안에서 딱 아는 만큼만 볼 뿐이다. 그러니 남의 말에 휘둘리고 상처받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에 대해서 네가 뭘 알아!’하고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라 그래』 (가제본) 225p


"그러라 그래. 그건 어디까지나 당신 생각일 뿐이야."

『그러라 그래』 (가제본) 227p


양희은 님의 오랜 팬은 물론이고 작가 양희은, 가수 양희은 님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 읽어보신다면 좋겠다. 에세이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기 때문에 단순한 팬심을 넘어, 존경심까지 느낄 수 있는 글이다. 또, 남녀노소 독자층에 구애받지 않는 글이기에 누구에게나 추천한다.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는 따뜻한 인생 선배의 조언이 되고, 동년배들에게는 공감과, 치열한 삶을 산 작가님의 열정이 전해져 오는 책일 것이다. 서점에서 이 책과 조우하게 되면, 망설이지 말고 집어 들라고 권하고 싶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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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의 키워드 - 미래를 여는 34가지 질문
김대식 지음 / 김영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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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는 바야흐로 디지털 시대, 하도 많이 들어서 귀가 따가울 정도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우리들이다. 특히 코로나 19로 인해 바깥에서의 활동이 거의 불가능한 요즘은 학교 수업, 근무, 회의 등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이루어진다. 사담을 좀 늘어놓자면, 내가 휴대폰을 잡고 있을 때 애용하는 커뮤니티들이 있다. 같은 학교 학생들이 사용하는 에브리타임, 블로그, 재미있는 글을 올리는 계정을 잔뜩 팔로우해 놓은 트위터, 그리고 유튜브. 이런 커뮤니티의 가장 큰 장점은 접근성이 뛰어나고, 그 내용에 대해 깊이 사색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짤막한 영상, 사진, 혹은 단순히 웃음 지을 수 있는 유머러스한 내용들이나 혹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자극적인 범죄, 이슈들이 쏟아져내린다. 읽으면 1차원적인 감각만 살아나고 생각을 담당하는 뇌의 한 부분은 기능하지 않는 것 같다. 사색하는 시간을 내지 않고 살아가는 것. 지금 당장 어떤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지만 삶의 질적인 부분에서 손상을 입게 될 수 있다. 내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하지 않으면 내가 주인인 삶을 살지 못하게 된다. 그 사색을 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 바로 『김대식의 키워드: 미래를 여는 34가지 질문』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34가지의 키워드를 가지고 미래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질문을 던진다. part1, part2, part3 로 나뉘어져 있고 외로움, 펜데믹, 음모론, 악, 예술, 사랑...등의 주제를 가지고 쓴 3~4장의 짤막한 글이 계속 이어져있는 형식이다.


우리가 보통 문과와 이과를 구분해 생각하지만, 사실 둘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과학 기술을 말할 때는 우리 삶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설명하기 위해서 철학이 등장해야 한다. 또, 과학 기술의 동향을 살펴볼 때면 과거의 일을 거울로 삼지 않을 수 없기에 역사를 말해야 한다. 그렇기에 인문학과 과학의 언어로 써진 글, 『김대식의 키워드: 미래를 여는 34가지 질문』 같은 글은 꼭 필요하다.


인상 깊게 읽었던 키워드 몇 개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팬데믹: 인류의 동반자


“너무나도 복잡해진 세상에서 여전히 단순한 원인을 기대하는 인간에게 재앙은 언제나 누군가의 ‘죄’에 대한 ‘벌’이며, 죄를 씻어내고 뿌리 뽑아야만 세상은 다시 안전하고 행복해질 수 있어 보였다.” 24p


“과학과 기술은 인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 하지만 인류를 현실의 불행에서 해방시켜 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과학과 기술, 논리와 이성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28p


인과관계를 이해하도록 만들어진 뇌 때문에 항상 원인과 결과를 찾으려고 하는 인간이다. 펜데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데, 전염병이 창궐하면 그 이유를 어떤 민족이나 종교 집단 등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몰아간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마찬가지이다. 원인을 찾으려고 특정 집단을 꼬집어 비난하거나 피해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타인에게 원인을 돌리고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 기술과 논리로 이 상황을 극복하는 것이 핵심이다.


