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ntastique 판타스틱 2007.5 - Vol.1, 창간호
판타스틱 편집부 엮음 / 페이퍼하우스(월간지)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쓴다 쓴다 해놓고서 감질나게 그냥 내버려두고 있다가 결국 리뷰를 쓰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더 늦으면 2호째가 나오면 창간호의 리뷰가 무색해지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모처럼 발견한 SF 계 잡지라서 내버려둘 수가 없었습니다. 설령 다음호가 나오지 않더라도 그 나름대로 안타깝기도 했지요.어느 쪽이든 쓰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지요.
월간 판타스틱이 발간 전에 가장 기대를 모았던 점은 국내에서는 흔치 않은 환상문학 잡지이며 SF를 다룬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이 점이 마음에 끌려서 창간호를 주문하게 되었는데요, 정작 받아보게 된 창간호는 제가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판타스틱이 질이 떨어진다거나 볼 것 없는 잡지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칭찬하기도 미묘합니다. 만족스럽다기엔 어딘지 부족하고 아주 불만족스러운 품질도 아닙니다. 분명히 돈을 내고 살 가치는 있지만 독자들을 환상의 세계로 인도하는 가이드로서는 조금 부족하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일단 판타스틱이라는 잡지를 기획하게 된 의도에 대해서 묻고 싶습니다. 지금의 판타스틱은 잡스러워요. 물론 잡지가 잡스럽지 않으면 가치가 없긴 합니다. 그래도 잡지의 중심이 되는 기획은 있었을 겁니다. 분명히 독자들도 그것을 느껴야 할 것인데 판타스틱은 정확히 어떤 것을 구심점으로 삼았는지 감이 잡히질 않아요. 국내에서 환상문학이라는 장르가 대중적이지 못하고 관련 자료도 얼마 없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조금은 몰입해서 읽을 거리가 있었으면 했습니다. 아직 창간호고, 다음호를 위해 남겨둘 거리가 많다는 암시가 여기저기서 느껴졌으니 다음호를 기다려봐야 알 수 있겠지요.
또 하나 문제가 되는 것이라면 가독성인데, 글자 폰트가 작고 글씨가 빽빽히 들이차 있어서 불만을 표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습니다. 빽빽히 쓰는 걸 좋아하고 빽빽한 글이 아니면 읽고 싶어하지 않는 저 같은 사람은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만, 여론을 보니 불만이 압도적이더라구요. 개인적으로는 글자 폰트보다는 배경 색지 때문에 눈이 더 피곤했습니다. 좀 더 색이 엷은 종이를 사용했더라면 덜 피곤했을 겁니다.
잡지 자체로서는 만족하고 있습니다. 실린 작품들 중에는 범작이 대부분이라는 느낌이지만요. 기대했던 복거일의 '역사 속의 나그네'에 대해서는 지금 평하고 싶지 않구요(평하고 싶지 않다라기보다, 제가 역사대체물을 좋아하지 않는 탓도 크고 글을 처음부터 읽어보질 않았으니 줄거리 요약본을 읽어도 당최 감이 잡히질 않습니다) 듀나의 호러 단편 '너네 아빠 어딨니?'는 예전에 비해 감정의 가닥이나마 잡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정이 가지 않는 건 여전하군요. 그걸 제외하고는 작품 자체는 실린 작품집 중에서 두번째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김창규의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는 평이한 소품이라는 느낌이고, 미야베 미유키의 '유월은 이름뿐인 달'도 마찬가지. 이윤하의 '이팅 하트'는 인상적이기는 한데 뭘 말하고 싶은 건지는 감이 잡히질 않았습니다. 루이스 캐롤의 '실비와 브루노'는 서문만 달랑 실렸으니 말할래야 말할 게 없군요. 그나마 건질만 했던 건 폴 윌슨의 '다이티다운' 정도입니다. 가장 알기 쉽고 맥락이 잘 잡히는 이야기였거든요. 흥미진진하기도 했고. 나름대로 기대했던 만화 부분에서는 조금 실망했습니다. 가장 기대했던 유시진의 '눈의 휴식'은 메세지는 알겠지만 딱히 와닿는 이야기는 아니었어요. 만화 자체가 휑한 느낌이었습니다. 김태권의 '도둑맞은 이야기'는 언젠가 제가 상상해봤던 이야기라 좋았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만족해요.
미야베 미유키와 기시 유스케의 인터뷰는 만족감이 충만합니다. 만약 제가 ~작가를 만난다면 ~한 질문을 하겠다 싶은 목록들이 쭉 나와 있어요. 분량은 짧았지만 워낙 충실한 인터뷰라서 아쉬운 감은 없었습니다. 창간호에서 다이티다운 다음으로 가장 만족스러운 콘텐츠는 바로 인터뷰 부분이었습니다. 다음호는 르귄이라는데, 꽤 기대되네요. 칼럼들은 글쎄요…… 좋은 소리를 하기가 좀 힘들 것 같군요. 인터넷에 올라온 읽을거리였다면 잠깐 흥미를 가지다 말 정도의 화제입니다. 딱 같은 취미의 친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만한 가십거리라고 할까. 재미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깊이는 확 빠졌다는 느낌이 들어서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흥미가 떨어집니다. 너무 무겁지 않게 글을 쓰려고 하는 점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가볍게 써도 조금 그렇네요. 한 번 보고 넘길 것도 아니고 모처럼 모으기로 결심한 잡지인데 말입니다. 좀 더 깊이 있고 맛깔나는 글을 기대합니다.



