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보물이 떨어졌어요! ㅣ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79
테리 펜.에릭 펜 지음,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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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 펜, 에릭 펜 이렇게 펜 형제가 쓰고 그린 작품을 이번으로 2번째 읽었습니다. 처음 만난 책은 "완벽한 바나바"였는데 그 때도 일러스트는 어찌나 섬세하고 동물 친구들 캐릭터는 또 얼마나 귀엽던지 어른이 제가 아이들보다 더 환장하면서 봤는데 이번 작품 "하늘에서 보물이 떨어졌어요!"도 귀엽긴 매한가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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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어느 목요일 밤 하늘에서 보물이 툭 떨어지면서 시작합니다. 무당벌레, 자벌레, 대벌레, 개구리 등 숲속 친구들이 모두 그 보물을 보겠다고 옹기종기 모여서 한 가지씩 의견을 내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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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는 맛을 보고 맛없는 젤리라고 평하고, 쇠똥구리는 보물을 굴려보려고 하지만 꿈쩍도 안 하고 노린재는 꽃처럼 땅에서 자랐을 거라는 둥 재밌는 상상이 펼쳐지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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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보물의 정체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못한 친구들은 나이가 많은 여치 할아버지를 모시고 와서 여쭤보았는데 가장 걸작인 대답이네요. 여치 할아버지는 이게 아예 지구에서 온 게 아니라 별똥별이나 혜성일 거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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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무슨 대단한 보물인가 하고 유심히 봤는데 알고보니 보물의 정체는 유리구슬인 것 같습니다. 구슬을 보물로 생각하는 발상 자체가 참으로 어린이다워서 웃고 말았네요. 정말로 우리 꼬꼬마 조카들도 아주 작은 것(심지어 유치원에서 다 쓴 휴지심으로 만든 창작품까지..) 보물로 여기면서 한동안 소중히 하던 모습이 오버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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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속은 거의 밤이 배경으로 주변은 어두우면서도 반딧불이나 하얀색 나방 등 밤에도 빛이 나는 곤충들을 적절히 배치해 신비로운 분위기가 눈을 사로잡고요. 처음에는 마치 흑백 동화처럼 보이지만 보물은 컬러이고 간간히 작가가 의도한 소품(지폐를 의미하는 잎사귀라던가) 역시 화사한 컬러로 들어가서 포인트를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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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은 흰색 나방이 보물을 번데기로 여기고 나방이 될 때까지 밤새 자기가 날개를 활짝 펴고 구슬을 지키는 모습입니다. 너무 아름다워서 넋을 놓고 한동안 바라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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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은 낮이 더 아름답다고 여기기 쉽지만 "하늘에서 보물이 떨어졌어요!"에서는 다릅니다. 찬란하게 빛나는 거대한 보름달 아래 곤충들보다 키가 큰 꽃들이 피어있고 훅 불면 날아가는 민들레 홀씨는 그 씨앗 하나하나까지 섬세하게 그려져있습니다. 그 주변을 반딧불이가 엉덩이마다 빛을 내며 비춰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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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날 이 동화책에도 귀여운 빌런이 등장합니다. 바로 욕심쟁이 거미인데요. 자기 거미줄에 걸려있었으니(언제 거미줄이 짠하고 나타났는지 그것도 웃깁니다) 보물은 내 것이다라는 논리를 펼치며 아주 멋진 전시회를 열겠다고 친구들에게 보러 오라고 제안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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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보물을 꼭 끌어앉고 있는 모자 쓴 거미가 귀여워서 폭소를 터뜨렸네요. 조카들도 아직 어려서 장난감이 하나만 있으면 서로 내꺼라고 뺏고 싸우고 난리인데 그런 소유욕은 아이들에게도 본능입니다. 이걸 뭐라고 할 수는 없는 건데 이 책에서는 이런 마음을 아주 현명하게 해결하는 방법까지 제시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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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의 주도로 지어진 보물 전시장은 참 멋있습니다. 그런데 전시장보다 웃겼던 건 거미가 챙긴 입장료였어요. 이파리 하나씩 들고 와야 보물을 보여주는 거미에게 다들 줄을 서서 한잎씩 주고 보물을 감상했는데 거미 욕심은 무럭무럭 자라나서 이제 이파리 2장은 줘야 보물을 보여주고 그나마도 빨리 빨리 보고 지나가라고 성화를 부리네요. 어째 너무 사람과 닮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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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멋을 내는 건지 모자를 하나씩 쓴 곤충 친구들이 저마다 푸릇푸릇 싱싱한 잎사귀 2장씩을 들고 거미 전시장 앞에 줄을 선 모습이 백미입니다! 펜 형제 작품은 위트가 넘쳐서 볼 때마다 계속 웃게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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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부자가 된 거미. 잎사귀를 산처럼 쌓아놓고 눈알 4개가 만족스러운 듯, 아직 아닌 듯 표정이 묘합니다. 


