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쇼펜하우어 아포리즘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김욱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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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를 목적으로 지식을 습득하는 순간, 그에게는 지성의 파멸뿐이다. 위대한 작품을 남긴 작가들, 철인들, 시인과 음악가, 정치가는 무명 시절에도 대중과 영합하려 하지 않았다. 내면의 절박함과 자기희생을 묵묵히 감수해냈다.
지금은 지식을 팔면 돈이 생기는 구조로 바뀌었다. 돈이 필요한 자는 누구든지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해야 하는 시대다. 그리고 민중은 어리석게도 그런 자들을 우상으로 섬기려 한다. 그들로 인해 인간의 위상은 또 한 단계 퇴보하게 될 것이다.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정의감에서, 또는 타인에 대한 배려 때문에 올바른 행동을 취하는 자는 행복하다. 나의 올바름은 대체로 두려움에 기인하고 있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내 안의 욕망을 단죄하고 싶지 않다. 특히 종교적인 차원에서 나의 욕망을 단죄하고 싶지는 않다. 나의 욕망은 조금도 혐오스럽지 않다. 더럽고 낮은 곳에서 나는 몸부림친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도망친다. 내게 그것이 겸손이다.

종교인들은 그들의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더 많은 계시를 반영하고자 타인의 삶에 억압된 계시를 남발한다. 그들이 우리 같은 일반인에게 보여주는, 보다 나은 삶에 대한 계시는 결코 우리 스스로 쟁취한 직관이 아니다. 우리가 보고 느끼고 깨닫고 발견한 깨우침이 아니다. 그들이 보여주는 모든 계시는 그들 자신의 것이다.
따라서 보이는 것들을 추종하는 삶은 언제가 됐든 한계에 갇혀버린다. 그로 인해 우리 주변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진실을 알아보지 못하게 된다.

인간은 모든 것이 가능하다. 신을 존재하게 만들 수도 있고, 존재하는 신을 저주할 수도 있으며,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도 있다. 그리스도를 십자가 형틀에 매단 것도 인간이었고, 그리스도의 죽음을 보고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것도 인간이었다.

하지만 유대교만큼은 납득도, 용서도 못하겠다. 유대교의 신은 자기 뜻대로 이토록 비참한 세계를 만들어놓고는 자기 취미를 살려 강압적인 교리를 부과했다. 이 비참한 세계에서 오직 자기만이 행복해질 수 있는 권리를 남겨놓았다. 그는 피조물에게 속죄하지도 않고, 죽음 뒤의 불멸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현세에서 착취당하거나, 착취하는 인간의 모습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다. 내가 유대교를 중오하는 이유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정치단체가 우후죽순처럼 난립하는 것으로도 모자란다고 생각했는지 요즘은 종교에 귀의한 자들의 파벌싸움도 툭하면 펼쳐진다. 갈등이 갈등을 낳고, 분쟁이 또 다른 분쟁의 원인으로 제공되는 것이 이 도시와 우리 시대가 기다리고 있는 현재의 운명이다.이런 시대를 살아가려면 좋든 싫든 정의와 거짓을 구별해낼 줄 알아야 한다. 시대가 제공하는 갈등에 휩싸이지 않으려면 갈등의 결과가 아닌 원인부터 살펴봐야 한다. 당장이라도 시대를 둘로 쪼갤 것 같은 분쟁에 휘말려 재판관 앞을 서성이고, 누구 목소리가 더 시끄러운지에 귀 기울일 게 아니라 싸움을 시작한 패거리들의 소속을 알아내야만 한다. 그것이 우리 시대에서 생존하는 비법이며, 문명의 발전에 희생당하지 않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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