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코디언
천명관 지음 / 창비 / 2026년 6월
평점 :
예약주문


전쟁의 잔상이 시대와 삶에 녹아들어 있던 시절, 누군가의 기억 속 스쳐 지나간 장면의 배경처럼 흐리게 남아 있을 아이들의 이야기.

가장 낮고 시린 곳에서 가장 약한 이들이 기어이 서로의 온기를 붙들고 끝내 미미하게 짐작한 빛을 좇는 과정이 문장을 타고 쏜살같이 흘러간다. 마치 촘촘한 주름으로 몸집을 크게 부풀렸다가 수축하기를 반복하는 아코디언 연주를 보는 것처럼 굴곡지면서도 깊다. 진주가 진흙탕 속에 빠져 있어도 진주는 진주이듯, 지난한 어둠 속에 파묻혀 있어도 사람은 사람다워야 함을 지켜내는 용기를 여리고 말캉하기만 할 것 같은 아이들을 통해 깨닫는다.

SF나 도파민을 자극하는 소재의 소설이 늘어나는 현재에 지극히 현실적인 시선으로 과거의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 얼마나 귀한가 생각하게 된다. 이 소설은 내게 있어 '고래'를 품고서 세월에 무르익은 천명관이라는 이름에 더해지는 독자로서의 기대치를 충분히 채워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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