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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아이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평점 :
2007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영국 작가 도리스 레싱의 가장 널리 알려진 소설이다.
보수적이고, 자신에게 엄격한 두 명의 남녀- 데이빗과 해롤드가 만나서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린다. 그들은 마치 피임을 금하는 카톨릭 교도처럼 계속해서 아이를 낳고, 큰 집을 산다. 크리스마스나 여름 휴가 때면 그들의 큰 집에는 가족과 친척들이 모두 모여서 소설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전통적으로 화목하고 가족적인 시간들을 보낸다. 이렇게 행복한 생활을 유지하는데 데이빗과 해롤드는 자부심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날 해롤드는 다섯째 아이 벤을 낳게 되는데, 그 아이는 지능적으로 떨어지지만, 야수처럼 잔인하고 파괴 본능만 가지고 있는 괴상한 존재였다.
모든 가족들은 벤을 미워하고, 피한다. 해럴드 역시 벤을 미워하고, 벤을 낳은 자기 자신을 저주하지만 최소한의 모성애 때문에 벤을 보호하려 하지만, 그럴 수록 그의 자식들과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화목한 가정은 점점 더 붕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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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크게 두 가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고전적으로 행복한 가정이 형성되었다가 붕괴되는 모습. 죽이고 싶은 자식인 벤에게 가지는 해롤드의 심리 묘사. 어떻게 보면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벤의 입장에서는 전개되는 부분이 없어서 다섯째 아이인 벤은 공포 영화의 괴물처럼 타자화된다. 그리고 가정이 형성되었다가 붕괴되는 과정 역시 공포 영화처럼 묘사가 된다.
소재나 주제는 크게 새롭지 않다. "중산층 가정에 괴상한 아이가 태어난다. 가족 구성원에 의해서 가정이 파탄이 난다."는 이야기는 일본 공포 만화인, 이토 준지의 [소이치의 즐거운 일기]와 흡사하다. 물론 이 소설이 발표된 해가 1988년이니 이토 준지보다 훨씬 앞선다. 팀 버튼의 동화 [굴소년의 우울한 죽음]이나 팀 버튼의 대표작 [배트맨 리턴즈]에서도 괴물을 낳은 부모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가족의 해체라는 주제는 유미리의 [가족 시네마]에서 감동적으로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소설의 주제에 대해서도 크게 새로움을 느끼지 못했다. (역시 유미리의 소설이 훨씬 뒤에 발표) 이 소설이 발표된 시점이 1988년이고, 그 이후에 이 비슷한 소설이나 영화를 많이 보아서 그런가보다. 역시나 소설은 발표된 동시대에 읽어야 한다. 그렇지만 화목한 가족이 해체되고, 남은 빈 집에 벤과 벤의 건달 친구들로 구성원이 대체되는 그 과정은 그로테스크하고, 에드가 앨런 포의 소설을 보는 것처럼, 특별한 사건 없이 분위기만으로도 독자를 압도한다.
노벨문학상 작가의 소설은 거의 안읽어봤지만, 대부분 따분하고 지루하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이 책은 공포 소설을 읽는 것처럼 쉽사리 읽어졌고, 소설 자체도 재미있다. 게다가 소설의 전개나 심리 묘사들이 매우 안정적이고 탄탄하다. 하지만 역시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대표작이라는 관점에서는 약간 갸우뚱. 소설 번역자가 영문학 교수인데, 영어 원문을 그냥 해석한 것 같은 껄끄럽고 딱딱한 문장은 이 책의 단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