조금 안 좋은 소리가 많았습니다만, 판타스틱 자체는 괜찮은 잡지입니다. 환상문학에 대해 취미를 붙인 분이라면 적어도 실망하시지는 않을 책입니다(다만 환상문학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참으로 읽기 힘듭니다). 편집도 화려하고 구성도 제법 좋고 읽을거리나 가십거리도 나름대로 꽤나 쏠쏠한 편입니다. 다만 창간호는 여러 가지 요인으로 약간 가독성이 떨어지는 편이니 그 점 유의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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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가르쳐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충고하기'위해 존재하는 책이라는 걸, 책방에서 사온 후에야 비로소 알아차렸습니다. 그래도 이 책을 산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후회할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 저자 스티븐 킹의 솔직하고 시원스럽다가도 가끔씩 따끔거리는 자잘한 충고들은 여러모로 유익했는걸요. 동의할 수 없거나 견해가 다른 부분들이 눈에 띄기도 했지만, 그 차이를 받아들이느냐 마느냐는 어디까지나 제 자신의 결정이라, 탐탁지 않은 부분은 그것대로 마음에 담아두기로 하고 일단 끝까지 읽었습니다. 감탄하기도 하고, 수긍하기도 하고, 견해가 다른 문제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며 쭉 읽어나가다 보니 나름대로 깨달은 것이 많았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작가가 되려는 분들에게는 인생의 지침까지는 아니더라도 꼭 한 번은 읽어보게 하고 싶습니다.
아래로부터는 이 책의 부분들에 대한 감상들입니다.

1. 이력서

소제목대로 스티븐 킹의 내력을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책 전체의 1/4에 달하는 분량 안에 스티븐 킹의 인생 항로가 충실하고 솔직하게 반영되어 있습니다. 가장 재미있던 이야기는 귀에서 고름을 빼냈던 때의 이야기였고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청소년 시절 리스본에서 존 굴드에게서 가르침을 받던 이야기였습니다. 이 부분에서 중요한 조언이 나오지요. "어떤 이야기를 쓸 때는 자신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생각해라. 그리고 원고를 고칠 때는 그 이야기와 무관한 것들을 찾아 없애는 것이 제일 중요해." 이 구절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아서, 지금도 글을 쓸 때마다 그 구절을 곱씹곤 합니다. 하는데… 제가 까탈스러운 편이므로(까칠하지는 않는데, 글을 평가하는 기준이 '전체적인 완성도'라서 요즘의 대세와는 많이 차이가 납니다) 제 자신의 글을 평가하다가도 '난 왜 이렇게밖에 못 쓰는 거야'라고 자기비하를 자주 하긴 해도, 확실히 예전보다는 자신의 글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게 되더군요. 글을 쓴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스노비즘적 만족감도 느낄 수 있고 말입니다. 이 조언 하나를 발견했다는 것만으로도 전 이 책을 산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겠습니다. 독자가 느끼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전 뒤의 파트보다 이 파트에서 더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2. 연장통