하지만 영원한 행복은 없는 거죠. 곧 반전이 일어나고 거미는 그렇게 소중히 여기던 보물을 빼앗긴 후에야, 친구들이 다 떠나버린 후에야 비밀 하나를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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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보름달이 온세상을 공평하게 비춰주며 깨달음을 주는 다소 동양적인 장면까지 나오는데요. 거미는 다음 보물을 기다리면서 태도를 확 바꿔버린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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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재미와 감동. 이런 작품을 쓰는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그림은 또 어찌나 아름다운지 미생은 그저 웁니다.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이 좋아했구요. 거미가 거대한 꽃과 꽃 사이에서 반성하는 마음으로 실을 자아 거미줄을 치는 모습 뒤로 별똥별 하나가 떨어지는 아름다운 장면도 놓치기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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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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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고양이는 줄무늬
무레 요코 지음, 스기타 히로미 그림, 김현화 옮김 / 양파(도서출판)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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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면 마음이 더욱 쓸쓸해지는데 그럴 때는 말랑말랑하고 다정한 고양이 생각이 더 간절하다. 고양이는 10년 이상 길러본 사람만이 그 참된 매력을 알 정도로 지능이 높고 섬세한 동물인데 일본은 예전부터 애묘인이 많은 나라로, 다양한 종류의 고양이 책이 많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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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최근에 읽은 건 무레 요코의 "아저씨 고양이는 줄무늬"라는 에세이이다.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게 저자 무레 요코가 영화 "카모메 식당"의 원작자였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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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좀 바꿔도 좋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처음에는 머릿속에 기억이 잘 되지 않았다. 고양이=여성성이라는 공식이 강해서 그런가 줄무늬 아저씨 고양이도 아니고 "아저씨 고양이는 줄무늬"라니 어째 순서가 뒤죽박죽인 느낌이 들었는데 찾아보니 원제(おやじネコは縞模様)도 그렇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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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용은 단순히 한마리의 고양이만 등장하는 에세이가 아니라 작가가 집에서 키우는 시이짱, 옆집 친구가 키우는 노령묘 비짱, 놀러오는 길고양이 시마짱(이 녀석이 주인공), 치와와 강아지 푸딩짱, 원숭이에 모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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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한 내용은 단연 표지에도 나온 아저씨 고양이 시마짱이다. 몸은 쌀푸대처럼 터질 듯 뚱뚱하고 애교는 전혀 없이 단춧구멍만한 눈으로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며 늘 "밥!"을 당당히 요구하는 하루 6캔 길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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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할 수 없는 매력과 지독한 냄새를 동시에 풍기며 작가가 사는 빌라와 그 옆집인 친구네로 수시로 놀러와 엄청난 양의 식사를 하고 가는 대식가 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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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이미 작가네 집에 시이짱이라는 암고양이가 있어서 이거 진짜 민폐 아닌가 싶었는데(고양이는 폐쇄적인 동물이라 대개의 경우 사교성이 별로 없다. 남의 고양이가 놀러오는 거 당연히 영역침범임) 읽다보니 나도 모르게 정이 들어서 나중에 시마짱이 더이상 올 수 없게 되자 슬프고 서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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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중간에는 쌀푸대 같은 이 귀염둥이 시마짱이 다른 강한 수컷 고양이와 싸우다가 심하게 다쳐서 작가의 집으로 피신온 내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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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이 몽창 빠지고 피부는 찢기고 가랑이의 방울마저 쪼그라들 정도로 심한 공격을 받았는데 너무 안타까워서 친구나 작가 중 한명이 키워주면 좋겠다라는 현실성이 조금 떨어지는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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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짱도 나이를 먹고 힘이 들 때는 아마 집고양이가 되어볼 생각을 했을 지도 모른다. 중간 중간 남의 안방이나 거실에 몰래 들어와 앉아있기도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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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미 바깥생활에 익숙한 길고양이이고 옆집 친구가 베란다에 멋진 하우스까지 꾸며줬지만 아예 들어와서 살지는 않는 걸로 보아 집에 눌러앉는 것은 사절한 것 같다. 집고양이도 나가고 싶어하는 마당에 처음부터 길고양이로 살다가 집에 완전히 눌러앉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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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고양이도 크게 보면 하등 다를 바가 없다. 