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 잔혹극 복간할 결심 1
루스 렌들 지음, 이동윤 옮김 / 북스피어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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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 알라딘 블로그이름(닉네임)이 된 내 평소 지론에 반하는 상당히 도발적인 제목이었기에 내 눈에 띌 수 밖에 없었고 결과적으로 재밌게 읽었던 활자였다.


 추리-미스터리라기 보다는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처럼 범죄소설이라고 보는게 더 적합한 것 같다. 도입부나 초반부에 범인을 밝히고 시작되니까. 표지는 원서의 첫 페이지를 재미있게 재배치를 했다. 짧고도 강력한 인상을 주는 첫 문장이 활자를 칼처럼 찢는 모양인데 작중 범행도구는 총이어서 총알로 했다면 더 재밌지 않았을까 싶지만.


 읽으면서 크툴루처럼 불가해한 대상에 대한 일종의 공포 같은 것이 느껴졌다. 악의 교전이나 양들의 침묵과 같은 사이코패스-소시오패스를 소재로 한 책에서도 비슷한 공포를 느끼는 것을 보면...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악의 교전은 특히 사건해결방식이 유사한 것이 보여서 재밌었다.


  또 개썅년BITCH를 묘사하는 특권은 여성 작가에게만 허가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1000201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이란 책에 수록된 작가들이 공교롭게도 다 남자이기도 하니 말이지.

활자 잔혹극에 등장하는 개독에 심취한 미친년도 여자고 문맹이자 공감능력이 없는 사이코패스도 여자인데 이런 작품은 걸작이 아니라서 저 책에 수록되지 못한걸까? 아니면 여성 작가가 썼기 때문일까? 정유정이 고유정 사건에 모티브를 얻어 쓴 완전한 행복도 여자를 모욕한 작품이라고 매도당하지 않는 이유도 같은 여성작가가 썼다는 것 때문일까? 아니면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의 범인이 남자라고 딱히 남자인 내가 모욕감을 받지 않았던 이유와 같은 이유일까? 비슷하게 개독에 심취한 미친년이 등장하는 스티븐 킹의 캐리도 아내에게 월경장면에 대한 조언을 받았다고 밝혔기 때문인지 저런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이란 어처구니 없는 지적이 없는 것일까(웃음)


유니스가 가족의 방임과 무관심으로 문맹이 되었고, 작품해설을 보면 그것 때문에 유니스가 돌처럼 딱딱한 괴물같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 같은데(개인적으로는 거의 동의할 수 없지만), 조앤이란 광년이는 대체 뭐 때문에 삐뚤어졌는지 알 수가 없다. 

조앤을 폭행하거나 소홀히 대하거나 방치한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사랑받는 소중한 존재였고 항상 격려를 받으며 자랐다. (…) 오랫동안 딸을 고대했고 그녀가 태어나자 엄청 기뻐했다. 태어난 직후부터 주변 사람들이 조앤에게 말을 걸거나 함께 놀아 주었기 때문에, 그녀는 네 살 때부터 글을 읽기 시작했고 다섯 살도 되기 전에 자발적으로 학교에 다녔으며 열 살이 되자 오빠들보다 더 똑똑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심지어 장학금을 받고 고등학교에 들어가 대학 입학 시험을 면제받는 보기 드문 성적을 거두며 졸업했다. 그만큼 머리가 좋았다.

전쟁이 발발하자 런던에서 학교를 다니던 조앤은 유니스 파치먼처럼 시골로 떠났다. 그녀를 맡은 남자는 친절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윌트셔에 있는 지역 경찰서로 걸어가 보호자를 강간과 폭행 혐의로 신고하면서, 그 증거로 자신의 몸에 난 멍 자국들을 제시했다. 조앤은 동정을 잃었다고 판명되었다. 그녀의 보호자는 강간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알리바이가 타당하고 완벽하다고 입증되어 무죄 방면되었다. 당연하게도 판결이 오심이었다고 믿은 부모는 조앤을 집으로 데려갔다. 하지만 그녀는 일주일도 안 되어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장본인인 솔즈베리의 빵집 배달부에게로 도망쳐 버렸다. 그는 유부남이었지만 부인을 버리고 오 년동안 조앤과 동거했다. 그가 전부인과 두 명의 아이들에 대한 양육비 지급 의무 불이행으로 감옥에 가게 되자, 조앤은 그를 떠나 런던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부모에게 돌아가지는 않았다. 예전부터 부모에게 온 편지에 확고부동하게 답장도 하지 않았던 그녀였다.

 같은 페이지에 연달아 나오는 이 서술은 굉장히 혼란스럽고 납득이 되질 않는다. 물론 조앤이 그저 미친년이라는 서술로 간단하게 넘어갈 수도 있지만 말이다. 이 당시엔 개독에 심취할 때도 아니었으니 개독탓을 할 수도 없고.(웃음) 


이렇듯 보통 미친년이 아닌 년이 개독에 심취까지 하니 내 생각에 그 결과는 유니스가 있건 없건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장정일의 해설은 소통의 장애를 야기하는 문맹이란 것에 초점을 맞춰서 본 것 같다. 작가가 '타인에 대한 감정을 헤아릴 수 없게 하는 장애물로 간주했다'고 썼는데 문맹이라고 타인에 대한 감정을 헤아릴 수 없는지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찰을 해봐야하지 않을까? 엎어져서 버둥거리는 거북이를 뿔로 다시 돌려세워주는 물소라던가 동물원에서 연못에 빠진 가젤을 코로 구해주는 코끼리라던가.. 의심의 여지 없이 물소나 코끼리는 문맹이다만 그 동물들에게 연민이나 이타심이 없다고 감히 말할 수가 있을까? 유니스는 문맹이어서 이타심이나 공감능력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악의 교전의 주인공 하스미처럼 그저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였을 것이다. 보통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는 고지능이란 설정이나 경향이 있다고 하는데 유니스는 그런 사악한 지능의 편린을 보여주긴 하지만 문맹인 것을 남에게 들키는 것을 부끄러워하면서도 글자를 익힐 생각조차 하지 않는 모순을 보여준다.

