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 여행기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7
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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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했습니다. %EC%B1%85





린시절, 저는 "소년소녀(어린이) 세계문학전집"이라는 서양 동화책 모음집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당시 전집은 위인전과 더불어 아이가 있는 가정집의 필수 아이템이었습니다. 사회 안정 & 슬슬 먹고살만하니 교양&교육에 눈을 돌리게 된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 공부는 끊이지 않는 돈줄이기도 하고요, 


원인은 어찌되었든, 제게는 아~주 긍정적인 유행이었습니다. 전집 독파를 통해 전세계 픽션의 큰 줄기를 파악할 수 있었고, 독서의 즐거움도 알게되었습니다. 톰 소여의 모험 / 동물농장 / 왕자와 거지 / 변신 / 노인과 바다 / 파리대왕 / 라푼젤 / 햄릿 / 이솝우화 / 맥베스 / 폭풍의 언덕 / 로미오와 줄리엣 / 한여름 밤의 꿈 / 오이디푸스 왕 / 베니스의 상인 / 보물섬 / 인어공주 / 백설공주 /  셜록홈즈 / 레미제라블 / 에드거 앨런 포 단편 / 그리스로마 신화 / 신데렐라 / 걸리버 여행기 등등 셀 수없이 다양한 얘기에 푹 빠져 지냈습니다. 그 때문일까요? 국어성적으로 머리아픈 일은 없었습니다 ㅎㅎㅎ 


그 소중한 세계문학전집이 "원작"을 사방팔방 자르고 붙이고 각색해서 (애들이 읽을 수 있도록 순화 & 교훈을 강조) 만든 결과물이라는 것은 꽤 오랜시간이 흐른 뒤 였습니다. 이후 수 지식충족을 위한 "완역본 독서 프로젝트"를 시도했으나, 첫 시도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컨텐츠들이 제 관심을 독점했습니다. 이미 결말을 아는 진부한 이야기보다는 신선하고 말초적인 자극에 끌렸어요. 



러던 중, 걸리버 여행기 완벽본을 접하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어릴 때 봤던 "걸리버 여행기 순한맛 - 소인국/거인국"과는 전혀 다른 얘기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사회인으로서의 한 사람의 인생"이 담겨 있었습니다. 사회, 정치, 인생의 쓴맛을 알고 난 뒤에 읽어서 그럴까요? 책 속의 신랄한 풍자에 웃고, 씁쓸해 하면서 쓰디쓴 소주 한잔이 생각났습니다. 


이 책은 소인국의 "줄타기" 잘해서 관직 얻기를 시작으로  유럽의 종교, 정치, 철학, 제도 등을 빠짐없이 까고 또 까고 있습니다. 담담한 말투라서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읽다보면 기가 찬 장면이 많이 나와요. 그리고 비슷한 상황이 현대에서도 벌어지고 있음을 알기에, 더더욱 쓴웃음이 나오더군요. 3~4백년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은 걸까요? 아니면 인간의 본질은 결코 변하지 않는 걸까요? 



가장 오래 뛰어오르기와 기어가기를 하는 사람에게 푸른 색깔의 비단줄이 수여되었다. 붉은 색은 차점자에게, 그리고 초록색은 3등을 한 자에게 주어졌다. 그들은 그 비단을 허리에다 띠처럼 둘렀다. 궁중의 고관대작치고 그런 허리띠로 장식하지 않는 자는 거의 없었다. 

그 전쟁의 발단은 이러하다. 우리가 달걀을 먹기 전에 그것을 깨트리는 방식으로 위쪽의 넓은 부분을 깨서 먹는 방식이 널리 인정되어 왔다. 그런데 현 폐하의 할아버지가 소년시절에 계란을 먹으려고 오래된 방식으로 그것을 깨다가 그만 손가락 하나를 베고 말았다. 그러자 황자의 아버지인 황제가 모든 신민들은 달걀의 밑부분, 즉 갸름한 부분을 깨어서 먹어야 한다는 칙령을 내렸고 이에 불응할 경우 엄벌을 내리겠다고 위협했다. 우리의 역사서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사람들은 이 칙령에 크게 분개했고 그리하여 이 문제로 여섯 건의 반란이 발생했다. 그 결과, 한 황제가 목숨을 잃었고 또다른 황제는 황위를 잃었다.

