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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리타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4월
평점 :
<암리타>는 어디선가 본 듯한, 그렇지만 또한 낯선... 그런 소설이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을 전부 읽었던 열혈 팬이라고 자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소설의 낯익임을 그저 내가 그녀의 작품을 전부 읽었던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암리타...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데... 뭐? 멜랑코리아(암리타의 첫번째 소제목이다)? <멜랑코리아>는 5년전 요시모토 바나나가 <달빛그림자>로(키친이라는 제목으로 재출판되었다) 조심스럽게 국내에서 알려지기 시작할 때, 여렵사리 구해서 읽었던 책이었다. 당시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작가여서, 그녀의 책을 구해 읽는 것은 큰 기쁨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여하튼, 당시 읽었던 두 권의 책, <달빛그림자>와 <슬픈예감>과는 달리 진한 오컬티즘으로 약간 생소했던 책, 그게 바로 <멜랑코리아>였다. 그로부터 5년후... 신문지상에서 떠들썩하게 요시모토 바나나의 새 책, <암리타>가 출판됐다는 기사를 읽었다.
<암리타>는 96년에 출판된 <멜랑코리아>의 2nd edition이라고 생각하는 게 가장 적합할 듯하다. <암리타>의 세 부분 중에서 마지막 부분인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가 이 전에 출판되었던 <멜랑코리아>에 추가되었고, 번역도 내용을 한층 살릴 수 있게 좀 더 감성적인 문체로 바뀌었다. 물론, 번역가가 달라지지 않았으니 그다지 차이점은 없지만... 사실, <암리타>를 끝까지 읽을 때까지도 <멜랑코리아>가 <암리타>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단지, 주인공 사쿠미가 카사이 키요시의 <철학자의 밀실>을 서점에서 봤을 때, 그리고 그 책을 읽었을 때 전혀 낯설지 않았던 느낌을 나 또한 이 책(암리타)에서 받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미묘한 교감(?)을 은근히 기뻐했다. 그렇지만 나 또한 사쿠미가 <철학자의 밀실>을 전에 읽은 적이 있었던 것처럼, 나 또한 이 책을 <멜랑코리아>라는 제목으로 5년 전에 읽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고는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던 그 낯익음이 '작가와의 공감'에서 '나에 대한 실망'으로 변했다.
5년 전에 읽었던 책도 알아보지 못한 내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열혈 팬이라고 어떻게 자신있게 말 할 수 있을 것인가. 애써 위로하자면,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이 언제봐도 새롭고, 낯선 즐거움을 주니까... <달빛그림자>나 <키친>도 여러번 읽었지만 늘 새롭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것이 요시모토 바나나의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하니까... 그걸로 위로할 수 밖에.
다시, <암리타>로 돌아가서... 이 책은 작가가 자신의 소설에서 다루는 주된 주제 중에서도 '오컬티즘'이 주를 이룬다. 평소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초현실의 세계를 소설로 형상화시키는 것이다. 텔레파시니, 예지능력이니 뭐 그런 것들이 일상처럼 펼쳐지는 다소 어색하고, 무섭고, 의문투성이인 세계. 요시모토 바나나는 그녀 특유의 심리묘사나 주인공의 독백으로 독자들을 무난히 그 세계에 끌어놓는다. 책을 읽는 내내, 등장인물을 통해 거침없이 보여주는 작가의 감성의 영역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고, 그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일까 의심스럽기도 했다. 96년판 <멜랑코리아>에서 '내가 이 작품을 통해 얘기하려는 무언가가 조금이라도 전달되었기를! 기도하며.'라던, 작가의 우려가 어쩌면 기우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