 게다가  이 작품을 소통의 문제로 한정해서 본다면 문제가 발생한다. 유니스가 문맹이기에 남들과의 소통에 치명적으로 장애가 있었는가 하면 그건 아니거든. 대화는 버젓이 잘 해서 로필드홀에 당당하게 입성한다. 유니스가 로필드홀에 잠입했던가? 메모나 자료를 찾아주는 것을 못할 뿐이었다. 상점에서 물건을 잘만 산다. 아니 대체 값을 어떻게 치뤘을까? 숫자는 읽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아니면 동전이나 지폐도 그냥 틀린그림찾기처럼 주먹구구식으로 사용했을지도 모르겠다만. '1895년부터 현재까지'라고 적힌 서류를 찾지 못했으니 1,8,9,5라는 숫자조차 읽지 못한 걸로 보인다. 동물에게도 있는 sympathy/empathy 조차 없고 문자는 커녕 숫자도 읽지 못하고 사회를 살아가는 괴물같은 불가해한 존재에 대한 책인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장정일의 해설에 가볍게 언급되는 루소의 사회계약론적인 측면에서 읽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최저한의 규범이자 토대가 되는 것은 공감과 연민에 기반을 둔 명문화된 법률이라는 계약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고 연민할 수 있게하는 것은 문해 능력이 아니다. 타인에 대한 공감이나 연민은 역지사지할 수 있는 감수성만 있어도 가능하다.  문제는 문맹자에게 헌법의 가치나 법률이나 규범 나아가서 예의라는 약속을 지키라고 할 수가 있을까라는 점이다. 얼마 전에 본 역사를 보다에서도 명문화되어 사회 구성원들이 동일하게 해석할 수 있는 법률의 중요성에 대한 내용을 본 기억이 나는데, 함무라비 법전이나 하다못해 그 개떡경에도 10계명이란 규범이 명문화되어 기록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개떡경에는 모세가 개떡계를 받아오는 일화가 아주 인상 깊은 방식으로 기술되어 있기도 하고.


 사건의 해결은 설마 이거야? 하게 만드는 방식이었다. 위에서 언급했던대로 악의교전이 떠오르는 방식이었는데 악의 교전이 현대배경에 맞게 좀더 치밀한 것 말고는 거의 유사하다. 따라서 살인까지 역행하는 작품 중후반부까지는 꽤나 흥미진진한 편이지만 살인사건의 진상을 독자가 확인한 이후의 후일담은 텐션이 많이 늘어질 수밖에 없었다.

 

자일즈 몬트에 대한 해설은 나 같은 활자중독자?의 미래를 경고하는 듯하여 뜨끔하기도 했다. 물론 위에 인용한 여자를 모욕한 걸작들을 쓴 저자들도 뜨끔해할지는 모르겠지만.ㅎ


희생자가 부르주아였고 계급적 갈등 운운하는 것도 작가가 멜린다 같은 캐릭터를 배치한 것을 보면 글쎄다 싶다. 멜린다는 책의 묘사에 따르면 순수한 호의로 유니스를 도우려고 했고 유니스에게 호의로 다가간 거의 유일한 사람이다. 하지만 유니스가 멜린다의 호의에 어떻게 보답했는지를 보면... 혹자는 멜린다의 태도가 흡사 강남좌파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만 유니스의 주위에 있던 무관심했던 같은 계급의 모든 사람들보다 고결했던 멜린다의 행동에 나는 경의를 표하고자 한다.

조앤을 폭행하거나 소홀히 대하거나 방치한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사랑받는 소중한 존재였고 항상 격려를 받으며 자랐다. (…) 오랫동안 딸을 고대했고 그녀가 태어나자 엄청 기뻐했다. 태어난 직후부터 주변 사람들이 조앤에게 말을 걸거나 함께 놀아 주었기 때문에, 그녀는 네 살 때부터 글을 읽기 시작했고 다섯 살도 되기 전에 자발적으로 학교에 다녔으며 열 살이 되자 오빠들보다 더 똑똑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심지어 장학금을 받고 고등학교에 들어가 대학 입학 시험을 면제받는 보기 드문 성적을 거두며 졸업했다. 그만큼 머리가 좋았다. - P111

런던에서 학교를 다니던 조앤은 유니스 파치먼처럼 시골로 떠났다. 그녀를 맡은 남자는 친절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윌트셔에 있는 지역 경찰서로 걸어가 보호자를 강간과 폭행 혐의로 신고하면서, 그 증거로 자신의 몸에 난 멍 자국들을 제시했다. 조앤은 동정을 잃었다고 판명되었다. 그녀의 보호자는 강간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알리바이가 타당하고 완벽하다고 입증되어 무죄 방면되었다. 당연하게도 판결이 오심이었다고 믿은 부모는 조앤을 집으로 데려갔다. 하지만 그녀는 일주일도 안 되어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장본인인 솔즈베리의 빵집 배달부에게로 도망쳐 버렸다. 그는 유부남이었지만 부인을 버리고 오 년동안 조앤과 동거했다. 그가 전부인과 두 명의 아이들에 대한 양육비 지급 의무 불이행으로 감옥에 가게 되자, 조앤은 그를 떠나 런던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부모에게 돌아가지는 않았다. 예전부터 부모에게 온 편지에 확고부동하게 답장도 하지 않았던 그녀였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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