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다가, 뭉클 - 매일이 특별해지는 순간의 기록
이기주 지음 / 터닝페이지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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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삶의 기준이나 가치와 같은 답이 없는 질문의 무한 궤도에 빠질 때가 있다. 빛이 있기에 어둠이 있고, 능선을 오르다 보면 결국 다시 내려가는 길이 있는 것처럼, 욕심을 부리면 서두르게 되어 일을 망치는 것처럼(물론 이는 순전히 인간적인 관점에서지만), 세상을 유지시키는 중력, 만유인력, 전자기력 같은 물리 법칙이나, 두 가지 성질의 화학 물질이 기묘하게 반응하는 화학 작용 등, 세상을 지속하게 만드는 법칙이 있듯이, 우리의 삶에도 어떤 기준이나 방향이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런 질문들은 답을 찾기보다는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지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결국 원점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러다 결국 얻게 된 작은 결론이랄까. 그저 삶이란 각자의 ‘해석’에 달린 것이며, 그것들이 쌓이면 아마도 ‘가치관’이 될 것이다. 사실, 기준이나 옳고 그름이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림을 잘 그리지는 못하지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사실은 그림 그리기보다는 멍하게 있을 때의 느낌을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필사 같은 글쓰기에도 흥미가 있다. 오래전부터 ‘이기주의 스케치’라는 유튜브 채널을 구독해왔고, 그의 차분한 목소리와 “그러면 어때요,” “그래도 괜찮아요”라는 말과 함께 스윽스윽 그려지는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었다. 무언가 툭툭 던지는 말속에 보는 이를 위로하는 작은 철학이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가 그림을 그리며 느낀 삶의 감동을 책에 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을 읽다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뭉클해지며, 그래도 괜찮다는 작은 위로를 얻게 된다.


✏️그림 그리기뿐만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방식으로 힐링의 시간을 만들어주는 도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악기 연주를 통해 또 다른 세상을 품는 사람들도 있고, 많은 음악가나 철학가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어떤 이는 숲을 거닐며 삶 속에서 작은 철학을 깨닫기도 하고, 새소리나 음악이 흐르는 카페에서 뜨개질을 하며 그런 시간을 누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작가는 그림 속을 거닌다. 도시와 숲, 마을과 길, 사람들의 발걸음을 그리며 삶을 해석한다. 그리고 그린다. 그리고 깨닫는다. 여기서 "그리고"는  And이기도 하고, Drawing이기도 하다. 그림이라는 도구를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 말도 없고, 소리도 없는 그림의 힘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이야기와 사람들의 소리도 들린다.


✏️이 책은 그림을 그리는 테크닉이나 요령을 배우는 방법론적인 책이 아니다. 작가가 다양한 풍경을 지닌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며 그림을 그리며 느낀 삶에 대한 ‘작은 철학’을 담은 에세이다. 여행이나 그림, 스케치나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작가의 말처럼 삶의 ‘후시딘’이 되어줄 것이다.


✏️책을 덮으며, 마지막 페이지에 실린 이기주 작가의 그림을 따라 그려본다. 남해의 다랭이 마을, 층층이 자리 잡은 그 마을을 오랫동안 기억해왔다. 오래전 나도 그곳을 카메라를 메고 오른 적이 있었다. 해질녘 바다의 윤슬 아래 펼쳐진 그 삶의 층층을 보며 평온함을 느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림을 그리다 보니 그때의 마음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참 포근한 시간이었다.


📗책속으로…


*그림같은 매일.


P5. <작가의 글중>

그림과 글은 마음을 부지런히 쓰는 일이다. 그래서 정신 건강에 딱 좋은 운동법이라고 생각했다. (중략) 육체의 건강만큼 정신 건강도 잘 챙기려면 더 그리고 더 쓰는 쪽을 택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림이나 글이나 무용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꽤나 유용한 지혜일지도 모른다.


P12

그림을 이루는 수천 개의 선이 한결같이 바르고 곧을 수는 없다. 확실한 건 한때 마음을 괴롭히던 틀린 선이 나중엔 신경쓰이지 않더라. 흠 없는 인생은 없다.


P14

수채물감, 물이 마르는 시간을 따져 다음 색을 칠해야 한다. 그래야 아주 맑고 투명한 수채화를 그릴 수 있다. 탁하고 지저분한 수채화를 그렸다면 조급했거나 게을렀을 거다. 인생도 그렇다. 조급해서도 안 되고 게으리지도 말아야지. 뭐든 때를 잘 아는 지혜다.


P20

근심은 생각을 먹고 자라는데 그림 그리기는 이런 근심이 자랄 수 없는 완벽한 환경을 제공한다고 믿는다. 생각이 멈추면 근심마저 어느새 사려져 있던 게 한두번이 아니더라. 


P40

내가 잘하고 있다고 토닥거려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참 다행이다. ‘잘하고 있어’라는 말이 필요한 상황과 분위기는 늘 비슷했다. 어떤 일에 단단히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거나 가는 길이 불안했을 때 이런 말을 듣고는 마음이 꽤 좋아졌던 기억이 있다. 내가 잘하고 있다는 사실보다 내 편이 되어 주겠다는 뜻이 더 크게 다가와 적어도 외로움 정도는 덜어낼 수 있으니까.


P77

‘끈기’와 ‘끊기’라는 두 개의 글맛 좋은 단어를 엊그제 저녁 식사 자리에서 듣고는 ‘끈기’로움으로 일과 삶을 구분하지 못하며 억척같이 살아온 게 대견하면서도 이제는 ‘끊기’로움이 필요할 나이가 되지 않았나 생각했다. 


P80

‘속초아이’라는 대관람차가 멋지게 자리 잡은 속초 풍경을 멀리 두고 그린다. (중략) 답답한 속도로 느릿느릿 빙빙도는 대관람차를 보면서 높은 곳도 있고 낮은 곳도 있지만 결국 ‘제자리’라는 것이 어쩌면 우리의 인생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즐거울 때가 있으면 또 슬플 때도 있는 거니까. 나만 그런게 아니라 누구나 그런 거니까. 그래, 어차피 돌고 도는 게 인생인데 차라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지내고 있다’ 라고 여기는 편이 이득이다.


P95

내려놓음… 무엇이 부족해서 욕심을 부리며 사는지 모르겠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부터 인정받고 싶은 마음까지 나이가 들어도 욕심은 어쩔 수 없는 걸까? 사람마음이란게 한없이 넓은 우주이고 그 우주의 한구석 자리 내주는 게 뭐 그리 대수일까 생각했다. 어쩌면 생각보다 욕심이 너무 넓어 마음 한구석을 쉽게 내주기가 어려웠는지도 모르겠다. 저기 저 빨간 지붕집 같은 소박한 정도의 욕심이면 어땠을까?


P192

살다가 만난 문제가 경험으로 풀릴 때가 있다. 언젠가 한 두 번 겪었던 일들이 경험으로 저장되어 있다가 꽤 쓸모 있게 고민을 풀어주었던 것부터 내 경험은 아니더라도 남이 경험해서 알려주는 책이나 영상으로 문제를 풀게 된 적도 어지간히 많았으니까. 결국 오늘 겪은 모든 일이 다 소중해진다. 쓸모없는 경험이란 없다는 뜻. 그래서 인생이라는 그림을 재미있게 잘 완성하자는 뜻. 인생, 다 그렇게 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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