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바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44
페르 라게르크비스트 지음, 한영환 옮김 / 문예출판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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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작가 페르 라게르크비스트(Pär Lagerkvist)의 소설 <바라바>는 예수 대신 석방된 죄인 바라바의 남겨진 삶을 통해 신앙, 구원, 인간의 실존적 고뇌를 그린 문제작이자 1951년 노벨문학상 수상에 결정적 기여를 한 작품이다.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 대신 풀려난 강도 바라바는 군중의 함성과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목격한다. 그는 제자들과 나사로, 언청이 여인 등 예수와 관련된 인물들을 만나지만 그들의 믿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겉돌며, 생명의 무게와 죄책감 속에 방황한다. 이후 노예로 끌려가 광산에서 만난 사학이라는 신앙심 깊은 동료와 교감하고, 로마 대화재 당시 그리스도인들의 부활 신앙을 오해해 도시를 방화하다 체포되어 결국 예수처럼 십자가형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바라바는 신의 은총(대속)을 가장 먼저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원받지 못하는 '현대인의 초상'이다. 믿고 싶으나 믿지 못하는 그의 회의주의는 현대 사회의 영적 고독과 소외를 대변한다. 


소설 전반에 걸쳐 예수는 '빛', 바라바는 '어둠'으로 대비된다. 그러나 바라바의 어둠은 단순한 악이 아니라, 빛(진리)을 갈망하지만 눈이 부셔 차마 고개를 돌려버리는 인간의 한계를 상징하기도 한다. 


작가는 맹목적인 신앙보다, 평생 고뇌하고 방황하는 바라바의 '의심'이 오히려 더 진실한 인간적 본질에 가까울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바라바는 '나 대신 죽은 저 나사렛 예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평생 시달린다. 

예수의 제자들과 어울리려 하지만 그들의 맹목적인 믿음에 동화되지 못하고, 그렇다고 예수를 완전히 부정하지도 못하는 경계인으로 남는다. 


결국 십자가형을 당하며 "내 영혼을 당신에게 맡깁니다"라는 모호한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는 마지막 장면은 독자의 열린 사유를 유도하는 결말일 것이다. 


명확한 회개나 구원의 확신 대신 "믿고 싶다"는 모호한 갈망과 침묵을 남기며 여운을 준다. 
결국 신앙이란 개개인의 의지와 판단에 달린 일이지 누가 누구에게 강요하거나 권유할 문제는 아니라는, 그래서 스스로 사유하고 판단해야 하는 현대인에게는 고독한 숙제로 짊어지고 가야 할 대상 아닐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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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크리스트 대우고전총서 35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박찬국 옮김 / 아카넷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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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후기 저작 <안티크리스트>(Der Antichrist)는 기독교의 가치 체계를 정면으로 공격하며 '모든 가치의 전도'를 시도한 격렬한 비판서이다. 


니체는 기독교가 강자의 미덕(생명력, 권력의지, 자긍심)을 죄악시하고, 약자의 결함(동정, 굴종, 무능력)을 미덕으로 둔갑시켰다고 주장한다.


또한 동정은 생명 에너지를 약화시키고 우울함을 전염시키는 감정이며, 퇴행적인 인간을 보존하여 인류의 진화를 가로막는 해악으로까지 규정한다.


니체는 복음서의 예수를 '순수한 상징주의자'이자 현실의 고통을 초월하려 했던 인물로 존중하는 반면, 사도 바울이 예수의 죽음을 '대속'과 '부활'이라는 교리로 왜곡하여 복수심과 증오의 종교(교회)를 만들었다고 격렬히 비난한다.


상대적으로 불교 역시 허무주의적 종교이지만, 기독교처럼 '죄'라는 가상의 개념으로 인간을 괴롭히지 않고 고통을 객관적으로 치료하려 했다는 점에서 기독교보다 훨씬 합리적이고 문명화된 종교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서술 방식은 전체적으로 논리적인 기승전결 대신 짧고 강렬한 단문과 단락을 배치하여 메시지의 타격감을 극대화한다. '생명 대 반(反)생명', '디오니소스 대 십자가에 못 박힌 자', '귀족 도덕 대 노예 도덕' 등 선명한 이분법적 대립 구도를 만들어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이 책에서 니체가 주장하는 바는 많은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니체는 바울과 초기 교회를 비판하기 위해 복음서와 역사적 맥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기독교 역사 내에 존재하는 사랑, 희생, 공동체적 연대의 긍정적 측면을 완전히 배제하고 오직 '원한(Ressentiment)'의 메커니즘으로만 종교를 환원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서술 전체가 분노와 적대감으로 가득 차 있어, 객관적인 학술적 비평으로서의 설득력이 떨어진다. 반대 의견을 가진 독자와의 합리적 대화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는 폐쇄적 구조인 것이다.


약자에 대한 동정을 전면 거부하고 강자의 권력의지만을 긍정하는 논리는,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인권, 평등, 약자 보호를 외면하고 있다. 실제로 그의 논리는 훗날 파시즘과 나치즘에 의해 왜곡되어 악용되는 빌미를 제공했다. 


