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정의 위로 - 버지니아 울프에게 '자기만의 삶'으로 쓴 답장
이혜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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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정의 위로>는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방’과 ‘연간 500파운드’의 돈이 필요하다.“라는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에 답하는 허구적 에세이다. 저자는 자신이 살아온 궤적을 돌아보며 치열하게 살 수밖에 없었던 과거를 담담히 고백하는데,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문장이 너무 많아 형광펜으로 페이지 전체를 칠하고 싶을 정도였다. 어렸을 적 가정에서부터 느끼는 불합리한 기억. 고향을 떠나 조금이나마 ’덜‘ 가부장적이고 열린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은 여자들. 서울살이를 시작했을 때부터 어딜 가나 따라다니는 외로움과 긴장감, 동시에 고개를 드는 기묘한 해방감까지. 나이, 고향, 성격, 살아온 환경이 전혀 다른데도 한국 사회에서 여자로서 겪은 경험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나를 다독이는 효과가 있었다.

여성은 끊임없이 자신을 설명해야 한다. 연애하지 않는 이유, 비혼을 결심한 이유,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를 타인에게 납득시켜야 하고, 구조적 성차별이 만연하다는 현실을 증명해 내야 한다. 눈, 코, 입, 몸은 해부되어 평가의 대상으로 오르내린다. 자기주장이 ‘강한’ 여성은 익명 뒤에 숨은(또는 너무 당당한) 인셀의 조롱과 혐오, 비난의 표적이 되기 일쑤다.
나는 사회적으로 민감한 화제를 입에 올리길 어려워하는 사람이다. 친구들에게 해당 주제를 꺼내는 순간에도 속으로는 내가 이런 일로 분노할 때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사람인가? 계산하고 만다. 주변 사람들에게 매사 ‘진지하고’ ‘재미없는’ ‘화가 나 있는‘ 여자로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 여성 의제에 임할 수 있는 역할을 의심하기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겠어. 관련 청원에 동참하는 것 정도가 최선이겠지. 당당히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묻어가고 싶었다. 내 얼굴과 이름을 걸고 발언하는 데는 언제나 피곤한 일이 뒤 따르니 말이다. 침묵하고 자기 검열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자책에 빠진 내게 저자는 “괜찮다.”고 말한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사회가 규정한 ‘여성’이기 전에 나는 내 삶을 끌어가는 주체다. 머리로 알고 있는 당연한 사실일지라도 자신의 삶을 힘차게 살아가는 여성이 하는 말은 언제나 새로운 원동력이 된다. ‘자기만의 방’과 ‘500파운드’가 주는 안정을 갈망하는 것은 그것이 ‘나’를 온전히 잃지 않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치열하게 일궈온 안정을 뒤로 하고 또다시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저자처럼 나도 도전하는 일에 의기소침해지지 말아야겠다는 희망을 다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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