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페의 음악
장자크 상페 지음, 양영란 옮김 / 미메시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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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크 상페의 오랜 팬으로 재즈와 클래식 등 진정한 음악 애호가인 상페의 그림에세이를 받아들고 정말 기뻤다.

내용은 말할 것도 없고 책의 만듦새 역시 소장하는 사람이 흡족할 만한 퀄리티였는데 미색의 톡톡한 종이의 질감과 실로 꿰매는 사철방식, 넉넉하게 들어간 컬러 화보가 상페의 그림을 많이, 크게 보고 싶은 욕심을 충분히 채워주었기 때문이다.


내 책장에서 오랜 세월 살아남은 몇 안되는 책 중 하나가 바로 저 "꼬마 니콜라"인데 상페가 세계적인 그림작가로 발돋움하는데 큰 공이 있는 르네 고시니와의 대표적인 합작품이다.

그는 내게 아주 오래 전부터 꼬마 니콜라의 삽화가로 더 익숙했고 니콜라의 급우인 뚱보 알세스트가 크루아상이나 크림빵을 먹는 모습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나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어서 TOUS LES~라고 불어가 들어간 빵집에 가면 나도 모르게 가루가 부슬부슬 떨어져서 입가에 묻고 마는 크루아상부터 고르게 된다.



위의 사진은 소담출판사의 '꼬마 니콜라'에 나온 장자크 상페의 작가 소개란인데 꽤나 핵심을 잘 짚었다. 학창시절부터 성적은 보통에 사고뭉치였고 감화원까지 다녀왔으며 만화가 생활을 19살부터 했다는 것, 이 정도를 머리 속에 넣어두고 이 책을 읽으면 덩치가 크고 남성미 넘치는 그가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상페의 음악' 작가 소개를 읽어보면 "1991년 상페가 30년간 그려온 데생과 수채화가 <파피용 데 자르>에서 전시되었을 때 , 현대 사회에 대해 사회학 논문 1천편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는 평을 받았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정말 그렇다.

언뜻 보면 대충 그린 듯 하지만 실상은 특징을 무척 잘 잡았고 스케일이 큰 그림이라 시원하고 넓은 배경은 물론, 확장성이 뛰어난 작가라는 인상을 받는다. 꼭 똑같이 사진처럼 그려야 잘 그린 삽화가 아니므로 르네 고시니의 "꼬마 니콜라" 역시 삽화가가 장자크 상페가 아니었다면 이만큼의 세계적인 대히트는 못했을 것만 같다.



음악에 대한 상페의 사랑은 남다른데 왜 그림을 그렸냐는 질문이 나온다. 이유는 간단했다. 어린 시절 부모의 불화로 다소 불행했던 그는 라디오조차 이렇게 몰래 들을 형편이었고 집이 가난해서 언감생심 피아노는 꿈조차 꿀 수 없었다.

그림은 연필과 종이만 있으면 바로 시작할 수 있었고 그려서 갖다주면 돈도 금방 나왔기에 집세를 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그림 에세이를 읽으며 처음부터 느낀 건데 장자크 상페는 참으로 솔직, 소탈 그 자체이다.

정말 듣고 싶었던 레코드를 듣기 위해 음반 가게 사장의 눈치를 보며 어렵게 부탁해서 2~3번 들어보고 그걸 귀로 아예 외워버리고, 황홀감에 빠져서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나 나중에 커서는 아내가 사준 LP플레이어를 받게 된 소회, 수많은 유명 음악가 친구들과의 교류, 또 작품 생활 중에 많이도 그린 앨범자켓, 콘서트, 오케스트라 그림은 그의 인생 이야기와 같이 듣고 보면 감명깊기까지 하다.

삽화가가 되지 않았다면 상페는 음악가가 되었을 것 같지만 그 스스로는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듣는 귀는 있지만 연주자가 될 만큼의 실력은 절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지만 과연 어릴 때 좀 더 윤택하게 받혀줬더라면 정말 직업이 바뀌진 않았을까 순수하게 궁금해진다.



상페는 음악하는 사람들, 특히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이나 피아노를 배우는 학생들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같이 음악하는 청년들 혹은 회원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기차를 기다리거나 연주회를 하는 모습에도 각별한 애정이 있었다. 아마도 만화가는 혼자 작업하는 게 숙명이라 조금 외로웠던 것 같기도 하고 제 때에 배우고 싶은 것을 해보지 못한 아쉬움도 컸던 것 같다. ​P.153. "거리에서 어깨에 바이올린을 메고 가는 학생이나 콘트라바스 혹은 기타를 들고 가는 청년을 볼 때마다 나는 항상 가슴이 찡합니다. 그 젊은이들은 음악을 등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나는 그들이 자기 악기와 씨름하며 보내는 무수히 많은 시간을 생각하게 되죠." 사람은 누구나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과 애정이 있기 마련인데 딱 그런 마음이 묻어나는 인터뷰를 읽자니 중간중간 안타깝기도 하고, 또 먹먹한 마음으로 수많은 뮤지션들의 무대 뒤 모습까지 그린 그의 마음을 바라보게 되었다. ​ 상페의 삽화 중 하나인데 이미 어두운 밤, 트럼펫을 옆구리에 끼고 담배를 한 대 물고 있는 연주자는 연습 중에 잠깐 휴식을 취하는 중일까?


이 책은 대담형식으로 꾸며져 있어서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상페)의 질답이 끝없이 오가는데 상페는 굉장히 위트있는 사람이라 다소 반복되거나 짖꿎은 의도가 있는 집요한 질문조차 좀처럼 화를 내지 않고 그만의 방식으로 소탈하게 응수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6살 때부터 라디오를 들으며 음악과 사랑에 빠졌으나 다른 직업을 택해 대가의 반열에 오른 모습이 어딘가 돈을 벌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죽어라 해야 하는 평범한 사람의 인생과도 겹쳐져 보였다.

할 수 있는 일, 잘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이란 직업선택의 갭을 최정상 그림작가 장자크 상페에서도 느낄 줄이야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전혀 몰랐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뒷부분은 다 장자크 상페의 그림만으로 꾸며져있다. 앞에서 중간까지는 인터뷰를 통해 그의 인생, 음악 이야기, 영감을 준 유명한 곡을 친절한 역주와 함께 질리도록 볼 수 있고 뒷부분에는 그의 컬러그림(오케스트라, 연주회, 연주자의 모습들)을 실컷 볼 수 있어서 멜론이나 지니 같은 음악앱을 켜고 하나하나 찾아가며 들어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재즈나 스윙, 클래식, 샹송에 대해 문외한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들어보니 이미 알고 있는 곡이 너무 많아서 놀랐다. 그만큼 유명한 가수와 음반에 대해 두루 다루고 있으니 가을밤 울적할 때 음악을 들으며 한 장씩 넘겨보기에 이보다 더 좋은 그림 에세이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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