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복희씨
박완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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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엔 공짜란 없는 법이다. 나이들어가는 것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곱게 늙어간다'라는 우리네 속담은 그러한 맥락에서 톺아야만 그 의미가 오롯이 드러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박완서의 {친절한 복희씨}는 말의 진정한 의미에서 곱게 나이들어간다는 게 어떤 것인지 몸소 작품으로 증명하고 있다. 

표제작을 포함하여 9편의 단편들로 꾸린 {친절한 복희씨}에서도 여전히 에피파니의 섬광을 발하면서 서사의 전면에 반복적으로 변주되는 대상은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인간 본성으로서의 위선과 허위의식 등이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예전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맹렬한 적의와 가차없는 혐오의 시선을  통해 확연한 전선을 구축하고 있었던 예전의 작품들에 비해 이번 작품집에서는 관용과 화해의 시선을 통해 그것들을 넉넉하게 품어 안는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까 예전의 작품들이 인간 본성의 이중성을 바닥까지 드러내고야 말겠다는 일본의 사소설적 욕망의 에너지로 충만해 있었다면 이번 작품들에서는 인간 본성의 이중성을 너그럽게 인정하고 화해하는 에너지로 충만해 있다.

{호미}의 머릿말에서 박완서 선생은 "내 나이에 6자가 들어 있을 때까지만 해도 촌천살인의 언어를 꿈꿨지만 요즈음 들어 나도 모르게 어질고 따뜻하고 위안이 되는 글을 소망하게 되었다. 아마도 삶을 무사히 다해간다는 안도감-나잇값 떄문일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있다. 그 말의 진정성을 이번 작품집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온통 '왜소한 개인들의 사소한 욕망'들이 지배하는 이 부박한 세상에 그래도 박완서 선생 같은 작가와 어른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 한켠이 든든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나이들어가면서 닮고 싶은 모델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적지 않은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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