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책
안나 마촐라 지음, 유소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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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책>은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 실제 존재했던 조직을 배경으로, 무색무취의 독약☠️ ‘아쿠아 토파나’를 제조해 여성들을 돕는 지롤라마. 출세를 위해 ‘뺨이 발그레하고, 생전보다 더 보기 좋은’ 수상한 시신을 조사하는 판사 스테파노. 임신한 몸으로 남편에게 가정폭력을 당하는 안나. 세 인물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안타까운 과거와 부당함에 분노를 품은 지롤라마와 가부장적 사고방식을 가졌지만,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던 탓에 약자를 향한 연민에 사로잡히는 스테파노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여성을 향한 불합리한 사회적 요구 속에서 친정과 교회에서도 외면당한 안나는 결국 스스로 자신과 아이가 살길을 찾으려 한다. 여자들이 남편을 독살할 수밖에 없었던 동기에는 생존하기 위한 지극히 당연한 욕구가 있었다. 폭력적인 남편(가해자)과 사회가 죽으라고 내몰았기 때문이다. 여성의 인권, 여성의 목숨보다 남성의 알량한 자존심에 무게를 둔 과거가 현재를 관통한다. “남편의 뜻에 복종하는 것이 아내의 역할입니다. 그가 당신을 때린다면, 그것은 당신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며, 당신이 그를 불쾌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를 달래고, 그의 필요를 살펴야 합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당신과 남편 사이의 조화를 간구해야 합니다.” 같은 교리가 당연시 자리잡힌 시대에 내몰린 여성들의 이야기다. 지롤라마와 안나의 결말, 진실을 알게 된 스테파노가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 무척 궁금해졌다. 뒷이야기를 하루 빨리 읽고 싶다.

#비밀의책 #인플루엔셜 #티저북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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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정의 위로 - 버지니아 울프에게 '자기만의 삶'으로 쓴 답장
이혜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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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정의 위로>는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방’과 ‘연간 500파운드’의 돈이 필요하다.“라는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에 답하는 허구적 에세이다. 저자는 자신이 살아온 궤적을 돌아보며 치열하게 살 수밖에 없었던 과거를 담담히 고백하는데,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문장이 너무 많아 형광펜으로 페이지 전체를 칠하고 싶을 정도였다. 어렸을 적 가정에서부터 느끼는 불합리한 기억. 고향을 떠나 조금이나마 ’덜‘ 가부장적이고 열린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은 여자들. 서울살이를 시작했을 때부터 어딜 가나 따라다니는 외로움과 긴장감, 동시에 고개를 드는 기묘한 해방감까지. 나이, 고향, 성격, 살아온 환경이 전혀 다른데도 한국 사회에서 여자로서 겪은 경험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나를 다독이는 효과가 있었다.

여성은 끊임없이 자신을 설명해야 한다. 연애하지 않는 이유, 비혼을 결심한 이유,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를 타인에게 납득시켜야 하고, 구조적 성차별이 만연하다는 현실을 증명해 내야 한다. 눈, 코, 입, 몸은 해부되어 평가의 대상으로 오르내린다. 자기주장이 ‘강한’ 여성은 익명 뒤에 숨은(또는 너무 당당한) 인셀의 조롱과 혐오, 비난의 표적이 되기 일쑤다.
나는 사회적으로 민감한 화제를 입에 올리길 어려워하는 사람이다. 친구들에게 해당 주제를 꺼내는 순간에도 속으로는 내가 이런 일로 분노할 때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사람인가? 계산하고 만다. 주변 사람들에게 매사 ‘진지하고’ ‘재미없는’ ‘화가 나 있는‘ 여자로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 여성 의제에 임할 수 있는 역할을 의심하기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겠어. 관련 청원에 동참하는 것 정도가 최선이겠지. 당당히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묻어가고 싶었다. 내 얼굴과 이름을 걸고 발언하는 데는 언제나 피곤한 일이 뒤 따르니 말이다. 침묵하고 자기 검열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자책에 빠진 내게 저자는 “괜찮다.”고 말한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사회가 규정한 ‘여성’이기 전에 나는 내 삶을 끌어가는 주체다. 머리로 알고 있는 당연한 사실일지라도 자신의 삶을 힘차게 살아가는 여성이 하는 말은 언제나 새로운 원동력이 된다. ‘자기만의 방’과 ‘500파운드’가 주는 안정을 갈망하는 것은 그것이 ‘나’를 온전히 잃지 않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치열하게 일궈온 안정을 뒤로 하고 또다시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저자처럼 나도 도전하는 일에 의기소침해지지 말아야겠다는 희망을 다지는 시간이었다.


#잠정의위로 #이혜미작가 #위즈덤하우스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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