기독교의 절대적 도덕을 비판하면서, 정작 자신도 '생명력'과 '권력의지'라는 자신만의 절대적인 기준을 세워 타인을 심판하는 교조적 태도(또 다른 형태의 절대주의)에 빠져있다고도 볼 수 있다.


니체의 기독교 비판에 나름 수긍되는 점도 있지만, 기독교의 장구한 역사 과정과 인류사에 미친 양면적 가치를 감정적으로 부정하고 있기에 철학적 가치는 높지 않은 책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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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 하버드대 강의
달라이 라마 강의, 제프리 홉킨스 정리, 주민황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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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무아’의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본래적인 존재는 없다는 것.


고의적으로 실행한 경우와 고의는 있었지만 실행하지 않은 경우에는 그 행위의 결과인 과보를 반드시 받게 된다. 행위보다는 의도가 더 중요하다. 


본래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과거에는 악업을 쌓았을지라도, 앞으로 윤회에 태어나게 만들 새로운 업을 다시는 쌓지 않게 된다. 


남을 돕는 일은 인생의 참된 목적이고, 가장 큰 만족을 줄 것이다. 


일단 업이 성숙되고 나면, 되돌릴 수가 없다. 하지만 그 과보가 겉으로 드러나기 전이라면 그 과보를 가져올 업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 한 가지 방법은 과거의 행위를 고백하고 참회하고서 다시는 그런 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이다. 


미세한 단계의 의식일수록 물리적 육체로부터 더 고립되어 있다. 


공성을 깨닫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방편도 함께 갖추어야 한다. 


귀류논증 중관학파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반드시 명칭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들 모두가 본래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본성을 똑같이 갖고 있는 이상, 우리가 서로 싸우는 것은 의미고 없고 가치도 없는 일이다. 


분노는 인간의 훌륭한 장점들의 실제적인 파괴자이다. 분노는 우리 인간의 실제적인 적이다. 


공성이기에 오히려 현상계의 생멸이 가능하다. 공성은 연기의 의미를 갖고 있다. 

중(中)은 절대주의와 허무주의의 양극단의 중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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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불교 이해
각묵 지음 / 초기불전연구원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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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불교평론 김재성 님의 해설이다.


각묵 스님의 《초기불교 이해》는 그동안 테라와다 아비담마와 주석서에 근거해서 초기불전을 번역해 온 스님의 역작이다. 이 책은 초기불교 교학 체계와 수행론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초기불교를 심도 있게 공부하려는 이들에게 필수적인 책이다.


 본서의 특징 및 보완할 점 몇 가지에 대해서 정리해 보면서 본서에 대한 서평을 가름하고자 한다. 먼저 본서는 기존의 유럽과 일본 등지의 초기불교 연구를 이끌어온 세계 학계의 초기불교 연구 성과에 의존하지 않고, 저자의 초기불전 및 테라와다 원전 번역 성과에 근거한 해설서라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본서는 저자의 초기불교에 대한 이해의 틀을 보여주고 있는 의미 있는 저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본서는 불교 입문서라기보다는 초기불교를 교학적으로 깊이 있게 공부하기 위한 전체적인 틀을 보여주고 있어 전문가를 위한 초기불교 해설서의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초기경전과 테라와다 불전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며, 이 책을 통해서 초기불교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에 대한 전체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본격적인 초기불교 이해를 위해서는 초기경전과 주석서 등에 더 관심을 가지고 보아야 한다는 점도 이 책이 주는 메시지이다.


저자도 언급하고 있듯이, 빠알리어 삼장 가운데 경장을 주요 자료로 사용한 본서는 초기경전을 해석하는 시각이 테라와다의 주석서와 아비담마에 충실하게 입각해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초기불전연구원의 기본적인 번역 태도이기도 하다.이러한 태도에 입각해서 빠알리 불전을 해석하는 것은 이제까지 우리나라에는 없었기 때문에 가치 있고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앞으로 산스끄리뜨 원전이나 다른 언어로 남아 있는 초기불교의 원전과의 비교를 통한 심도 있는 연구가 기대된다. 특히 산스끄리뜨로 남아 있는 설일체유부의 《아비달마구사론》과 그곳에 인용된 초기불전의 내용의 검토, 그리고 한역된 《아비달마대비바사론》과 그곳에 인용된 아함과 빠알리 니까야와의 비교연구는 초기불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줄 수 있고, 현재의 테라와다 불교의 특징도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본서는 초기불교의 기본 주제가 주석서에서 정리한 것과 같이 행복의 추구에 있다고 보고, 궁극적인 메시지를 열반으로 보면서 열반에 이르기 위한 초기불교의 교학의 체계와 37보리분법을 중심으로 한 수행론을 정리하고 있다.