이 부분의 내용은 대략 세 가지 정도로 간추릴 수 있겠군요. 1. 평이하고 직설적인 표현을 사용하라. 2. 수동태 사용을 자제하라. 3. 부사 사용을 자제하라. 세 가지 다 뼈와 살이 되는 충고이니, 새겨들어서 손해볼 것은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단점이라고 하기 어려운 단점이라면, 원래 이 책이 영어권 독자들을 위해 쓰여진 것이다 보니 한국어에는 해당사항이 그리 폭넓지 않다는 것입니다. 번역체를 너무 자주 사용해서 지적을 많이 받았던 사람은 영미권 소설에서 자주 쓰는 표현을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선 흥미로울 수도 있겠습니다만, 간과하기에는 조금 슬픈 현실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작가의 길을 걷겠다거나 작가를 자처하는 사람, 즉 이 책의 주된 독자 중에는 '수동태'(한국이라면 피동)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다수 존재하므로 도대체 저자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듣지도 못할 공산이 크다는 것이지요. 간단한 예만 들어봐도 '되어졌다' 같은 국적불명의 표현이 출판물에서도 버젓이 눈에 띄지 않습니까. 흥미 반 안타까움 반 읽는 내내 미묘한 기분이 든 파트였습니다.

3. 창작론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제가 가장 많은 깨달음을 얻은 부분이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견해가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견해가 같은 부분은 명료한 관찰력과 명료한 글이 묘사를 잘하게 되는 비결이라는 것, 분위기를 잡으려면 캐릭터의 겉모습보다는 장소와 분위기 묘사가 더 효과적이라는 것, 글을 쓰고 싶으면 많이 읽고 많이 써야 한다는 것. 반대로 견해가 다른 부분은 바로 줄거리를 다루는 방식이더군요. 저 같은 경우는 설정, 플룻, 배경에 대단히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는 글쟁이입니다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만약 그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나머지 것들과 균형이 맞지 않는 것이 있으면 과감히 버립니다. 그래서 한 가지 기획을 밀고 나가더라도 어느 것 하나 처음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자랑이라고 할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이지만) 고등학교 시절부터 구상해온 자작 판타지 소설 프라즈 다르므와 L.W의 기본적인 구조조차 완료되지 못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바꾼 적이 있습니다. 결국 나중엔 지쳐서 기본 플룻을 구상해놓고 설정, 인물, 배경을 잘 조율해서 균형을 맞추는 쪽으로 방침을 바꾸었습니다. 확실히 이 쪽이 더 편리하더군요. 그 뒤로 플룻 구조를 자주 애용하고 있습니다. 저 같은 방식이 좋은 사람은 저 같은 방식을 쓰면 되는 거고, 스티븐 킹 같은 방식이 좋은 사람은 스티븐 킹 같은 방식을 사용하면 되는 것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 책은 가르쳐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충고하기 위해 있는 책이므로 결코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단지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거를 것은 거르면 됩니다.

4. 인생론

구구절절한 것은 다 접고 '시작하기 직전이 가장 두려운 순간이다'라는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더군요. 저 같은 경우 요즘 부쩍 한글 프로그램을 켜지 않는 일이 늘어졌습니다. 딱히 게을러져서가 아니라 시작한 것을 끝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기 싫어서입니다. 이미 시작한 것을 매 순간마다 또 시작해야 한다는 그 지긋지긋함이 싫어서 방치해 둔 글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삶의 중요한 순간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니, 평소에 잘 해놓아야 한다는 것만큼은 교통 사고를 통해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어쨌거나 글은 일단 써두는 것이 중요하군요.

