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디스 커 일러스트레이터 1
조안나 캐리 지음,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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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스 커"라고 영국의 세계적인 동화책 작가 주디스 커의 파란만장한 전기를 읽었습니다. "간식 먹으러 온 호랑이", "깜박깜박 잘 잊어버리는 고양이 모그" 등의 대표작을 남긴 분인데 일대기를 먼저 읽고나니 이 분이 남긴 동화책에 무척 관심이 가더라구요.

그만큼 작가 개인의 역사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잘 담아냈어요. 나치 독일에서 태어나 온 가족이 몰래 영국으로 망명을 하고 그 곳에서도 무수히 이사를 다니며 전쟁통에 학교를 다닌 내용이 '안네의 일기'와 겹쳐지면서 무척 흥미진진했습니다.



엄마와 베를린을 탈출할 때 어린 주디스 커가 챙긴 한 권의 책 "위인이 되다"에는 '힘든 어린 시절을 견디고 위인이 되었다.'라는 구절이 있었다는데 이게 무척 마음에 들어서 가슴에 새겼다네요.

정말로 주디스는 자라서 영국을 대표하는 아동문학 작가가 되고 대영제국 장교 훈장까지 받았다니 어린 시절 읽는 책의 중요성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른이 되면 사실 위인전기 같은 건 식상해지잖아요? 하지만 어린이들에게는 그만한 가치가 있어요.

주디스 커는 작년 95세의 나이로 작고하셨는데 동화 작가로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날린 것은 다소 늦은 40대부터였구요. 결혼 전에는 섬유 디자이너, 미술 교사, BBC 방송작가 등 다양한 직업을 거치기도 했는데 아이들이 학교 간 이후에 본격 데뷔한 "간식 먹으러 온 호랑이"가 히트를 치면서 전문적인 동화작가의 길로 들어섭니다.

그 후에는 거의 50년 동안 작품 활동을 줄기차게 하셨으니 100세 시대에 진정한 모범이자 이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드네요.



'그림 그리기 싫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주디스 할머니.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죽기 전까지 하면서 생계도 꾸릴 수 있다면 이거야말로 행복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베스트셀러가 되어 50년이 넘게 팔리고 있는 데뷔작 '간식 먹으러 온 호랑이'는 딸아이 덕분에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주디스의 딸 테이시가 동물원 호랑이를 무척 좋아했고 같이 동물원에 가서 보기도 하고, 딸아이가 호랑이 이야기를 해달라고 매일 조르면서 이 동화는 탄생하고 나날히 살을 붙여갔습니다.

딸 테이시는 동화 속 주인공 소피의 모델이 되었고 딸 덕분에 독자에게 뭐가 익숙한지, 어떤 점에 놀라워하는지, 어떻게 해야 웃게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네요.

그림책을 그리는 엄마와 그 책을 읽을 나이대의 딸, 환상의 조합 아닌가요? 덕분에 화가였지만 그 전까지 그림책 일러스트 경험이 전혀 없었던 주디스가 글과 그림이 합쳐진 동화책을 내는데 큰 도움을 준 거죠.


또 하나의 환상의 조합이라면 주디스 커와 그녀의 어머니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습니다. 땡전 한 푼 없을 정도로 가난했던 망명자 집안에서 무슨 여유가 있어서 딸에게 비싼 스케치북을 사줄 수 있겠어요?

그런데 주디스의 어머니는 아픈 딸아이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전문가용 화방에 가서 최고급 수채화 용지를 플렉스 해버렸죠. 덕분에 주디스의 어린시절 그림은 질좋은 종이에 그려져 세븐 스토리즈 기록 보관실에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걸 보고 과소비라고 할 수 있을까요?

게다가 그녀의 어머니는 나치에게 쫓기며 이사다니는 와중에도 어린시절 딸아이가 그린 그림을 가방 속에 다 챙겨서 떠났고 덕분에 독자들은 그녀의 어린시절 그림까지 고스란히 감상할 수 있게 된 거죠.

다른 일화도 많은데 달리는 모습을 못 그려서 고민하는 어린 딸을 위해 화가로 활동하는 친구를 집으로 초대해 일종의 개인과외까지 시킨 일을 보면서 한 사람의 위대한 예술가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세상 누구도 혼자 그냥 자라지는 않죠. 위대한 작가에게는 혜안을 가진 엄마가 있었네요. 그 날의 특별 지도 덕분에 주디스는 달리는 아이들은 발을 땅에 수평을 딛는 게 아니고 앞부리로 땅을 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후로는 달리는 모습은 물론 이렇게 서클댄스까지 훌륭하게 그리게 되었습니다.




춤을 출 땐 앞부리로 이렇게, 이렇게. ㅎㅎ

이 책 편집도 기가 막힙니다. 적절한 일화와 설명, 그 옆에는 참고자료까지. 정말 즐겁고 재밌게 읽었어요. 주디스 커 그림책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이 작가의 일생, 작품세계, 베스트셀러의 탄생 비화까지 책 한 권으로 중요 사건을 쏙쏙 다 알 수 있어서 궁금증 해결은 물론 그녀의 작품 세계가 읽기 전보다 훨씬 더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깜빡깜빡 잘 잊어버리는 고양이 모그' 역시 실제로 그녀의 고양이가 모델이라니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있을까요? 동물을 사람처럼 의인화하지도 않고 과장하지도 않는 것은 그녀가 그만큼 동물에 익숙하고 충분히 잘 알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고양이는 그냥 고양이다운 그 모습 그대로로 충분하니까요.




이 책이 시리즈물은 아닌 것 같은데 다른 작가의 작품도 이렇게 전기식으로 나오면 또 읽고 싶을 정도로 정말 만족스러웠어요. 심지어 아무도 빌려주고 싶지도 않을 정도로 마음에 쏙 드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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