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의 단어 - 당신의 삶을 떠받치고 당신을 살아가게 하는
이기주 지음 / 말글터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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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편의 단어, 이기주 신간, 에세이 베스트셀러 추천

 

엄마가 두 번의 암 수술을 하시면서 한달 정도 엄마의 병간호를 해야했다. 삭막한 병원 생활을 장기적으로 하다보니 나도 엄마도 지쳐갔다. 식사와 약을 챙겨드리고 잠시라도 산책이라도 하자 싶어서 병원 주변을 나와서 한 바퀴 거닐었다. 걷다보니 황량한 도로가 사이로 노란색 무언가가 살짝 보였다. 민들레였다. 딱딱하고 차가운 콘크리트 사이를 뚫고 나오는 그 생명력, 노란 민들레를 보면서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그러면서 생각을 했다.


'너도 살겠다고 이렇게 딱딱한 콘크리트를 뚫고

나오는구나. 힘을 내야지. 어떻게든 버텨서 살아야지. 정신차리고 엄마를 잘 돌보자.'


민들레를 볼 때마다, 그 단어를 기억할때마다 그 때의 다짐을 떠올린다.엄마가 갑상선암과 유방암으로 한쪽 가슴을 절제까지 했음에도 살아계심에 감사하며, 다시 힘을 냈다.


언어의 온도, 말의 품격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따스한 위로와 공감을 전했던 이기주 작가님이 신간 <보편의 단어>를 출간했다. 어떤 단어로부터 삶과 사람, 그리고 세상의 의미를 찾기를 바라는 마음에 책을 집필했다고 한다. 61개의 추상의 단어들로부터 떄로는 위로를, 때로는 소신을, 삶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작가님의 글을 읽고는 많은 생각이 들었었다. 기억에 남는 몇 가지 단어를 나눠보고 싶다.


2. 인상깊었던 단어와 구절

 

보편의 단어는 각자의 상황과 감정에 따라 감동받는 부분이 다를 것 같다. 같은 사물을 보아도 다른 느낌을 받는 것처럼 같은 글을 읽어도 각자의 형편에 따라 와닿는 부분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공통되는 부분은 우리 모두 '삶'을 살아가고 있기에, 겪는 여러 감정들이 모양은 다르지만 결을 같이 한다는 점에서 공통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그 교집합을 이기주 작가님은 공감의 언어로 구사한다.

 

아픔

살아가는 일은 고통이라는 이름의 터널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통과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41쪽.

 

삶은 고통이라는 이름의 터널을 통과하는 과정이라는 이기주 작가님의 말이 너무나 공감이 된다. 내가 그 터널을 겪을 때도 있고, 가족이나 다른 사람이 그 터널을 지나갈 때도 있다. 저마다 각자 다른 시기와 강도로 그 터널을 건너간다는 사실만큼은 같다. 아픔을 삭히며 그것을 감내하는 부모를 바라보던 작가님과 코로나 후유증을 자녀가 걱정할까봐 이악물고 참았던 작가님 어머님의 사례가 남일같지 않았다.

부모가 되어보니 아파도 제대로 아프다고 말하지 않았던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두 번의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엄마는 얼마나 아팠을까?

워낙 밝으신 분이라 그 때의 감정을 물어보면 늘 괜찮다고 말씀하시지만 분명 내가 가늠할 수 없는 아픔을 겪었을 것이다. 부모가 되고서야 그 아픔을 그나마 머리로는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가 웃는 게 웃는게 아니었구나라는 사실을 이제사 깨닫는다. 가장 소중한 사람이 아픔의 터널을 지날 때, 더 힘들지 않도록 조금 더 마음으로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탈출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때 내가 그런 마음을 먹을 수 있었던 건 작가가 되겠다는 포부가 확고했기 때문이라기보다 회사에서 탈출하고야 말겠다는 욕망이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인 것 같다. 무언가를 향해 다가가려는 마음이 아니라 무언가에서 벗어나려는 마음 덕분에 낯선 길로 접어들었다고 할까.

55쪽.


이것도 공감되는 구절이라 초이스. 

나는 작가님처럼 베스트셀러 작가라든지 무언가가 된 상태는 아니지만, 탈출을 시도햇다가 새로운 시작을 경험했다는 점에서 너무 공감을 했다. 역기능 가정에서 k장녀의 굴레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결혼을 했고, 걸맞지도 않는 사모의 길을 걷게 되었다. 중간 중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있지만 욕구와 기질을 죽여야 하는 상황이 힘들었다. 선배 사모님들이 보면 mz세대라고 하실터이다. 은혜로만 해결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내 안의 해결되지 않은 쓴뿌리와 상처, 내면아이가 약간은 제한적인 상황과 맞물려 더 힘들었던 게 아닌가 싶다. 번외로 시댁과의 갈등도 있었다. 그래서 또 탈출하고 싶었다. 그러던 찰나, 블로그 글쓰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 모든 상황에서 탈출하고 살고 싶어서 시작했던 독서와 글쓰기가 내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었다. 아무 것도 된 건 없지만, 책을 읽으면서 '나'라는 알은 깨고 나가는 중인 것 같다.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어린 아이처럼 과거에만 머물러 있던 나를 다른 세상이 있음을 알려준 독서와 글쓰기. 꿈유님의 빡센 글쓰기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작가님은 그런 탈출 욕구를 나쁘다고 정의내리지 않는다. 그 탈출 욕구 덕분에 자신을 글을 쓰는 전업 작가가 되었다고 그 감정이 자신을 다른 세계로 데려다 줄 수 있기에 그런 마음이 생기면 그대로 둔다고 한다. 나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주일에 크록스 샌들이나 롱부츠를 신고 가면 '감히 사모가!'라는 눈초리를 받는 처지이지만, 상상 속에서 나는 화려한 상의와 가죽 레깅스를 입고 거리에서 마음껏 춤을 춘다. 상상은 자유니까.