5. 그리고 한 걸음 더

퇴고를 하는 요령에 대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저는 대충 한 번 쓱 훑어보고 맞춤법만 고쳐서 내놓는 정도로만 퇴고를 하는데 본문에서 등장하는 퇴고의 방식은 제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철저하더군요. 과연 돈 받고 일하는 프로는 냉정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 기분이 가라앉았습니다. 전 다른 사람의 글에는 철저히 냉정한데도 제 자신의 글에만은 냉정하기가 힘들어져서, 어디가 틀린 건지 알아도 '나중에 쓸데가 있을 거야!'라고 애써 생각하면서 고치려 들질 않고 누가 그 부분에 대해 지적하면 '이건 말이지….'라고 변명부터 늘어놓기 시작해요. 고질적이지요. 고쳐야지 생각을 하면서도 아예 글이 진도가 나가질 않으니 이것도 잊고 맙니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할 텐데 말예요. 하여간 말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실천을 해야 한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P.S : 창작론에서 잠깐 언급된 동양은 동양이다라는 책에 등장한 공간이 너무 환상적이어서 한 번 실제의 책을 통해 확인하고 싶었는데 인터넷 서점을 뒤져봐도 동일한 제목은 커녕 그 비슷한 제목도 없군요. 번역본은커녕 수입되지도 않은 건가요, 아니면 제가 못 찾은 건가요? 꼭 한 번 보고 싶은 작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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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니아 연대기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폴린 베인즈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시공주니어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 전 합본밖에 읽지 않았습니다. 분권 세트는 안 읽어봤기에 분권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등장인물

모두들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나니아에 물들어가는, 혹은 처음부터 녹아 있는 그 모습에 무척 호감을 느꼈습니다. 게다가 캐릭터들이 대부분 진취적인 성격이라 읽는 내내 어떤 캐릭터의 우유부단함이나 주저함으로 짜증을 낼 일도 별로 없었구요. 주인공 아이들도 순수하고 착해서 사랑스러워요. 때문에 딱히 싫어하는 캐릭터는 없습니다. 하지만 악역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무조건 악하다고 할 수만은 없는 인물들인데 무조건 사악하게만 묘사하는 것에는 반감이 느껴지네요. 그것만 어느 정도 절제하면 좋았을텐데.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캐릭터는 에드먼드 페번시. 어렸을 땐 어느 정도 어딘가 어설픈 심술맞음이, 커서는 침착하고 사려 깊은 면이 제각각 마음에 들었습니다. 두 시절 다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어요. 그렇지만 '사자와 옷장' 이후로는 다른 형제들에 비해 그다지 튀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조금은 아깝네요.


문체

어린이가 읽기 쉽도록 노력을 한 흔적이 곳곳에서 보입니다. 독자에게 직접 상상력을 불어넣어 주려는 그 친절한 어조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마치 '화롯가에서 무릎 위에 손자손녀를 않혀 놓고 이야기를 해 주는 할아버지' 같은 느낌을 주더군요. 저는 책을 보면서 그림을 그리듯이 인물과 주변 풍경을 상상하곤 하기에, 전반적으로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만… 배경 묘사와 인물의 성격 묘사는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정도인데 인물 묘사는 어째 그리 구체적이지 못한느낌이에요. (주인공 아이들 중에서는 외모가 가장 많이 언급되는 수잔도 기껏해야 '가족 중에서 가장 미인이다'라는 정도밖엔….) 이것 역시 어린아이들의 상상력을 배려해서 그런 것인지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흠으로 잡기 미묘한 부분이네요. 이쪽은 작가 자신의 재량과 의도에 달린 문제니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판단을 보류하겠습니다.


시점

전지적 작가 시점. 이 책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아이들이나 동물들이니만큼 한 주인공에 중점을 두고 나니아의 세계를 구체적으로 서술하기란 어려운 일이겠지요. 적절한 선택이라고 봅니다.


