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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우주의 문법 - 그 우주에는 인어와 화성인과 주머니고양이가 산다
백승주 지음 / 김영사 / 2025년 10월
평점 :
《다른 우주의 문법》, 백승주 지음
책은 파블로 네루다의 시 「점」을 인용한 프롤로그로 시작한다.
“언어는 공간이 없는 점과도 같다. 그 점은 접속 지점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의 경험이 그 접속 지점과 만나는 순간, 이 점은 우주가 되어 이 세계를 만든다.”
면적조차 갖지 못한 ‘점’과 같은 언어가 어떻게 우주를 채울 수 있을까? 저자는 이에 대한 답을 아홉 개의 세계를 통해 풀어낸다. 각 단편은 음성학, 음운론, 형태론, 통사론, 의미론, 화용론 등 언어학의 핵심 개념을 다루며, 언어학 개념에 상상력과 픽션이라는 낯선 장르를 결합한다. 저자는 자신이 깊이 아는 분야를 탁월한 재능으로 견고하게 엮어내면 어떤 아름다운 작품이 탄생하는지를 보여준다.
각 장의 도입부는 언어학 이야기로 시작해 처음엔 ‘왜 이런 이야기가 등장하지?’ 싶지만,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저자의 의도가 선명해진다. 아홉 편의 단편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퍼즐을 맞추듯 읽는 재미도 있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삶을 함께 공유하고 배우는 것”이라는 문장이 특히 여운이 남는다. 저자는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스스로 “난파된 듯한” 감정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한국인인 나는 당연하게 여겨온 언어적 개념들을 통해서 특정한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사고의 방식과 세계를 가능하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다른 우주의 문법》은 언어학을 설명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익숙한 언어의 틀을 잠시 벗어나 다른 우주의 문법을 상상해보는 경험은, 내 세계가 얼마나 단단한 동시에 얼마나 쉽게 뒤흔들릴 수 있는지 깨닫게 한다. 언어를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싶은 독자라면 꼭 한 번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이 책이 열어주는 ‘다른 우주’의 감각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이다.
*위 도서는 김영사로부터 제공 받아 독서 후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