태어나면 늙고 그 사는 시간이 무척 짧다. 고양이의 20년, 사람의 100년, 숫자로는 5배 차이지만 신의 눈으로 본다면 인간의 백년인 들 고양이의 생애만큼 짧은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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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짧은 삶을 더 짧게 길에서 마감하는 아이들을 보자니 마음이 아프다. 그럼에도 전체적인 내용은 어둡게 치우치는 데 없이 담담하고 담백하고 재밌는 내용이 훨씬 많다. 하지만 오래 키우던 고양이가 하늘나라로 간 이후 자꾸만 책의 코믹한 부분보다 고양이의 죽음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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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과 같다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어딘가 텅 비어버린 느낌을 받는데 벌써 죽은지 몇 달이나 지났지만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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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나오는 사람은 단 두 명인데 작가와 그녀의 옆집 친구는 둘 다 고양이를 기른다. 그러다가 친구가 기르던 비짱은 나이가 많아 죽고 그 후로도 4년이나 지났다는 이야기까지 짧게나마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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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앞에서 나왔던 동물들이 늙어서 다시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강아지 푸딩짱도 마찬가지인데 이 아이와 관련된 일화가 너무 재밌어서 잠깐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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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딩짱은 말린 무화과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어쩌다 한번 포상으로 그걸 받나보다. 그럼 한번에 다 먹지 않고 작게 4조각을 입에서 떨어뜨려 그걸 남겨뒀다가 밤에 자기 전에 다시 와서 마자 먹고 기쁘게 잠이 든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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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너무 귀여워서 기절하는 줄 알았다. 그러고보니 나도 애묘인 이전에는 애견인이었는데 고양이를 키우면서 개 귀여운 건 까맣게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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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딩짱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이와 똑같은 행동을 하던 고양이도 등장하는 걸로 봐서 다들 남겼다가 먹는 게 나름의 재미인가보다. 심지어 어릴 때부터 그런 행동을 하던 푸딩짱이 나이를 먹어 카페트에 말린 무화과 4조각을 떨어뜨리고 나중에는 카펫 색과 무화과 색깔이 비슷해 잘 못찾아 주인이 "여기, 여기"라고 알려주는 걸 보자니 웃기면서도 슬프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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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는 고양이 줄무늬'는 딱 이런 느낌의 책이라고 보면 된다. 굉장히 소박하고 소소하고 귀여운데 마지막은 짠하다. 강아지도 고양이도 엄연한 생명이고 인간에 비해 짧게 살아 아무리 잘해줘도 부족한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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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레 요코의 책은 처음이었는데 읽을수록 따뜻한 내용이라 다른 에세이도 무엇을 썼는지 궁금해졌다. 대충 일본 도서 사이트를 뒤져보니 정말 고양이 관련 에세이가 수두룩이다. 여기 나오는 작가의 반려묘 시이짱, 옆집 친구 고양이 비짱을 주제로도 각각 책을 냈는데 기회가 되면 이걸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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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고양이는 줄무늬'는 대단한 내용은 아니지만 애묘인들에게는 보석같은 에세이다. 특히나 키워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아주 사소하지만 중요한 행동 포인트가 몇 가지 소개되어서 신기해하면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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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몇 년전에 많이 우는 울음주의보 같은 내용이 그것인데 우리 고양이도 분명 그 과정을 거쳤기에 '묘하네' 감탄하면서 읽은 기억이 있다. 작가들의 관찰력이란 일반인들의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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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고 직접 읽은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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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고양이는 줄무늬
무레 요코 지음, 스기타 히로미 그림, 김현화 옮김 / 양파(도서출판)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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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수록 먼저 떠난 우리집 고양이가 생각나 웃다가도 슬퍼진다. 부디 짧은 생을 살고 가는 동물들에게 좀 더 따뜻한 세상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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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호텔 ㅣ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2
