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미워했던 여름 ㅣ 래빗홀 YA
이로아 지음 / 래빗홀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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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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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흔한 판타지풍 청소년 소설인 줄 알고 가볍게 펼쳤다가 손끝이 서늘해졌다. 이 소설은 결코 다정하지 않다. 오히려 열아홉 소년의 밑바닥에 있는 죄책감과 위선을 아주 날카로운 칼로 사정없이 헤집는 이야기에 가깝다. 주인공 연제에게 엄마는 평생의 수치였다. 귀신도 안 믿으면서 사람들의 불안을 먹고사는 가짜 무당. 하지만 엄마가 의식을 잃자 연제는 당장 먹고살기 위해 그 부끄러운 사기극을 이어받는다.

얄팍한 말장난으로 친구들의 돈을 뜯던 연제 앞에 천사가 나타나 진짜 신통력을 주었을 때, 그건 구원이 아니라 지옥의 시작이었다. 친구 한겸의 눈앞에 닥친 생생한 죽음의 비주얼을 보게 됐으니까. 스무 살만 되면 저주가 풀릴 거라 믿으며 가짜 부적 한 장에 목숨을 거는 한겸을 보면서 연제는 깊은 딜레마에 빠진다. 살리고 싶은데, 살릴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여기서 작가의 집요함이 빛을 발한다. 소설은 연제를 정의로운 영웅으로 만들지 않는다. 연제는 한겸을 살리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 죽음에 내 엄마가 얽혀있을지도 모른다는 이기적인 두려움에 짓눌린다. 그리고 인간이 가장 나약해졌을 때 쓰는 치졸한 치트키를 쓴다. 바로 미안해하는 대신 차라리 상대를 미워해 버리는 것.

소설 속 연제가 집착하는 다빈치의 그림 <수태고지> 이야기는 이 작품이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을 대변한다. 연제는 왜 사람들이 성모의 이상하게 긴 오른팔을 보며 천재적 왜곡이라며 억지 쉴드를 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이상한 건 그냥 이상한 건데 세상은 왜 자꾸 그럴듯한 정답을 만들어 포장할까. 이 비뚤어진 질문은 결국 엄마에 대한 이해로 이어진다. 부끄러운 가짜 무당인 줄만 알았던 엄마의 자리에 서서 누군가의 죽음을 막기 위해 발버둥 치면서 연제는 깨닫는다. 자기가 본 건 엄마의 아주 일부분이었을 뿐이라는 걸. 누군가를 진짜 이해한다는 건 깨끗하고 보기 좋게 포장해 주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가장 못나고 일그러진 흉터까지를 그냥 묵묵히 응시하는 것뿐이다.

여름 방학의 끝, 죽음의 카운트다운을 마주한 한겸과 연제가 바다로 향하는 종반부는 숨을 죽이고 읽을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스무 살은 어른이 되는 낭만적인 나이가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남아 지독한 운명의 굴레를 끊어내야 하는 생존의 마지노선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 뇌리를 스치는 건 짜릿한 반전의 쾌감이 아니다. 온통 가짜와 거짓말로 가득했던 세계에서 기어코 진짜 서로를 구하겠다고 발버둥 친 두 소년이 남긴 뜨거운 열기다.

비록 내 뜻대로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고 당장 내일 죽음이 덮쳐올지라도, 후회와 자책을 잔뜩 짊어진 채 어디로든 움직이겠다며 발발걸음을 떼는 연제의 마지막 독백은 서글프면서도 단단하다. 내 못난 모습을 마주하기 두려워 차라리 주변을 미워하며 외로운 여름을 보내고 있을 모든 이들에게, 이 지독하고도 찬란한 성장통의 기록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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