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책장 - 엄마의 길에서 ‘나’를 찾는 독서 제3회 경기 히든작가 공모전 당선작 2
윤혜린 지음 / 사과나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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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엄마가 된 저자가 육아를 하며 느낀 고난(단어가 좀 이상할지 모르나 저자의 고생과 푸념을 듣자니 이건 육아가 아니라 고난으로 느껴졌다), 결혼하면서 바뀐 삶의 급격한 변화, 그 와중에도 다양한 작가들의 책을 읽으며 느낀 솔직한 감상을 엮은 에세이이다. 솔직히 나는 육아 경험이 없어서 간접적으로 조카를 돌보며 느낀 게 다라 '이 정도로 힘이 드는 걸까, 게다가 전업주부잖아?'라는 생각을 완전히 지우기는 힘들었다. 내 주변 친구들은 워킹맘으로 훨씬 더 정신없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저자의 어머니가 하신 말씀을 듣고 백번 공감했다. "요즘 애 키우는 게 옛날이랑 달라. 너희 키울 때는 안 이랬던 것 같은데..." 말이다. 바로 우리 어머니가 손주들을 돌보며 며느리 몰래 내게 하신 말씀이다. "요즘 애들이 훨씬 극성맞아, 너희들은 안 그랬는데" 라면서 혀를 내두르셨다. 거기에 대해서는 나 역시 저자와 같은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거 같다.

바로 아이를 같이 돌볼 인력의 태부족. 예전에는 같이 자라는 형제가 많았으니 벌써 훌쩍 큰 첫째나 둘째가 어린 동생들을 돌보았을 것이고, 주변의 이웃과도 더 가까웠을 테고 친척도 많아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산다면 역시 힘을 보태셨을 것이다. 이런 환경이 아니더라도 아마 아이만 돌보는데 전력을 투구하기에는 생계가 너무 버거워서 엄마들이 그만큼 신경을 못 쓰는 새에 애들이 다 커버렸을 수도 있다. 지금은 어찌보면 풍족하고 어찌보면 궁핍한 세대가 되었다. 물질적으로는 장난감에 유튜브, 넘치는 책 등 갖고 놀 거리는 많아졌는데 내가 관찰한 바로는 애들이 이걸 혼자 가지고 놀지는 않았다. 그들은 늘 그것을 같이 봐줄 어른이 필요했고 대개는 엄마다. 밤낮없이 엄마만 찾으니 육아가 고통이 되는 것이다.

다행히 저자는 잘 극복한 것 같다. 가장 힘들다는 초반 5년을 지났고 아이 둘을 이미 낳았으니 잘은 몰라도 또 다시 출산의 고통을 겪을 것 같지 않다. 이제는 엄마로서 경험도 쌓이고 애들이 그 지겨운 기저귀도 떼었으니 더 이상 밥 먹다가 화장실 호출을 안 당해도 될 터이다. 정말 다행이란 생각을 하며 읽었다.

사람들은 '82년생 김지영' 이야기를 많이 한다. 책도 히트쳤고 영화 역시 그렇다. 나는 둘 다 보지 않았다. 그닥 끌리는 주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 '엄마의 책장'을 통해 다양한 작품을 소환했다. 그 중 '82년생 김지영'도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인용한 한 단락은 읽었다. 여자도 남자와 같이 교육받고 사회생활 하고 환경이 많이 나아졌지만 유독 육아는 100년전이나 지금이나 여자의 몫이라는 말 말이다. 공유처럼 아내를 이해하려고 하는 착한 남편이 있어도 육아는 힘들기만 하다는 그녀들.. 무엇이 문제일까?

아마도 남편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보조자에 머물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음식물 쓰레기는 버려줘도 살림을 온전히 책임지지 않는 것처럼, 맞벌이를 해도 퇴근하면 또 집안일을 하는 여자와 달리 남자는 퇴근하면 쉬려고만 한다. 그렇다면 여자가 살 길은 하나다. 남자처럼 풀타임 사회생활하는 것을 포기하고 대학 나와도 평생 전업주부로 살던가, 배운 게 아까우면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라도 차선으로 선택해서 좀 적게 일하고 적게 벌던가.

너무 차가운 생각일까? 아마 어떤 선택을 해도 둘 다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다. 저자 역시 대학시절 열심히 공부했고 대학원까지 나온 여자다. 취업에 실패하고 갑자기 결혼해서 전업주부로 살며 어떤 생각을 했을지 짐작이 간다. 또한 그렇게 정신없이 엄마로서의 삶을 살면서 본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감독님이 망해서 좋아요, 감독님을 보고 망해도 괜찮구나 안심이 됐어요"라는 유라의 대사는 나도 참 좋아한다. 망해도 괜찮다. 저자처럼 각종 작가 공모전에 떨어져도 괜찮고 대학 나오고도 취직 못해도 괜찮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저자는 이제 초등학교와 도서관에서 글쓰기 관련 수업을 한다고 한다. 이렇게 경기 히든 작가 공모전이란 것에 당선되어서 책도 냈다.

 

 

삶은 한 번의 성취로 좋아지거나 나빠질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저자의 말에 가장 공감한다. 우리는 모두 꾸준히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번에 떨어지면 다음에 또 응모하면 된다. 실망이야 되겠지만 이겨내야 한다. 저자가 읽었다는 다양한 작품들 중에는 내가 본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었지만 인용이 많아서 조금 산만하기도 했다. 역시 가장 큰 공감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나보다. 성공한 타작가들의 글보다 저자 아버지 이야기가 가장 인상깊었다. 지극히 평범하게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했던 아버지. 디즈니 만화처럼 그렇게 오래오래 행복했습니다 끝이 아니라 그 "오래오래"로 축약된, 실은 구질구질하고 구구절절한 삶의 밑낯에 주목한 저자의 솔직한 시선이 아름답다. 이게 에세이의 맛이 아닌가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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