마리 르도네 지음, 이재룡 옮김 / 열림원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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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삶이든 순탄할 수만은 없기에 끝이 올 때까지 걸어가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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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호텔 ㅣ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2
마리 르도네 지음, 이재룡 옮김 / 열림원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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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조금씩 그러나 착실하게 망해간다는 건 이런 느낌일까? 프랑스소설 장엄호텔은 마리 르도네라는 여성 작가의 아포칼립스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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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세 자매 중 막내인 "나"로 1인칭 주인공 시점의 화자인데 할머니에게 장엄호텔을 물려받은 이후, 호텔 경영과 유지 보수에 매진하고 있다. 평생을 호텔에서 살아온 그녀와 달리 언니 2명이 어머니의 죽음 이후 갑자기 나타난다. 그녀들은 오갈 데가 없어지자 동생이 물려받은 장엄호텔에 기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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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 이름이 비슷하다보니 초반에는 헷갈렸는데 아다는 늘 아픈 언니이고 아델은 연극배우 지망생이지만 안 팔리는 배우여서 늘상 캐스팅되길 기다리며 호텔에서 늙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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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생의 작가 마리 르도네는 이미 팬데믹 시대를 예견한 것일까? 아포칼립스나 지구멸망을 들먹이지 않아도 이 세상은 이미 종말이 코앞으로 온 것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거의 모든 세계인들이 감염병을 피하기 위해 매일 마스크를 쓰고 남극과 북극의 얼음이 빠르게 녹아내리고 이상기후는 심각하다못해 일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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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장엄호텔을 둘러싼 자연환경도 기묘하고 무섭긴 마찬가지이다. 계절의 변화와 함께 찾아오는 엄청난 모기떼, 쥐떼, 파리떼는 히치콕 감독의 공포영화가 연상될 정도로 재앙의 정도가 지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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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는 막히는 게 정상일 정도이고 허구헌날 배관공을 부르는 주인공을 수십년동안 보자니(소설상 시간에서) 이 정도면 본인이 배관공 자격증을 따서 스스로 고쳐야 하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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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에서 날아오는 온갖 세균들은 사람 뿐 아니라 호텔의 대들보도 좀먹어서 구멍이 숭숭 뚫리는데 왜인지 주인공은 각종 재앙에도 불구하고 호텔을 떠나긴커녕 류마티스 관절염에 걸릴 정도로 열심히 쓸고 닦고 버는 족족 배관공, 기와공, 전기수리공에게 지불하기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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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지대는 호텔이 지어질 당시부터 있었다. 늪지대에 호텔을 짓는다는 할머니의 발상 자체가 희한했지만 그 덕분에 호텔은 잠깐 호황을 누리기도 했고 할머니 사후에도 늪지대에 철도를 놓으려는 철도청 직원들, 탐사대원들, 지질학자 등이 끊임없이 찾아온다. 문제는 호텔이 노후화되고 늪지대라는 환경이 호텔과는 상극이라 점점 손님이 줄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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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도 이렇게 수십년에 걸쳐서 서서히 다가오면 그 한 가운데서 사는 사람은 무뎌지나보다. 소설의 문장은 한 줄을 넘지 않을 정도로 짧고 반복적이다. 일본시 하이쿠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하지만 문장 길이가 짧은 것 외에 무슨 공통점이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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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는 위트나 유머는 거의 없고 각종 세균과 병이 왔다가 가고, 해충의 변화로 계절감을 느낄 수 있다. 시종일관 작은 불행이 끊임없이 일어나 결국 큰 불행과 연결되는 마라톤 같은 소설이자 진지한 블랙코미디 같다. 전혀 웃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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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는 너무 지나칠 정도로 망해가는 호텔을 보며 숨이 막혔지만 그게 계속 반복되자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독자인 나 역시 희망을 잃고 말았다. 더 이상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것, 주인공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은연중에 받아들이게 된다. 그저 이 호텔이 늪 속으로 빨려들어가기 전에 주인공이 늙어죽길 바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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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불행에도 이 소설은 놀라울 정도로 흡입력이 있다. 가장 우울한 날, 이 세상의 멸망을 바라게 되는 그런 날 읽어보길 권한다. 문장의 길이가 짧고 내용은 엄청 반복적인데 언니들과 함께 망해가는 과정이 은근한 중독성이 있어서 순식간에 끝까지 읽게 되었다. 마지막에는 주인공의 행복도 불행도 바라지 않고 그저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는 자신을 발견하고 흠칫 놀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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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지원을 받아 직접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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