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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파라다이스 1
한야 야나기하라 지음, 권진아 옮김 / 시공사 / 2023년 12월
평점 :
읽어본 적은 없지만 들어는 본 알페스란게 이런 걸까? 같은 작가의 리틀 라이프를 읽을 때도 느꼈던 부분인데 등장인물들이 전혀, 전~혀 공감이 되질 않고 일부러 노린건가 싶을 정도로 역겹다 못해 혐오스러운 감정마저 들게 한다. 남자, 여자라는 등장인물들의 설정이 유의미한가 싶을 정도로 등장하는 남자들중 그 누구도 manly한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다.이 정도면 다분히 의도한 바라고 믿고는 싶지만, 마치 사춘기 소녀가 아이돌을 보며 상상하여 등장인물들을 묘사한듯 한 불쾌한 골짜기마저 느껴지는 듯 하다. 그들은 달콤한 것만 찾고 질질 짜기 바쁜데다 여고생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병석에 누은 찰스가 뒤척거렸나 몸을 일으켰나 아무튼 움직이자 자기 줘패려는줄 알고 쫄아서 움찔하며 경계하는 데이비드의 모습에선 실소가 터져나왔다. 에드워드나 데이비드 같은 남성형 이름을 그냥 다른 여성형 이름으로 치환해도 전혀 문제가 없어보인다.
분명히 밝히지만 나는 호모포비아가 아니고 제각기 다른 사랑의 형태들 모두를 존중한다.(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를 볼때는 적어도 이런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대체역사물이니 충분히 SF적 설정을 곁들여도 될듯 싶은데 1893년인가 하는 시점에 사람들이 통신하는 방식은 여전히 편지고 이동수단은 마차다. 건국의 아버지 같이 유력하고 존경받는 가문(가문이라는 표현에 주목하라) 빙험 가문의 삼남매가 모두 동성결혼을 했다. 할아버지도 ‘우리 같은 사람들‘이란 표현를 자주 사용한다. 이게 실제로 또는 확률적으로 가능한지는 픽션이니 제쳐두더라도 그들이 속한 주State는 동성결혼에 자유롭고 관대하다 못해 일종의 장려까지 하는 듯 하다.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이 캘리포니아 같은 다른 주에 가면 결혼 인정을 받기는 커녕 박해를 받으리란 묘사도 등장한다. 아무튼 가문의 다음 세대를 도대체 어떻게 번성하는지, (이성간 결혼을 했다가 동성간 결혼을 한 케이스도 나오긴 하지만) 대체 어떻게 이런 일들이 진행되는지에 대한 설명은 한없이 부족하고 독자를 설득하는데 실패한다. 끽해야 자녀를 입양한다는 묘사만 나오는데 대체 빙험의 삼남매가 모두 동성결혼을 해버리면 유력하고 부유한 가문의 유지가 어떻게 가능할 것이며 이것을 대체 왜 장려한단 말인가? 니그로 같은 역사적 설정은 필요에 따라 아주 편리하게 취하여 변형해서 쓰지만 독자가 품을 당연하고도 당연한 의문을 해소해보려는 시늉조차 보이지 않는다. 최근 여성끼리 이렇게 저렇게(무슨 I로 시작하는 세포를 이용해서) 수정이 가능하다는데 그런 시대초월적인 SF설정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가문과 친족 민족같은 혈연집단이 중시되는 것을 유전자와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나로서는 너무나도 혼란스럽다.
읽으면서 (TS라는 설정을 이용하거나 해서) 여성을 성적대상화하여 과격하다 못해 우스꽝스럽게까지 묘사하는 19금 떡인지를 보는 여성의 심정이 이럴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창작자도 떡인지 작가처럼 원초적 욕망을 충족시키는데 집중할 뿐 소비자가 등장인물에 공감할 것을 기대는 커녕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알페스를 쓰면서 모델이 된 아이돌이 자신의 캐릭터에 공감하거나 몰입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 것처럼. (설마 알페스 모델과 아이돌을 동일시하며 쓰진 않으리라 믿는다)
동아시아계(부친은 일본계이고 모친은 한국계인) 저자가 시대적 맥락을 고려하여 원어 그대로 표시하게끔 한 니그로란 단어도 당황스럽다. 읽다보면 칭챙총이란 단어도 볼 수 있을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