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가는 전봉준 - 안도현 시집
안도현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그는 이리중학교 교문에 메달려 있었다. 정치하는 놈들(잠시 '분'이라고 할까 고민했다. 워워~)한테 쫓겨난 교사 안도현은, 아이들에게 돌아가려고 교문에 메달려 오래 싸웠다고 했다. 그 시절 가슴 얼얼한 이야기들도 그의 시로 남아 있다.(이것을 확인하려면, 그의 초기작들을 보아야 함^^;)

  "멀고 험한 저승길이거든 아버지

   눈발로 훌쩍 뛰어내려 이 세상에 오셔요

   제가 땅에 강물이 되어 엎드리지요

   열아홉 숫처녀 어머니도 문간에 홀로 서서 바라보시잖아요"

  베스트셀러 작가에 알레르기가 있어서 웬만해선 읽지 않는데, 뭐한다고 이 책을 열었던고. 그냥 슬렁슬렁 첫시를 읽다가, 숨이 턱턱! 강물이 되어 엎디려!? 아니, 열하홉 숫처녀 어머니?!!!!!!! 아버지를 일찍 잃은 내 개인사 때문에 놀라운 건지, 이 게 정말 뛰어난 표현이라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아무튼, 열아홉 숫처녀 어머니가 문간에 기대어 하염없이 밖을 바라보는 애달픈 모습이 오래 아른거렸다. 물론 다른 시들도 주옥이었다. 주옥'같은' 게 아니라, 주옥(그런데, 주옥이 뭐죠??ㅜㅜ)이었다.

  하이데거의 저작 "예술작품의 근원"을 보면, 詩를 최고 예술로 꼽는다. 미학을 가르치는 교수, 미학을 전공하는 학생, 하이데거를 전공한 자, 하이데거를 사랑하는 자들이 떼거지로 달려와 내 척추를 삼단접기해도 어쩔 수 없다. 정말 토 나왔다. 예술하는 자들이 이런 불친절한 것 읽고 잘난 체하는 걸까? 고귀한 시인들의 불친절함은 하이데거가 詩를 최고 예술로 추켜세우며 호들갑 떤 덕에 더 단단해진 것일까? 무식하단 소릴 들을까봐, 시인의 이름값과 헛소리 앞에서 그저 미소를 지었던 적도 있었다. 빌어먹을 詩란!

  문단에서 안도현이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모르나, 난 자고로 시가 요만큼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는 불친절하지 않다. 그의 시는 따뜻하고 아름답다. 천박해서 선호되는 게 아니라, 사랑할 만해서 많은 이들에게 읽혀지는 것이다. 물론이다. 사랑할 만하다. 오, 게다가 저 산뜻하고 어여쁜 표지라니! 최소한 2002년 판까지는 촌티 흐르는 안도현씨 얼굴이 표지에 있었다. ㅡㅡ;;;;; 정면 사진이었다면 감당 못했을......

  2000년대에 들어서도 여전한지는 보장할 수 없다. 추석 특집인지 설날 특집인지에 라디오 인터뷰서 그는 이제 세상이 좋아져서 현실을 노래할 필요는 없는 듯하다고, 대신 꽃 이야기나 나무 이야기를 맘 놓고 쓸 수 있노라 웃었다. 이리중학교 교문에 매달린 안도현은 이제 없다. 전교조 시절이 좋단 게 아니라, 그 절박함 열정이 식은 듯 보인다는 것. 그리고 시에서도 그것을 읽을 수 있었다. 난 그의 시집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를 내던졌다. 그리고 "바닷가 우체국"은 뭔가 아쉽다. 그리고, 그의 시집은 너무 빨리 출간되고, 이제 시집 코너에서 신간을 보면 언짢아진다. 슬프다.

  어쨌든 나의 판단일 뿐. ^ㅡ^; 그렇다고 열아홉 숫처녀 첫정을 어찌 잊으리. 이렇게 사랑스러운 시들이 아직도 남아있는데. 좋다. 여전히 좋다......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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