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내는 것에 대해 말하자면, 아우렐리우스는 분노를 ‘누를수 있고 컨트롤할 수 있는 것‘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득실의 관점에서 ‘분노가 득이 되지 않는다(선이 아니다)는 것‘을알면, 분노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에서 본요새도, 땅 위도, 정념에서 자유로워진 자신을 상상하고 쓴 것일테지요.
판단을 하지 마라. 그러면 ‘해를 입었다‘라는 판단)도 하지않을 것이다. ‘해를 입었다‘고 판단하지 않으면 ‘해를 입었다‘ 는 일 자체도 없어질 것이다(4. 7).
《명상록》의 말에서 모든 것이 덧없고 항상 변한다고 보는 ‘무상관의 사상‘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가 말하는 ‘지금당장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릴 사람처럼‘ 사는 것의 주된 목적은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하면서 이 인생에 적극적으로 사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완전한 인격이란,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되 격렬해지지도 않고 무기력해지지도 않고 위선을 떨지도 않는 것겠지만, 이다(7.69).
이미 죽은 사람처럼, 이제 삶을 마감한 사람처럼, 앞으로 남은 인생은 덤이라 생각하고 자연에 따라서 살아야 한다(7. 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