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드릭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07
레오 리오니 글 그림, 최순희 옮김 / 시공주니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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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서문에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유용한 것을 만든 이가 그것에 감탄하지 않는 한 그를 용서할 수 있다. 쓸모없는 것을 만드는 단 한 가지 이유는 사람들이 그것에 열렬히 감탄하기 때문이다. 모든 예술은 전혀 쓸모없다.” 프레드릭이 열심히 모아둔 햇빛, 색깔, 이야기는 사실 들쥐들의 배를 부르게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들쥐들은 프레드릭의 이야기 덕분에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도 행복한 감정을 느끼고 감탄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김동식의 회색인간은 인간이 극한의 상황에 내몰렸을 때 어떤 존재가 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일하고 아귀처럼 먹고 지쳐 잠을 자고 아무 희망이나 기대가 없는 반복된 일상만이 반복될 뿐이다. 이럴 때 가장 빨리 도태되고 아웃되는 사람은 누구일까? 노래를 부르는 여인, 그림을 그리는 남자, 소설을 쓰는 청년처럼 생존에 필수적이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처음에 사람들은 이들에게 돌을 던졌다. 이들이 죽는 것은 시간문제인 듯 보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의 억울함과 분노를 예술로 남겨주기를 원하며 예술가들에게 빵을 나누어주고 그들의 몫까지 일을 떠맡았다. 예술과 문학은 어떤 상황에서도 쓸모가 있는 것이다.


물론 요즘엔 예술이 쓸모없다고 무시당하는 시대는 아니다크리스마스 즈음부터 연말연시가 되면 유명 가수들의 공연 플래카드가 도시 곳곳에 내걸린다. 공연날이 되면 도로가 마비될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이 뜨겁다. 요즘 세상에는 인기만 있다면 가수나 소설가도 엄청난 부와 명예를 가진다. 그들이 빵이나 자동차처럼 손에 만져지는 물건을 만드는 건 아니지만 사람들을 감탄시키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무언가를 생산하기 위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에 몰두할 때 예술가들은 햇빛과 색깔과 이야기를 모으지만 아무도 그들에게 왜 일을 하지 않느냐고 힐문하지는 않는다.


문화와 예술과 스포츠가 거대한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현대에 색다른 방식으로 일하고 공동체에 기여하는 프레드릭에 대한 새삼스러운 인정과 평가가 굳이 필요할까? 요즘 청소년들은 묵묵히 노동하는 들쥐들보다 상상과 창의성으로 가치를 만들어내는 프레드릭을 당연히 더 추앙하지 않을까?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에서 개미를 모범으로, 베짱이를 반면교사로 삼았던 것은 유효기간이 지난 옛이야기가 아닐까? 시대의 변화로 이제는 베짱이가 개미보다 더 크게 성공할 수 있다고 변하지 않았나?


그럼에도 프레드릭은 의미가 있는 그림책이다. 최근 수능에서 이과가 문과를 초토화시켰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문사철로 대표되는 문과는 문송합니다라는 자조섞인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현대 사회에서 별 쓸모없다는 인식으로 자리매김했다취업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이 바쁜 세상에 얇고 넓은 지식이 유튜브에 넘쳐나는데 그걸 왜 대학까지 가서 전공해야 하느냐는 인식이 있는 듯 하다.

 의대와 취업에 유리한 학과가 아니면 아이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성적에 맞춰 억지로 진학한다 하더라도 대충 졸업만 할 뿐 취업에 필요한 공부를 하느라 자기 전공에 몰두하는 이는 많지 않다. 문학과 역사와 철학은 정말 관심과 재능이 있어 그쪽 길로 정한 소수의 사람이나 그 과목 교사가 되어 취업하려는 실용적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나 열심히 배울 뿐이다.

 

김현은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란 질문에 '역설적이게도 문학은 그 써먹지 못한다는 것을 써먹고 있다'라고 말했다. 문학은 총도 아니고 칼도 아니기에 누구도 해치지 않고 빵이나 아파트도 아니기에 문학을 둘러싸고 아귀다툼이 벌어지지도 않는다. 그저 한 사람의 인생밖에 살 수 없는 숙명을 가진 인간에게 여러 삶을 경험하게 해 주고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무엇이 올바른지, 어떻게 하는 것이 합당한지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프레드릭은 한 번 보고 말 어린이용 그림책이 아니다. 나는 프레드릭을 수시로 펼쳐본다. 프레드릭을 읽을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당장 쓸모가 없더라도 당장 나에게 이익이 되지 않더라도 당장 돈이 되지 않더라도 무언가 의미가 있을거야. 나중에는 도움이 될 거야. 좋은 음식, 좋은 차. 좋은 집에서 느끼는 행복감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눈에 보이는 쓸모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빠름과 효율이 중요한 시대에 노인이나 장애인을 배려하고 그들의 속도에 맞추는 데 관심을 가진다면 우리는 나중에 더 큰 행복과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거다.

자기만의 소신과 신념을 가진 프레드릭과 그런 프레드릭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다른 들쥐들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프레드릭이 영웅이 되고 하나의 성공 아이콘이 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프레드릭은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다른 들쥐들에게 도움을 줬고 다른 들쥐들로부터 인정을 받은 것이다. 프레드릭도 물론 다른 들쥐들의 노동으로 일군 음식을 먹고 생존할 수 있었고 여러 가지 상상의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 가수나 화가의 아름다운 작품이 농부의 피땀어린 농작물보다 모자라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뛰어넘는다고 할 수도 없다. 인간에게는 물질과 정신 둘 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프레드릭>은 참 예쁘고 따뜻한 책이다. 몸을 움직여 먹을거리를 만들어내는 들쥐들과 생각으로 정신을 풍요롭게 해주는 프레드릭은 서로를  쓸모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서로의 존재가치를 인정한다. 고마워하고 감탄하고 도와준다.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고 이 책은 말한다.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할 점이다. <프레드릭>은 우리는 결국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될 거라는 따뜻한 희망과 위로를 전해주는 그림책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프레드릭이지만 프레드릭에게 진심어린 박수와 시인이란 영예를 안겨주는 들쥐들의 마음도 그들이 땀흘려 생산해낸 식량만큼이나 풍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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