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멈출 수 없다 - 여성의 삶이 달라져야 세상이 바뀐다
멜린다 게이츠 지음, 강혜정 옮김 / 부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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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가 기부를 많이 한다는 것, 특히 개도국 어린이 백신 연구와 투자에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붓고 있다는 기사는 몇 번 읽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의 아내 멜린다 게이츠가 사실 그 자선단체의 핵심 수장이라는 것은 이 책을 읽고서야 알았다. 오히려 빌 게이츠는 본래하는 마이크로 소프트사를 운영하는데 힘쓰고 있으며 빌앤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2인자에 가깝고 실제로 세계를 날아다니며 적극적인 자선사업을 펼치는 재단의 실세는 멜린다로 보인다. 누구 이름이 먼저 나오는가도 내게는 재밌는 문제였다. 여전히 서구 사회도 자녀들은 대개 아버지 성을 따른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온 소위 후진국, 개도국의 엄청난 여성 차별과 착취의 역사를 보면 이 정도는 애교에 불과하다. 아무리 선진국 여성들이 직장내 유리천장, 집안일 육아 분담에 불만을 가져도 아프리카, 필리핀, 인도 등에서 벌어지는 온갖 무지와 폭력, 착취, 억압의 역사를 읽다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내가 놀란 것은 그와 같은 환경에서 자란 것도 아니고 미국에서, 수준 높은 교육을 받고 곱게 자란 멜린다가 어떻게 저런 처참한 여성들의 삶 속으로 뛰어들어서 20년 이상 봉사하며 변화를 이끌어내려고 노력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 여성은 진정한 페미니스트이다. 말로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열악한 처지의 개도국 여성의 삶을 바꾸려고 각종 단체를 꾸리고 엄청난 재원을 쓰고 그 나라 밑바닥에서부터 사회운동을 하며 끝없이 노력한다.

그냥 돈만 주고 끝인 부자의 기부활동이 아니다. 10살짜리 어린애를 결혼시키는 조혼 풍습이 있는 곳, 성노동자들이 고객에게 콘돔을 쓰길 요구하면 얻어맞는 곳으로, 이미 아이 6명을 낳고도 피임약이 없어서 또 낳을 위험에 처한 여성들의 동네로 직접 날아가 눈물을 흘리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가장 끔찍한 이야기는 아프리카 8개 국가 300만명 이상의 여성이 성기를 절단 당하는 관습이 있었다는 것인데 지금은 토스탄이란 단체 활동으로 더 이상 시행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소식이나 또한 인간이 이렇게 무지하고 잔인할 수가 있나 충격을 받았다.

그 나라 사람들은 관습 혹은 수백년 전통이라는 미명하에 여성들을 세뇌시켜 어릴 때부터 교육에서 배제하고 그들을 남성들을 위한 사물같은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남자를 위한 성노예, 남자와 가정을 위해 아이를 낳고 평생 무급 가사노동을 하며, 그들 가족을 모시는 그런 존재 말이다. 피임약은 단순히 여성의 성적인 쾌락의 유지를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산모와 신생아의 목숨을 구할 뿐 아니라 낙태를 감소시키고 이미 있는 자녀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한다. 아이 6~8명이 이미 있는 상황에서 더 낳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프리카의 어느 시아버지는 병에 걸린 어린애를 데려가려는 며느리를 밥 차려야 된다고 못가게 한다. 손주가 죽어도 상관없는 것이다. 아이는 하늘이 주는 것이니 하나를 데려가면 하나가 또 생긴다고, 신은 관대하다는 말을 할 정도이다. 조금이라도 힘과 권력이 있는 인간은 이렇게 타인에 대해, 특히 사회적 약자에 대해 놀랄 만큼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존재가 된다.

이 책을 읽다보면 벌어지는 입을 다물기가 힘들다. 아마 아프리카, 인도, 필리핀 등의 고질적인 가난과 악습은 너무 낮은 여성의 지위, 너무 무식한 남성들과 비합리적인 전통에서 비롯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여성과 남성은 서로의 적이 아니다. 사회의 변화를 위해서는 남성 조력자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남성들을 설득하고 그들을 조력자가 되도록 이끌며, 여성에게 기회를 확장하고 다양성을 촉진하는 것. 즉 지역사회의 여럿과 힘을 합쳐 새로운 문화를 가진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이 엄청 걸리고 때로는 좌절하겠지만 멜린다를 보면 분명한 성과가 있었다. 포기할 수 없는 미래가 있기에 멜린다의 도전은 아름답고 숭고하다. 여성의 삶이 달라져야 세상이 바뀐다. 지금도 tv만 틀면 아프리카 어린이를 도와주자고 나온다. 나는 멜린다처럼 좀 더 전략적인, 지능적인,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본다. 단순히 식량이나 의료품을 지원해주는 것으로 그 근간을 바꿀 수는 없다. 그랬다면 왜 아프리카 같은 곳은 거의 전세계인의 기부를 100년 이상 받아도 왜 도통 발전이 없단 말인가?

그런 기부 촉진 광고를 볼 때면 나는 깊은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도와주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초점은 여성 지위 상승에 맞춰져야 한다. 자신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 아이를 낳을 권리, 낳은 아이에게 백신을 맞힐 권리, 교육을 받을 권리를 찾아간다면 먼저 아이들을 구할 수 있다. 극빈국의 가난과 악습의 대물림도 서서히 개선될 것이다. 멜린다의 활동을 보면 자선사업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하고 뿌리깊은 사회악과 싸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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