탈출 욕구를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도 꽤 멋진 일인것 같다. 상상만으로도 자유롭고 행복하다. 그래서 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같다. 기분이 좋아졌다.


울음

울음은 하강한다. 우린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 몸을 웅크린 채 눈물을 뚝뚝 떨어뜨린다. 울음은 웃음과 달리 마음의 안쪽에 켜켜이 쌓이기도 한다.누구나 울고 싶어도 마음대로 울지 못하고 속으로 꾹꾹 삭여야 하는 순간이 있는 법이다....(중략).....그러니 우린 종종 어깨가 들썩 거릴 정도로 울음을 토해야 한다. 눈물을 비워낼 때 생기는 힘으로 현실의 무게와 세월의 장막을 뚫고 미래로 나아가려면 우린 그래야 한다.

89쪽.

평가

아무튼 난 '이거 참 뻔하잖아!'라는 말로 타인의 작품과 세계를 함부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런 태도로 일관하면 '뻔함' 너머의 세계를 상상하거나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 없으면 지금 속해 있는 세계에 영원히 머무를 수밖에 없습니다.

96-97쪽.

여백

뭐든 꽉 채우지 않고 일부러 여백을 남겨두기란 어려운 일이다. 여백을 두려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고민과 관찰이 필요하다. 여백을 가리켜 오랜 기다림의 입맞춤이라고 일컫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107쪽.

 

위로

우리는 타인을 내려다보면서 위로할 수 없다. 위로의 언어는 평평한 곳에서만 굴러간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선 무턱대고 따뜻한 말을 쏟아내기 전에 상대와 마음의 높이부터 맞춰야 하는 지 모른다.

위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자신보다 높은 곳을 향해 고개를 들 힘조차 없는 사람이다.

116-117쪽.


마음에 박힌다. '위로의 언어는 평평한 곳에서만 굴러간다.... 위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고개를 들 힘조차 없는 사람'이라는 부분이 말이다. 이기주 작가님은 위로받을 상황에 많이 처해졌던 것일까? 어떤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을 글로 언어화 하시는 게 정말 탁월한 듯하다.


깜깜한 터널을 지나가는 듯한 고통 속에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해 주었다. '정말 힘들겠다, 괜찮니' 그렇지만 그런 위로 뒤에는 평가와 질책, 무시가 담겨져 있어서 또 2차로 상처받기 일쑤였다. 그래서 그 뒤로 솔직한 마음을 나누는 것은 하지 않는다. 새벽기상 아티스트웨이 공책에나 할 뿐.

유일하게 나의 어떠함을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는 지인이 있다. 그 지인한테만큼은 밑바닥까지 보일때가 많다. 위로라는 건 그렇게 평가하지 않고 함께 있어주는게 아닐까.


나도 직업적으로 위로를 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조심한다고 하지만, 무턱대고 영혼없이 위로할 때 상대방의 눈망울이 흔들리는 걸 본다. 그럴때마다 내게 사심없이 베풀었던 지인의 사랑과 위로를 기억한다. 마음의 높이를 맞추는, 진심을 전하는 위로를 하고 싶다.


유행

무엇보다, 세상의 흐름에 무조건 날 맞추거나 다수의 생각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다 보면 '내'가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중략).....유행하는 건 쉽게 변하지만, 유행하지 않는 건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항구적인 가치와 의미는 대개 변하지 않는 것들 속에 잠잠히 숨어 있다.

189쪽.

 

건사

"글쎄요. 특별한 방법 같은 건 없었어요. 아무리 해도 안 되는 날은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않았습니다. 그냥 버티는 게 목표였어요."

275쪽.


건사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자신에게 딸린 것을 잘 돌보아 거두다. 잘 간수하여 지키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경기가 잘 안풀리는 날은 '버틴다'라고 말했던 야구선수의 말이 이 단어와 꽤 잘 어울리는 듯 하다. 그 연결점을 작가님은 어떻게 찾았을까 신기!

산다는 건 잘하는 날도 있지만, 못하는 날도, 안풀리는 날도 있기에 그럴때는 '버티며' '건사'하는 게 필요한 것 같다.

둘째가 코로나와 폐렴 때문에 방금 퇴원했다.

한 때 유행했던 존버라는 말이 떠오르는 날이다.


3. 마치며

 

나는 이기주 작가님이 추상의 언어에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언어로 구현했는지 놀라웠다.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소중하고 작은 단어들 사이에서 삶의 의미와 방향을 잡아가는 작가님의 따뜻한 말들이 잔잔한 위로가 되었다. 작고 작은 단어에서도 삶의 풍성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이기주 작가님의 신간 <보편의 단어>는 지치고 힘든 인생길 가운데 마시는 물 한모금같은 책이었다.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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