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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스케치 마스터 컬렉션 (스페셜 양장 에디션) - 아티스트, 일러스트레이터, 건축가, 디자이너를 위한 펜 스케치의 고전 ㅣ 마스터 컬렉션
아서 L. 겁틸 지음, 수전 E. 메이어 엮음, 권루시안 옮김 / 진선아트북 / 2019년 10월
평점 :
“스케치는 내 작업의 근본이다”
“습작 없이는 어떤 대작도 없다”_빈센트 반고흐.
글을 쓰던, 그림을 그리던 빈 종이 앞에선 늘 주저한다. 시작이 서툴기도 하고 잘 못 그어진 선(글) 하나로 망쳐버릴까 두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두려움을 살짝 걷어내 줄 수 있는 것이 글에서는 물론 그림에서는 바로 스케치라고 생각한다. 밑그림은 틀리면 다시 고칠 수 있다는 여지를 둘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채색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사람의 경우 펜 스케치는 채색에 대한 두려움 없이 펜 한 자루와 종이 한 장으로 시작할 수 있으니, 마음을 가볍게 해준다. 아마 내가 펜 스케치 또는 어반 스케치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림을 배우는 방법은 유튜브와 온라인 강의 등 수없이 많지만, 여전히 손에 잡히는 ‘바이블’ 한 권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언제든 펼쳐 참고 할 수 있는 실질적 지침서이자 교본, 바로 ‘펜 스케치 마스터 컬렉션’ 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놀라웠던 점은, 그것이 1930년대에 쓰인 저작이라는 사실이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100년 전, 이미 펜 드로잉의 체계적 이론이 완성되어 정리되어 있다니 놀라웠다. 아서 L. 겁틸(Arthur L. Guptill)의 친절하고 세심한 설명을 오늘날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도 행운이고, 100여년 전 그림 선생님을 만나서 배우는 시간 여행 같은 신기한 경험으로 느껴졌다.
겁틸은 미국 고램주에서 태어나 1912년에 프랫 인스티튜트를 졸업 후 메사추세츠 공과대학에서 공부했지만 그의 이력은 공대생의 역할보다 아트(미술)쪽으로 많이 기운 듯 하다. ‘웟슨&겁틸 출판사’의 공동 창립자이고, 『아메리칸 아티스트』지의 공동 편집장이었으며 화가, 아트디렉터, 광고 미술가, 건축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였고, 미술교육과 관련 저술 활동을 활발히 하였고, 영국 왕립예술원의 명예회원이었다고 한다. 이 정도면 1930년대 르네상스형 예술가라 불러도 손색이 없지 않을까.
책의 가장 큰 매력은 방대한 분량의 글 속에 녹아 있는 저자의 세심한 배려다. 심지어 두꺼운 종이나 얇은 판지를 종이 클립으로 고정해 만든 잉크병 홀더를 직접 그려 설명하는 부분(p.17)에서는 그의 ‘과한 친절함’이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져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단순히 기법만을 전수하려는 책이 아니라, 그림을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본인의 경험을 나누는 느낌이 더 크다. 책의 곳곳에서 친절한 성품의 자상한 할아버지의 온기가 느껴진다. 딱딱한 교본같은 느낌이 아닌 이 점이 제일 마음에 와 닿았다.
『펜 스케치 마스터 컬렉션』은 스케치에 필요한 도구와 재료 소개부터, 선 긋기와 해칭, 명암 표현, 구도와 강조의 원리, 건축적 투시와 실내 표현까지 예술적 사고의 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다룬다. 초심자는 기초를 익히기에 좋고, 숙련자는 각 장의 깊이 있는 설명에서 새로운 배움과 확신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책은 오래전 쓰여졌지만, 현재에도 그림에 관심이 있거나 미술학도들에겐 좋은 참고 서적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구성은 고전적으로 느낄 수 있지만 클래식한 120여장의 일러스트레이션 예시가 풍부하여 옛 건물들 그림을 감상(?)하는 재미도 솔솔하다. 이런 멋진 책(겁틸선생님)을 시간과 공간을 넘어 만날 수 있게 해준 #진선출판사 에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펜 스케치 마스터 컬렉션』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 펜을 드는 이들에게 두려움 대신 용기를, 완벽함 대신 그리는 과정의 즐거움을 선물할 것이다.
백문불여일화(百聞不如一畵)
조용한 용기를 내어 오늘도 공백에 첫 선을 그어봐야겠다.
🖋“만약 우리가 그 어떤 것도 시도할 용기가 없다면 우리의 삶은 어떨 것인가?”_반고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