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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평점 :
더위 때문일까? 감동은 없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책을 읽고 아무런 느낌이 없고 덥기만 하다. 김애란의 글이 이젠 너무 뻔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대다수의 독자들은 나와는 정반대로 생각하는 것 같다. 알라딘 100 자평도 그렇고, 네이버 블로그들의 서평도 그렇다. 마치 '아이돌'이라도 대하듯 온통 감동의 물결이다. 눈물을 흘렸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바깥은 여름>이란 제목은 더위가 한창인 지금 딱 들어맞는,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왜 작가는 책에다가 이런 제목이 붙었을까? '풍경이, 계절이, 세상이 우리만 빼고 자전하는 듯, 시간은 끊임없이 앞을 향해 뻗어나가는데, 어느 한순간에 붙들린 채 제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을 때, 그때 우리는 어디로 갈 수 있을까'라는 작가의 말에서 제목의 작명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바깥은 여름>이라는 제목은 <바깥은 천국인데, 내 마음은 지옥이다>라고 해석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김애란 작가는 이야기를 통해 신파조의 눈물을 만들어내는데 익숙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결 건조해진 문체와 신파가 어우러져 묘한 슬픔을 자아낸다. 그리고 글이 경쾌한 느낌은 사라지고 탁한 느낌이 강해졌다. 다만 글의 호흡이 이전보다 늦추어져 읽기에 편한 것 같다. 그런 면에선 '김애란은 역시 김애란이다.'라는 감탄사가 나올만하다.
단편들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소설은 <노찬성과 에반>이다. 찬성은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데, 어느 날 집으로 개를 끌고 와서 에반이라고 이름 짓고 기르게 된다. 그런데 이 노견은 동물병원에서 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는다. 찬성은 에반의 안락사를 위해 전단지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은다. 하지만 이래저래 돈을 쓰다 보니 에반을 위해 안락사 주사를 살 돈이 모자란다. 그런데 어느 날 집에 돌아오니 에반이 보이지 않는다... 슬픈 이야기지만 아름답다. 동화로 읽어도 좋을 작품이다.
<침묵의 미래>는 작심하고 상을 타기 위해 쓴 소설 같다. 읽기도 힘들고 감동도 없는 관념소설이다. 그녀는 이 단편소설로 이상문학상을 거머쥐었다. 나머지 단편들은 다른 작가들에 의해서도 자주 활용된 소재를 사용하고 있어, 빛나는 김애란 작가의 글 솜씨에도 불구하고 나에겐 진부했다. <입동>은 어린이집 차에 치여 숨진 아이를 잊지 못하는 엄마의 심정과 이웃들의 호기심이 담겨있다. <건너편>은 노량진 공무원 시험 준비하며 만난 남녀가 한 명만 합격하면서 벌어지는 이별 이야기다. <풍경의 쓸모>는 어린 시절 엄마와 자식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와 교수 승진을 앞둔 아들에 관한 이야기다. <가리는 손>은 다문화 가정 이야긴데 특이하게 아빠가 외국인이다. 아빠가 자기 나라로 돌아간 후 남겨진 엄마와 아이의 이야기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남편을 사별하고 영국 사촌 언니 댁에 간 주인공의 심적 치유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김애란 작가의 소설집을 읽다가, 문득 1999년 씨랜드 참사 때(수련원에서 화재사고로 19명의 유치원생과 4명의 교사가 숨졌다) 자신의 아이가 죽은 것에 항의해 뉴질랜드로 이민 간 부부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들은 하느님을 원망하며 종교도 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세월호 참사 때 모 언론사가 그 부부를 어렵사리 인터뷰했다. 이럴 때는 언론사의 하이에나 근성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기어코 언론사는 부부가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자신의 죽은 아이가 생각나서 날마다 울며 술을 마신다는 말을 끌어냈다. 아물던 상처를 덧내고 만 것이다. 그 부부의 아픔이야 당하지 않은 사람은 헤아리기 힘들지만, 그 아픔 때문에 뉴질랜드로 이민까지 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죽음과 이별에 대해서는 애도의 기간이 필요하다. 그 슬픔을 가슴에서 다 퍼내기 위해 울음의 시간이 필요하다.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나만 고통당하고 나만 괴로운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방문을 싹 닫아거는 것은 문제가 된다. 언젠가는 그 슬픔을 끝내야 하며 스스로를 치유해야 한다. 눈물을 닦고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다시 사람들 곁으로 나서야 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하다못해 반려견이라도 곁에 있어야 한다. 무정한 세상을 탓해 보았자, 세상은 여전히 제 갈 길로 바삐 달려갈 뿐이다. 결국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다. 남을 탓하고 원망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