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난 6월동안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읽으면서 그동안 관성으로 내뱉었던 단어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바로 "영혼"인데요. 인간에 대해 '육체가 전부'라고 하는 일원론자와 '육체와 영혼의 조합'이라고 보는 이원론자들이 나누는 논의를 보면서, "그동안 나는 과연 영혼을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 라는 의문이 들더군요.
영혼은 어디에 있을까? 무엇일까? 대답할수 없는 답답함이 있었지요. 지금은 이분법적 논리로 성급히 답을 내리기보다 많은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지요?신기하게도 새로 만나는 책들마다 힌트가 숨어있는 듯 합니다.
이 책에서도 플라톤의 이원론적 세계관을 소개하며 오리게네스가 그러한 그리스 철학을 도구적으로 수용했다고 말합니다.
오리에게스는 이중적 인간관과 삼중적 인간관을 혼용해서 사용했는데요.
영혼이 선재하고 육체가 나중에 만들어졌으며, '하느님을 향한 인간 영혼의 사랑이 식어버린 이유로 천상적 육체와 물질적인 육체로 나뉜다' (p. 118)고 설명합니다.
인간을 어떤 존재로 볼것인가?를 시작으로 그렇다면 '그러한 존재가 하늘로 다시 올라가기 전에 현세를 어떻게 살 것인가'로 이어지는 건데요.
하느님을 관상하는 상태로 가기 위해 살아있는 동안 하느님과 가까워지려는 영적인 인간의 삶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성경속에서 천상을 향해 현세를 순례하는 인간의 영적 여정을 만날수 있습니다. 바로 <탈출기 강해>와 <민수기 강해> 입니다. 오리게네스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의 현세의 삶을 이스라엘 민족이 하느님이 약속하신 가나안에 이르기까지 거쳤던 40년간의 사막 여정에 비유하여 설명합니다.
가끔 아니 종종 불만을 늘어 놓습니다. 내가 원해서 태어난 세상이 이리도 험난한것에 절망합니다. 특히 요즘 사막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있는 기분도 듭니다. 또 지금만 살기도 힘든 가운데 기도하며 사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회의감이 들기도 합니다. 저의 이런 모습을 민수기와 탈출기에서도 만날수 있겠죠.
어쩌면 사막에 발도 들여놓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