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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05
알베르 카뮈 지음, 김진하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8월
평점 :

이방인
- 알베르 카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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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땅의 삶을 죽을 때까지 사랑하며 사는 것, 비록 타인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더라도 세상의 침묵과 무관심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카뮈가 말하고자 하는 부조리의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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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본 글 중 내 뇌리를 떠나지 않는 문구가 있다. 그것은 우리들 삶에 대한 짧은 문구였는데, [삶은 기쁜 얼굴로 부르는 슬픈 노래] 라는 글이다. 웃는 날보다는 고민의 날이, 그리고 현재의 기쁨보다는 과거의 회한과 미래에 대한 불투명한 걱정으로 채워지는 것이, 슬프지만 그래도 살아내야 하기에 웃을 수 밖에 없는 우리들 삶의 진모습이라 생각했다. 이방인의 주인공을 보며, 연민과 존경의 ‘기쁜 얼굴로 슬픈 노래를 부르는 뫼르소’를 만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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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르소를 만나며, 또 하나 생각난 단어는 바로 프리드리히 니체가 말한 초인, 위버멘쉬(Übermensch)와 너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였다, 뫼르소는 끊임없는 삶의 긍정을 해석하지는 않았으나, 보통인들과는 다른, 보통의 슬픔과 고통에서 초연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며, 심지어 그토록 사랑한 엄마의 ‘죽음’에 대해서도 초연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죽음에 대해 초연한 자세는 결국 본인의 재판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으로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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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삶, 심지어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도 과묵한 태도를 보인 그였지만, 사실은 주변의 사람들에게 세세하게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 사랑하는 연인과의 육체적 욕구에는 빠르게 반응하고, 주변의 자연의 변화를 아름답게 표현할 줄 알며, 주변인들에게는 매우 친절하고 배려하는 자세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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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에서는 중요한 세가지의 죽음이 제시된다. 어머니의 죽음, 싸움에 휘말린 아랍인의 죽음, 그리고 뫼르소의 사형선고이다. 어머니의 죽음은 죽음을 대하는 뫼르소의 담담함이 들어가 있고, 충분히 설명되지 못한 아랍인의 살해동기는 뫼르소의 사형선고로 이어지는 스토리적 연줄 역할을 할 뿐이다. 다만 뫼르소는 죽임이 아닌 현재의 삶 자체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현재 살고 있는 삶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항소를 하여 재판 결과를 바꿀 수도 있지만, 그러한 행동은 생명을 잠시 연장할 뿐, 삶의 가치적 측면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늘 ‘삶을 살아야 할 가치’에 대해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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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르소는 본인의 사형에 직면한 상황에 처해서야 근원적으로 삶이란 죽음을 의식하고 살아가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모든 관계는 일시적이고 파편적이며 주어진 삶을 홀로 성찰하고 관찰하는 철학자의 자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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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은 사건전개에 관점을 두고 읽을 쉬운 소설은 아니라고 역자도 말하고 있다. 그리고 2번 이상 일독할 것을 권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결론을 알고 나서야 앞부분의 뫼르소의 삶과 생각이 읽혀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뫼르소와 같이 우리들 자신의 ‘죽음’을 의식할 수 있을 때야 비로소 우리들 ‘삶’을 긍정할 수 있을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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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이신 김진하교수님은 책의 해설편에서 ‘부조리한 인생 뜨겁게 사랑하기’란 글을 올리고 있다. 알베르 카뮈의 삶과 글, 철학적 탐구와 문학적 형상화, 프랑스 문체의 미문의 유혹과 직역의 불가능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외국 문학작품을 옮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직역과 의역사이의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P219 “프랑스어의 화자어법의 불투명성은 프랑스어로 미세하게 드러나는 차이라서 한국어 번역으로 그 효과를 살려 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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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8 “인간의 삶에는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과 불명확한 감정, 예기치 못한 감각 들이 언제든 끼어들 수 있다. 이성이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수단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성만으로 삶을 다 설명할 수 는 없다. 삶은 부조리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