대도시: 제 2의 바벨탑


기원전 등장한 초기 대도시는 자연의 연장선이었다. 하지만 인류 첫 메트로폴리스 ‘우루크’이후의 도시는 자연과의 단절을 의미하게 되었다. 오히려 도시의 인프라와 무역 네트워크 없이는 살기 힘들어졌다. 20세기의 개개인은 도시라는 기계를 돌리는 톱니바퀴가 되어 버렸고, 작고 힘없는 개인을 대신해서 자아의 두려움을 해소시켜주겠다는 이데올로기가 등장한다. 바로 전체주의 사상의 나치와 소련 공산당이다. 그리고 미래의 대도시는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속에 존재할지도 모른다. 과거 도시의 기원이 자연으로부터의 안식처, 자연과의 단절이었다면 현대 도시는 현실로부터의, 실제 세계로부터의 도피와 단절로 형성되는 게 아닐까. 올덕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속 사람들은 ‘소마’라는 약을 복용하여 조금이라도 불편한 상황이 닥치면 회피하고 쾌락에 빠져든다. 어쩌면 그 ‘소마’가 가상현실이라는 형태로 만들어진 게 아닐지.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도피를 통해 현실의 고통을 무마시키면 따라오는 결과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세상: 보고픈, 외면하고픈, 상상하는


“세상은 아마도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인식하는 순간 세상은 더 이상 논리적으로 독립적인 존재가 아닌 ‘나’라는 존재의 한 부분이 된다.” 78p


“하지만 언어의 해상도가 인식의 해상도보다 낮기에 우리는 서로 다르게 보는 세상을 동일한 단어를 써서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79p


“언어라는 불완전한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한 순간, 인간은 무한으로 다양한 세상을 단 하나라고 착각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80p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은 각자 다르지만, 그걸 잘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언어의 한계 때문이다. 내가 사는 세상이 전부라는, 좁은 시야를 가지고 살아왔다는 걸 깨닫게 된 글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주어로 놓고 글을 쓰는 것, 타인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부지런한 사랑이라고 이야기한 이슬아 작가의 말이 생각난다. 세상은 단 하나라는 생각이 착각이라는 걸 인지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중 하나가 남을 주어로 두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해서 그 착각이라는 것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책의 만듦새에 대한 내용 역시 뺴놓을 수 없다. 뇌과학뿐만아니라 철학, 예술, 역사 등의 분야를 속속들이 꿰뚫고 있는 저자답게, 글의 서두는 대부분 왼편 실려 있는 그림에 관한 이야기다. 책을 읽을 때 꼭 한번 그림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런데 그림에서 알아볼 수 있는 색들은 노란색과 파란색 뿐이다. 그리고 그 그림 위에는 키워드에 맞게 매우 현대적인 아이콘이 그려져 있다. 예를 들면, 키워드 ‘게임’에서는 검투사끼리 죽고 죽이는 원형경기장의 풍경을 담은 그림에는 노란색으로 GAME OVER라는 글자가 쓰여져 있다. 오히려 노란색과 파란색의 테마가 단순히 옛 그림을 감상하는 ‘인문학 산책’용 책이 아님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펜데믹 시대에서 살아가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앞으로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다. 그렇다고 쉽게 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책은 정답을 알려주는 도구가 아니다. 사유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역할을 한다. 나도 사색이란 걸 해보고 싶다, 펜데믹 시대에 걸맞는 교양을 읽어보고 싶다, 하시는 분들에게 『김대식의 키워드; 미래를 여는 34가지 질문』을 추천한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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