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 키냐르의 수사학
파스칼 키냐르 지음, 백선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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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키냐르, 파스칼 키냐르의 수사학

 

독서는 방황이다.” 책 서두에서 옮긴이는 키냐르의 떠도는 그림자들을 인용하며 난해한 그의 글에서 길 잃는 즐거움을 느낄 것을 제안한다. 나는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길을 잃는 기분이었다. 논증하지도 서로 유기되지도 않는, 파편적인 글 사이를 헤매며 몇 개의 문장 앞에서 잠시 서성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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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문학 언어는 두려울 정도로 발가벗은 언어다. 언어의 알몸 상태를 로기노스는 숭고함이라고 불렀다._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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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냐르는 이성적인 결과물을 거부하는 것 같다. 철학도, 정신분석도 모두 거부한다. (철학은 이미 제1차 세계대전에 위기를 겪었다.) 그는 프로토 등 수사학자들을 경유해 현대 사상이 버린 서양의 전통사색적 수사학박해받은 한 전통의 기록을 정리하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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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모든 앎은 인간의 무지가 되었고, 존재는 추정이 되었고, 세상은 인간의 제작으로 변한다. 인간에게는 앎이라는 사실 자체가 제 유한성의 흔적이다.(중략) 무지(ignorantia)는 두 배로 박학(docta)하다. 무지가 무지하다는 걸 알고, 무지가 꾸며 낸다는 걸 알기에 그렇다. 박학한 무지에 관한 소론 1(Liber primus2장의 자랑스러운 표현은 이것이다. “진실의 명확성에 다가갈 수 없는 가운데 나는 박학한 무지의 뿌리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_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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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앎이란 그저 무지이며 유한성의 흔적일 뿐이다. 키냐르는 무지가 무지하다는 것을 아는 박학한 무지를 지향한다. 진실의 명확성에 다가갈 수 없기에 그가 지향한 것은 이미지 탐구의 천착이지 않을까. “안내하는 별도 없으니 언어의 부재하는 별을 단호히 따라가야 한다.”(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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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다는 건 여러 세기를 가로지르며 시간의 바닥에서 쏘아 올린 유일한 화살을 눈으로 찾는 일이다._p.54

저자에게나 독자에게나 책이 다시 덮이는 순간, 어둠은 책을 펼치기 전보다, 혹은 책을 쓰기 전보다 틀림없이 더 어두워진다._p.129

스탕달은 글쓰기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찢어진 상처들을 바로잡는 데 몰두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책들은 그런 누전 사고들이 낳는 경이로운 불꽃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_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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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이미지들. 언어의 부재하는 별을 따라감. 더 깊은 어둠. 불꽃들. 시간의 바닥에서 쏘아 올린 유일한 화살. 결국, 헤매는 것.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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