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쓰는 과학자들 - 위대한 과학책의 역사
브라이언 클레그 지음, 제효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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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연대기, 미완의 아름다움 속으로 떠나는 여정


신비로운 기운을 머금은 표지에 시선을 잡는다. 1683년 알랭 마네송 말레의 손끝에서 탄생한 《우주에 관한 설명》 속, 1566년 코페르니쿠스의 담대한 지동설을 펼쳐 보인 우주 구조도는 오롯이 그 자체로 한 폭의 예술 작품이다. 라틴어 'Scientifica'가 지식을 빚어내는 행위를, 'Historica'가 그 연구의 깊이를 설명하는 것이니, 이 책은 단순히 과학을 넘어서 지식의 역사를 오롯이 담아낸 여정을 보는 것 같다.


고대 문자의 태동과 인쇄술이 과학의 지평을 넓힌 순간부터, 스티븐 호킹과 리처드 도킨스 같은 현대 과학의 거장들, 그리고 논란 중에 있는 끈이론(초끈이론)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150여 권의 과학 서적을 씨실과 날실 삼아 과학의 거대한 흐름을 스토리텔링으로 유려하게 엮었다. 그 덕분에 읽는 내내 마치 흥미진진한 소설을 읽듯 과학의 여정을 따라갈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진정한 백미는 280여 점에 달하는 고화질 삽화와 사진이 선사하는 시각적 향연에 있는 것 같다. 과학 서적들의 초판 이미지들과 때로는 연구에 몰두하는 과학자들의 생생한 모습까지 담아내어 읽는 내내 호기심과 몰입을 한층 끌어올렸다.


특히, '내면일기'에서 이미 만났던 마리 퀴리와 피에르 퀴리 부부의 열정적인 실험 장면, 그리고 1910년 마리 퀴리가 집필한 '방사능에 관한 논문'에 실린 스펙트럼 분석 결과 사진은 경외감마저 자아냈고 미드 '그레이 아나토미'로 우리에게 친숙한 1858년 헨리 그레이의 《해부학》은 그 발행 연도를 의심케 할 만큼 다채로운 색감과 섬세한 디테일로 한참을 보게했다. 찰스 다윈의 할아버지인 이래즈머스 다윈의 1806년 시 모음집에 담긴 꽃과 잎새 그림 역시, 오늘날의 정교한 식물도감에 견주어도 손색없을 정도의 아름다움을 뽐냈다.


저자가 이 책에서 가장 많이 언급하는 서적은 아마도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일 것이다. (*호킹이 이 책을 쓸 때, 수학 공식이 하나 추가될 때마다 독자가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출판사의 경고는 재미있는 에피소드인데, 가장 많이 팔리기도 한 책이지만, 가장 완독률이 낮은 책 1위라는 역설적인 기록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 브라이언 클레그는 《시간의 역사》가 '대중 과학 도서 시장'의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고 높이 평가한다.


과학은 철저한 검증과 근거를 토대로 '이론'을 정립하지만, 새로운 과학적 발견이나 이론들은 종종 당시 시대를 지배하던 종교적, 정치적 압력과 사회적 혼란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헤쳐나가야 했다. 코페르니쿠스도 그랬고, 종의 기원을 거의 완성하고도 발표에 눈치를 살핀 다윈도 예외는 아니었다. 때로는 평생을 바친 연구가 잘못된 것으로 치부되어 사장될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아인슈타인조차 자신이 도입했던 '우주 상수'가 팽창하는 우주에는 부적절했음을 인정해야 했던 것처럼 탐구의 과정에서 마주하는 작은 결함이나 실수가 오히려 지속 가능한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과학적 진실'을 향한 인류의 끊임없는 호기심은 지속적 발전을 이끌 것이며, 우리의 미래 또한 과학의 진보와 궤를 같이할 것이다. 저자는 최고의 과학책이 되기 위한 몇 가지 조건들을 꼽는데, 따뜻한 인간미가 배어나는 이야기가 필수적이며, 책은 얇을수록 좋고 그 내용은 풍성하고 정교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중이 과학에 깊은 관심을 기울일수록 더 많은 과학자들이 양성될 수 있고, 과학의 필요성과 연구 자금의 효율적인 사용에 대한 더 넓은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설득력 있다. 


한 줄 서평

"과학과 기술은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과학의 '완성'은 작은 완성들이 쌓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작은 미완성>들이 모여 비로소 가능했던 일이다. 그리고 그 찬란한 발전의 흐름 속에는 대중을 위한 과학서들이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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