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먹는 메론빵
이현서 외 지음, 김하랑 외 그림 / 북극곰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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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어린이들이 쓴 시를 모아 시집을 낸 게 이 "혼자 먹는 메론빵"이다. 맞다, 그 유명한 전라도 곡성군에 사는 아이들이다.

 

제목이 너무나 귀여운데 이 제목은 조명구 어린이의 "돼지"라는 시에서 따온 것이다.

잠깐 인용하자면 (p.27)

제목: 돼지- 조명구(6학년)

내 동생은 돼지

내가 먹고 있으면 다 뺏어 먹는다

밥을 뺏어 먹는다

과자도 뺏어 먹는다

우유도 뺏어 먹는다

계란후라이도 뺏어 먹는다

채소만 빼고 다 뺏어 먹는다

안 주면 아빠에게 혼나

안 주면 엄마에게 혼나

집에서

혼자 먹는 메론빵은

그래서 달달하다.

으아..이런 솔직함! 나도 꼬꼬마 시절에 시화부에 들었다. 매주 한 번씩 모여서 이렇게 시를 쓰곤 했는데 선생님 칭찬을 듣고 싶어서 과하게 잘 쓰려고 하면 도리어 시가 나오지 않았다. 시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솔직해야 한다. 열심히 쓰려고 하면, 더 잘하려고 하면 잘 안 된다. 순전히 나의 경험적인 이야기다. 전문시인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중간중간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도 삽화로 들어가있는데 이거 찾아보는 게 또 꿀잼이다. 여기 곡성 어린이들은 훈련받은 시인도 아닌데 위트도 있고 감동도 있는 시를 자유자재로 쓴다. 쉽게 쓰인 시만 있는 것은 아니다. 꽤 고민 끝에 나온 짧지만 굵은 한 방도 있다. 미래에 대한 고민도 있고 이뤄지지 않은 첫사랑의 아픔을 토로하기도 하고 어른들의 위선을 까발리기도 한다.

"감옥" 이라는 시를 읽고 깜짝 놀랐다. 공부하라는 엄마의 성화에 방에 갇힌 아이는 이미 엄마가 뉴스 아닌 웹툰을 보는 것을 알고 있다. 아이 역시 공부하는 척 하면서 게임을 한다. 어른들은 자신들도 하기 싫은 일을 아이에게 강요하곤 한다. 이 시의 제목이 감옥이라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보기 좋게 복수하는 아이. 애들에게 공부하라고 잔소리하기 전에 어른들도 그 고행에 동참해야 할 거 같다. 아이는 부모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 쉽게 들통나는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다.

 

 

이어서 또 다른 동시 하나, "파리의 별명"을 여러분께 소개한다.

"해로운 녀석, 기도하는 녀석, 날렵한 녀석, 기분 나쁜 녀석."

세상에.. 이보다 더 파리의 특징을 잘 잡은 글을 본 적이 있는가? 기도하는 녀석이라니.. 이런 상상력은 처음인데 완전 찰떡 같은 묘사 아닌가?

이 시 옆에 파리 그림 보이시는지? 너무 잘그려서 기절이다. 심지어 김하랑 화백은 6살이다. 어쩌면 좋누? ㅋㅋ 책 곳곳에 있는 김화백의 삽화를 보자니 그의 미래가 너무나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동시는 "달팽이"

이 시집 한 권 읽다보니 계속 같은 저자 몇 명이 돌아가면서 썼는데 참고로 나는 조명구 시인의 팬이다.

"명구보다 느린 달팽이. 지나가던 명구한테 밟히고 꼬마에게 납치되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힘들게 산다."

아.. 처음에 대충 읽을 때는 명구보다 느린 달팽이, 응? 명구가 누구야? 으아.. 이 녀석!! 지은이네.. ㅋㅋㅋ 이랬다.

이렇게 위트있는 시인은 여태 본 적이 없다. 달팽이를 보고 자기보다 느리고, 아이인 자신에게 납치되고 하루하루 힘들게 산다고 투영하는 그 마음이 너무 귀엽고 예쁘다. 자신의 이름을 이렇게 당당하게 시 안에 집어넣는 모습을 보며 '시를 공부한다는 것은 정말로 어리석구나, 예술한다는 이들은 필히 참고해야 할 시집이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 자신감, 너무 멋지다.

 

이 시집이 재미있고 간간히 성인 독자를 화들짝 놀라게 하는 이유는 어른은 생각도 못한 그 창의력과 대담함 때문이다. 어른이 쓰는 동시는 이럴 수가 없다. 어딘가에서 어른이 아이 흉내내는 것 같은 기묘함이 느껴지게 마련이다.

맨 뒷장에 시집을 엮은 편집장은 누구나 시를 쓸 수 있다고 한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응원하는 시집이라고도 했다. 맞는 말이다. 특정인만 예술을 하는 게 아니다. 할머니들의 시를 모아 시집도 내고 그림책도 냈다고 한다. 글을 모르는 어르신들을 모아 글을 알려주고, 이후에는 시를 쓰고 다음에는 그림책까지.. 왜인지 그 모든 작업을 생각하니 뭉클해진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바를 몸으로 옮기면 곧바로 실현되는 것이 삶이다"라는 말이 가슴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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