나는 그에게 3~4백년 전에 발명된 화약 만드는 기술을 말해 주었다. (중략) 이렇게 날려보낸 최고로 큰 대포알은 부대의 병사 전원을 몰살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장 단단한 성벽도 가루가 되어 땅 위로 허물어지게 만든다. 또한 천 명의 선원이 탄 군함도 바다 밑으로 수장시킬 수 있다. 대포알을 사슬로 연결시키면 돚대와 밧줄도 파괴하고 수백 명의 선원들의 허리를 절단해 버리며, 대포알이 타격한 것은 모두 가루가 되어 버린다. (중략) 왕은 이 무서운 무기에 대한 나의 자세한 설명과, 더 나아가 그 무기를 만들겠다는 나의 제안을 듣고서 공포에 사로잡혔다. 나같이 무능력하고 비천한 벌레가 어떻게 그런 비인간적인 생각을 품을 수 있는지 경악했다. 또 그런 파괴적인 무기가 가져오는 유혈과 살육을 묘사하면서 마치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전혀 동요하지 않는 빛 없이 말하는 것도 괴이하다는 것이었다. (중략) 그런 끔찍한 무기의 비밀을 아는니 차라리 그의 왕국 절반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중략) 국민들의 목숨, 자유, 재산을 한 손에 거머쥐는 절대 군주가 될 수 있는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다니! 유럽에서는 그 개념조차 희미한, 선량하지만 불필요한 양심이라는 문제에 사로잡혀서 말이다.


그곳 국민 대다수는 발견자, 목격자, 정보원, 고발자, 기소자, 증인, 선서인 들이었고 그들 밑에 여러 명의 앞잡이들도 데리고 있었다. 이들은 전부 대신과 그 대리인의 휘하에 있기에 그들의 지시에 따라 행동하고, 필요한 자금도 그들에게서 공급받는다. 그 왕국에서 음모는 보통 고상한 정치인으로 올라서려는 욕구가 있는자, 무분별한 행정에 새로운 활력을 물어넣으려는 자, 사회에 만연한 불만을 억누르거나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자, 벌금으로 금고를 채우려는 자, 사익에 맞게 국채의 가격을 올리거나 내리는 자 등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먼저 그들은 합의를 통해 의심을 받는 사람들 중 음모자로 지목할 자를 결정한다. 그런 다음 음모자로 지목한 자의 모든 편지와 다른 서류를 확보하고 그를 사슬에 묶어 데려온다. 이런 서류는 단어, 음절, 글자의 이해하기 힘든 뜻을 찾아내는 솜씨가 무척 뛰어난 기술자들에게 전달된다. 예를 들어 그들은 실내 변기를 추밀원으로, 거위 떼를 상원으로, 절름발이 개를 침략자로, 역병은 상비군으로, 말똥가리는 대신으로, 통풍은 고위 성직자로, 교수대는 국무대신으로, 요강은 귀족 위원회로, 빗자루는 혁명으로, 쥐덪은 관직으로, 바닥이 안 보이는 구덩이는 국가의 금고로, 시궁창은 궁정으로, 방울 달린 어릿광대 모자는 총신으로, 부러진 갈대는 재판소로, 빈 술통은 장군으로, 고름이 나오는 종기는 행정부라는 숨겨진 뜻이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덧붙여, 걸리버 여행기가 더 대단한 점은...신랄한 풍자요소를 삭제한, 소인국 & 거인국 여행 모험담만으로도 충분히 얘기가 된다는 거에요. 상세한 상황 묘사와 설명 덕분에, 마치 그 자리에서 지켜보는 듯한 현장감이 느껴집니다. (예: 소인국에서 매일 릴리펏 사람 1,728명분의 고기와 음료를 제공받았음 /  거인국 우박이 유럽의 것보다 1800배 크고 무겁다) 


그 치밀한 현장감에 재치있는 풍자가 더해지니...더할나위 없네요. 





외 - 거미줄 옷 이야기 / 쓸모없는 연구? 


 영국 왕립 협회(The Royal Society) 풍자 항목에서 "거미줄 옷 연구자" 얘기가 짤막하게 나옵니다. '거미는 실을 뽑고 천을 짜는 방법을 알고 있으니 누에보다 더 뛰어나다. 염색한 파리를 먹이면 거미줄 색상이 바뀔 것이며 / 고무 기름 등의 물질을 먹이면 강도와 밀도 또한 조절할 수 있다.' 라며 17세기 독자들을 황당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재밋게도 거미줄 옷은 실현 가능합니다. 한나라 조황후는 거미줄로 만든 옷과 신발을 입었다는 고사가 남아있으며, 중국 쿠충인들은 채집한 거미줄 수천장을 겹치고 이어서 옷을 만들어 입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거미줄이 아주 가볍고 유연하며 강철보다 강하다는 데에 주목한 모 연구소는 거미줄로 저렴한 방탄복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생산량 증가를 위해 유전자 변형 누에에 거미줄 생산 단백질을 주입?!?!?) 


17세기 당시에는 황당무계한 발상이었지만, 어마어마한 기술력이 있다면 이뤄낼 수 있다는 점이 참 재밋습니다. 저 연구자가 20세기에 태어나 동일한 아이디어를 연구했다면 분명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냈을 겁니다. 결국 쓸모없는 연구는 없다는 얘기죠 ㅎㅎㅎ 




같이보면 좋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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