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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센디어리스
권오경 지음, 김지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월
평점 :
권오경, 『인센디어리스』(문학과지성사)(2023)
<믿음에 대하여>
믿음은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끝날까.
불신에서 광신까지, 우리는 믿음의 스펙트럼에서 어떻게 이동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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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했어요. 윌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떠돌아다녔으니까요. 그가 나를 이 땅에 붙들어줬어요. 밤새도록 내게 붙어서._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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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윌’과 그의 연인인 ‘피비’, 그리고 종교 집단 ‘제자(弟子)’의 창시자 ‘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한국계 이민자인 피비는 어릴 적 자신이 운전하던 차에서 엄마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죄책감을 안고 살아간다. 그러던 중 한 파티에서 대학생인 윌을 만나고 사랑에 빠진다. 방황하던 피비는 윌을 만나고 이 땅에 정착한 느낌을 받는다. 윌은 피비에게 연인으로서의 믿음을 넘어 미국이라는 땅에 대한 믿음을 준 것이다. 그녀의 방황에는 디아스포라로서의 외로움, 가족에서의 외로움 등이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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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나님께 하는 기도라고는 한 가지뿐이었어요. 주님, 저 아파요. 하지만 이제는 나도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하나님의 뜻은 곧 내게 내려진 은총이고, 나는 그것을 기뻐하겠어요. 믿음으로 행동한다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요._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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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언제부턴가 그녀는 믿음의 방향을 바꾼다. 피비는 존을 만나고 하나님을 만난다. 그녀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에서 말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윌은 종교 모임에서 그녀에게서 듣지 못했던 과거 이야기를 듣는다. 더 이상 윌은 피비를 그곳에 정착시킨 사람이 아니었다. 믿음을 향한 그녀의 절실함은 고통을 뿌리로 한다. 사람은 무엇을(누구를) 어떻게 믿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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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너는 내가 이해하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고 했지. 그래서 지금 난 노력하고 있어, 이렇게._p.12
하지만 네가 지금 그대로 지옥에서 살게 해줘야겠더라고. 누군가가 지옥에 박혀 있기르 ㄹ바라는 건 처음이야._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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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전반적으로 윌의 시점에서 전개되지만, 독자는 점점 피비에게로 고개를 향하게 된다. 윌은 그다지 좋은 사람이지 못했다. 그런데도 윌과 함께, 윌을 통해 피비를 상상할 뿐이다. 그것은 윌에게 지옥이다.
작가는 아시아인(사람, 커뮤니티 등), 여성, 성소수자, 낙태권 등을 이야기에 올려놓는다. 특히 현재 미국 사회의 최대 쟁점이 된(물론 한국에서도 꾸준히 제기된) 낙태권에 관한 서사가 눈에 띈다. 존이 창립한 종교 집단 ‘제자(弟子)’는 태아의 생명권을 중시하면서 임신중절수술을 시행하는 병원을 테러해 소녀 다섯 명을 죽이는 위선을 보여준다. 이 또한 인간의 믿음이 낳는 아이러니다.
『인센디어리스』는 인간 내부에서 발생하는 믿음을 천착한다. 윌이 더 이상 하나님을 믿지 않았음에 알 수 없는 공허감을 느꼈던 것은 신(神)의 유무와 관계없이 믿음(信)이 인간에게 필수적이기 때문 아닐까.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