플롯, 내적인 요소들에 대한 사건

'아슬란이라고 불리는 사자 모습의 창조주에 의해 나니아라는 나라에 소환된 아이들의 이야기'라고 줄거리를 압축할 수 있는 이 작품은, 보는 내내 흥미로워요.오래 전 작품이라 전개가 다소 진부한 느낌은 있습니다만, '뻔히 예측 가능한데도 불구하고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희랍 신화에서 차용한 부분이 많아 익숙하고 알기 쉽기는 해도 신선하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세계관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흡입력이 높아요. 제가 느끼기에 가장 좋았던 점은 하나의 사건을 자질구레하고 지루하게 오래 끌지 않는다는 점이었어요. 중요한 사건도 길게 처리하는 편은 아닙니다만, 중요하지 않은 사건은 즉시 해결하고 넘깁니다. 군더더기 없는 빠른 진행이 시원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때문에 한 번 읽으면 한 부가 끝날 때까지 그 자리에서 다 읽을 수 있을 정도예요. 때문에 회고해보면 주인공들과 함께 긴 이야기를 쭉 거쳐왔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길다고 느껴지지 않아요. 거기에다 따로 따로 보면 개개로 분리할 수 있는 작품들이 거대한 하나로 이어지는 정밀한 자리 놓기, 루이스의 아름다운 상상력 등, 이렇듯 한 편의 동화로는 손색 없는 작품입니다만….
역시 성인의 눈으로 보면 이래저래 걸리는 점이 있을 수 있겠지요.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걸렸던 부분은 '캐스피언 왕자'에서 등장했던 검은 난쟁이 니카브릭의 죽음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그와 그의 종족이 민족중심주의에 빠진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그가 본질적으로 악한 인물이라고는 잘라 말할 수 없을 텐데 하얀 마녀의 세력 축에 영합하려고 했다는 이유로 꼭 그렇게까지 부정적으로만 묘사해야 했을까… 싶어서 좀 씁쓸했습니다. 두 번째로 아쉬운 것은 아슬란의 역할입니다. 동화로서는 아이들 스스로 난관을 해결하는 쪽이 바람직하겠습니다만, 아슬란은 나올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어김없이 나타나서 홀로 모든 일을 해결하곤 홀연히 사라지더군요. 가면 갈수록 '왕 중의 왕', '창조주', '전지전능한 자'보다는 '조력자'나 '조커'에 가깝게 느껴지던데요. 이렇다 보니 몇 권 분량을 보다 보면 패턴이 보여서 흥미가 반감됩니다. 유감스러운 부분이에요.
이것 말고 작가의 기독교적 사상의 영향으로 인한 이분법적 선악대립의 측면이 강하다는 의견이 많던데, 이에 대해서는 동의합니다만, 무교인 저로서는 견해가 다른 부분만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을 뿐이지 역력히 거부감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무난히 읽어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보다 방해가 된 건, 영국 문화를 이해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구절들이 가끔 있어서 고개를 갸웃거린 부분이 몇 개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사냥개 대회 등) 그렇지만 원래부터가 영국 어린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기 때문에 딱히 흠 잡고 싶은 부분은 아니네요.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깊이 신경쓰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않는다면 무난히 읽을 만해요. 기독교적이니 톨킨과 비교된다느니 하는 평론을 신경쓰면 이 작품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습니다.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동화이고, 동화는 동화로서 보는 게 가장 좋습니다. 그렇다고 동화로서 보기에는 몇몇 거슬리는 사상이 있어서 걱정스러운 면이 어느 정도 있긴 합니다만… 이 작품을 스스로 찾아보거나 누군가에게 선물할 정도의 연령대에 속한 사람이라면 뭘 받아들이고 뭘 걸러야 하는지는 스스로가 잘 알 거라고 생각해요.


책의 외적인 요소

책 상태는 훌륭합니다. 1059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인데도 불구하고 제본 상태가 잘 되어 있고, 보기만 해도 움찔할 만한 두께에 비해 가독성이 뛰어난 편입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엔 압박감이 느껴져도 막상 보고 나서 시계를 보면 생각보다 시간이 얼마 안 걸렸다는 점에 놀라게 되지요. 삽화가 생각보다 적었고 흑백이었다는 점이 조금 아쉽지만, 그러면 분량이 더 늘어나고 단가가 더 뛰겠지요? 어쩔 수 없지요. 책 자체 부록에 대해서는 만족. 다만 지도가 상상보다 작았다는 걸 제외하면. 단지 흠이라고 할 수 없는 흠이라면, 순수한 분량만도 "이걸 언제 다 봐!" 이런 소리가 나올 지경으로 많은데 양장본이라서 무겁기 그지없다는 점이지요. (현재 제 집에 있는 책들 중 사전류를 제외하면 가장 두꺼운 책이에요.) 휴대하고 다니기에는 무리가 따라요. 그렇지만 어차피 한 번 보게 되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빠져들게 되는 책이니까 휴일날 오후 집에 놓고 천천히 읽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총평

아쉬운 점이 약간씩 눈에 띄긴 하지만 훌륭한 작품임은 틀림없습니다. 판타지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재미 면에서도 국내 3류 양산작에 비할 바가 못 되요. 최근에 본 것들 중 '이 책을 위해 시간을 소비한 것이 결코 아깝지 않아.'라고 생각한 몇 안 되는 작품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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