본서의 핵심을 이루는 2편의 교학 부분에서 핵심적인 교학을 잘 정리하고 있다고 보인다. 한편 3편의 수행 부분에서 37보리분법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는 《청정도론》과 《아비담마길라잡이》를 참조해 보라고 하고 있을 뿐이어서, 37보리분법의 유기적인 관계에 대한 설명이 제시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7보리분법은 서로 어떤 관계가 있고, 왜 이렇게 분류되어 있는지 좀더 분석적인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5온, 12처, 18계, 22근, 4제, 12연기, 37보리분법으로 잘 조직되어 있는 초기불교의 교학 체계와 수행 체계는 과학적인 접근 방법이다(24쪽)라고 하고 있는데, 과학적이라는 표현은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한다. 저자가  ‘과학적’이라는 말을 사용한 이유는 초기불교의 가르침이 합리성, 체계성에 바탕하고 있고, 분석적이며, 수학을 토대로 하여 전개되는 과학이라는 현대의 방법론과 일치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과학적’이라는 말이 반드시 ‘객관성을 담보하는 진리’를 대변하는 말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볼 수 있듯이, ‘과학적 진리’는 ‘과학자 집단에 의해 인정된 한정적이며 일시적인 진리’라고 한다. 즉 기존의 과학적 진리에 위배되는 새로운 사실이 발결될 때마다 과학적 진리는 변해 왔다. 즉 세계를 보는 틀인 패러다임이 바뀌어 왔다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과학’을 본다면, 초기불교의 교학과 수행 체계를 과학적이라고 보는 것은 일부 전문가 집단에 의해 인정된 ‘가변적’이며 ‘한정된’ 진리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서양의 과학이 3인칭적인 입장에서 사실을 경험적, 분석적, 가치중립적으로 탐구한다면, 불교는 1인칭적인 입장에서 사실을 경험적, 분석적, 열반지향적인 가치를 바탕으로 탐구한다고 볼 수 있다. 서양 과학과 불교의 경험주의적 태도는 공통점도 있지만 분명히 차이점도 있기 때문에 ‘과학’이라는 용어로 불교를 수식할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


4편에서 사마타와 위빠사나(본서에서는 위빳사나로 표기)는 부처님의 직설이며, 사마타는 삼매이며, 위빠사나는 통찰지와 연결되어 있음을 밝힌 것, 사마타는 개념을 대상으로 하고, 위빠사나는 법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을 밝힌 것은 중요하다. 그리고 초기불전에 등장하는 사마타와 위빠사나는 바로 현재 테라와다 불교권에서 대중화된 수행법의 뿌리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한 가지 《청정도론》에서 40가지 주제로 정리된 사마타의 대상에 대한 소개와 그 경전적인 근거가 제시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저자는 ‘초기불교와 아비담마는 아공법유(我空法有)를 주장하는가’라는 소제목(156쪽)에서 반야·중관을 추앙하는 자들은 아비담마의 입장을 아공(我空)은 설하지만 법공(法空)은 말하지 못하고, 법유(法有)를 주장한다고 비난하며, 아비담마를 소승이라고 폄하한다고 한다.


하지만 아비담마가 유위법의 무상, 고, 무아라는 보편적 성질[共相]을 주장하기 때문에 법공(法空)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분석적이고 논리적으로 제법을 명쾌하게 설명한다고 실유(實有)라고 해 버리는 반야 중관이야말로 법의 법 자도 모르는 악취공(惡臭空)에 빠진 자들이라고 저자는 비판하고 있다. 여기서 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점이 있다. 과연 아공법유(我空法有)의 입장이라고 비판한 부파불교가 테라와다였는가 하는 점이다.


기원 전후에 인도 대륙에서 생겨난 대승운동가들이 비판한 부파불교의 주된 흐름은 설일체유부 계통의 상좌부였지, 스리랑카에 전해진 테라와다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학계의 입장이다. 따라서 저자가 말하는 실유설(實有設)은 테라와다의 입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설일체유부가 주장한 법실유설이 과연 반야, 중관사상에서 비판한 법유설(法有設)인지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지만, 대승운동가들이 비판한 부파불교는 남방 테라와다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저자도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악취공의 한자는 惡取空(durgṛhītā śūnyatā)으로, 잘못 파악한 공(空) 즉, 공(空)을 허무주의적으로 잘못 이해한 것을 비판하는 것이다.


또한 본서가 보여주는 열반 지향적인 입장으로 나아가기 전에 좀 더 상세하게 인천교(人天敎)의 입장에서 차제설법의 의미를 밝혀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즉 33쪽 이하에 간단하게 설명된 금생의 행복과 내생의 행복에 대한 부분을 좀 더 자세하게 다루어 주었다면 불교를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열반에 이르는 노정이 분명하게 이해되었을 것이다.


초기불교의 세계관을 일체(一切)의 의미로 제시된 12처와 연관해서 설명하는 것은 좋지만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라는 삼계(三界)를 중심으로 윤회와 함께 설명해 준다면, 존재세계에서 인간의 위치와 인간의 삶이 열반을 지향하는 데 왜 중요한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각묵 스님의 《초기불교이해》는 불교를 체계적이며 깊이 있게 공부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필독서이자 초기경전을 이해하기 위해서 《청정도론》 《아비담마 길라잡이》 등과 함께 늘 곁에 두고 참고하면서 보아야 하는 불교 이해의 길잡이가 될 것이다. ■


출처 : 불교평론(http://www.budrevie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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