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일본사
정혜선 지음 / 현암사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국인의 일본사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달고 나온 이 책은 정체성이 모호한 책이다. 제목만 봐서는 일본사에 한국인이 끼친 영향을  혹은 한국인에게 영향을 끼친 일본사에 대한 서술을 고대에서부터 근대에까지 연구한 책으로 보이고 실제로 그런 내용을 기대하고 구입한 책이지만, 이 책은 그런 내용과 전혀 거리가 먼 책이다. 단적으로 이야기 하면, 이 책은 역사책도 아니고 연구서도 아닌 저자의 개인적인 감상에 치중한 에세이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작가는 5년 동안 각고의 노력을 통해 이 책을 서술하고 퇴고의 과정까지 너무 힘들었다고 적고 있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단순히 기존 일본 연구서의 부분부분만 취합해서 글을 구성하고 거기에 자신의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을 적어 놓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런 감상을 자신의 연구결과 라고 생각하고 싶을지 모르겠지만 책을 보면 이건 연구가 아니라 단지 감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여실히 깨닮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중앙 집권화에 대한 작가의 서술을 보자. 작가는 국가를 인격체로 파악하며, 중앙 집권화의 이유를 백제구원군이 나당연합군에 패배하자 나당연합군이 언제 침범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과 두려움으로 당과 신라가 이룩한 선진체제인 중앙집권화로 이어졌다고 서술한다. 여기에는 어떤 학문적인 고뇌와 사료, 그리고 연구 결과는 없다. 수백년에 걸쳐서 무수히 많은 의사결정과 이해집단의 대립 끝에 이루어졌을 일본의 중앙집권화가 단지 한 페이지도 안되는 분량에 인과관계가 명백한 채로 지극히 매끄럽게 설명되어 있다. 이런 중앙집권화에 한국인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이런 일본의 중앙집권화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 또한 전혀 없다. 다만 우리가 교과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대로 국가가 인격체가 되어 확실한 인과관계를 통해 역사가 흘러갔다고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책을 5년을 걸쳐 썼다는데, 이 책의 마지막은 더욱 가관이다. 마지막 페이지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본다.  

아 그렇구나! 나는 수많은 모숩이 하나로 모이면서 모든 인간이 같다고 하는 너무나 당연한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그것은 내게 엄청난 박력으로 다가왔다. 집을 뛰쳐나와 새벽 공기를 가르면서 공원을 내달릴만큼 그 깨달음은 컸다. 공원에서 달리는 아줌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 처녀, 총각 들을 보면서 나는 웃었다.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들 보았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웃었다. 그들이 모두 나와 같게 여겨졌던 것이다.

'신도, 일본을 근원적으로 이해하는 통로'는 언제나 처음 발견한 주제처럼 나를 사로 잡았지만 엄청난 집중을 감당하지 못해 뜨거운 생각만 껴안고 가슴앎이를 했다. 수많은 시간을 허비했고, 이 책의 완성은 오랫동안 지체되었다. 그러면서 긴 사색과 고단한 공부를 통해, 인류사적 시점이라는 확 트인 산에서 일본을 '인간'으로 조망할 수 있는 귀한 선물을 얻었다. 인류-세계-일본-한국 그리고 나. 170만년 동안 이 지구 위를 스쳐 지나간 무수한 인생이 또렷한 얼굴로 내 품 안으로 들어왔다. 인류의 마음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내 가슴에 울려 퍼졌다. (끝)

'엄청난 박력으로 다가왔다... 새벽 공기를 가르면서... 나는 웃었다.... 긴 사색과 고단한 공부를 통해 인류사적 시점.... 170만년 동안 이 지구 위를 스쳐 지나간 무수한 인생이 또렷한 얼굴로 내 품으로 들어 왔다.... 인류의 마음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내 가슴에 울려 퍼졌다....' 도대체 이 작가는 소설을 쓰는 것일까. 본인이 본문에 직접 언급한 긴 사색과 고단한 공부는 책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다. '신도'가 일본인에 가지는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했고 책의 완성이 지체될 정도로 가슴앓이를 했다고는 하지만 이 책에 언급된 '신도'는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일본 관련 책들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는 내용들 뿐이다. 도대체 무슨 의도로 이 책을 썼는지 알 수 없다. 이 책과 같이 산 한국의 손꼽이는 일본 연구가라고 할 수 있는 박규태 선생님의 `일본 정신의 풍경`을 단 10페이지만 읽어봐도 학문의 깊이와 사색의 정도가 이 책의 저자와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을 평하자면 제목만 거창한 괴작으로 밖에 평할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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