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나는 이렇게 살고 있지만
지평님 지음 / 황소자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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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편집자이자 동시에 작가의 글을 읽는 게 흔한 일은 아니라서 출판사 대표라는 저자의 글을 호기심을 갖고 읽기 시작했다. 게다가 저자의 이름은 지평님이다. 지평님이라.. 음.. 필명인가? 그러나 자기 이름에 님자를 붙인 필명을 출판사 대표라는 사람이 쓸 리 있을까 싶었다. 중간쯤 책을 읽다가 잠시 기사를 검색해봤다. '황소자리 출판사 대표 지사장은...' 악.. 이 분의 본명이구나!! 피식 웃음이 났다. 왜 님자만 들어가면 자꾸 예명이나 가명, 필명 쪽으로만 생각했을까 무지의 소치이니 용서해주시길..

 

시골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났고 다소 몸이 약했다는 저자의 글은 대부분이 소박하고 솔직하며 담백하지만, 편집자 특유의 날카로움과 고집도 엿보였다. 그러나 대표인 본인 이름을 걸고 쓴 부담도 있었는지 몇몇 시사와 관련된 글은 조금 에둘러 말하며 수위를 조절하느라 애쓴 티가 역력했다. 그런 글들은 마냥 웃으면서 볼 수 없었고 마음이 불편해지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에세이를 머리가 아플 때 읽는 사람인지라 인생사의 고달픔과 괴로움보다는 자연의 아름다움, 먹는 즐거움, 조카와 보낸 소소한 일상 등이 훨씬 기억에 남는다. 이미 하루를 살면서 충분히 괴로웠기에 밤에 펼치는 에세이에서는 그만 괴롭고 싶은 마음인데 다행히 저자의 글에서는 8할에서 자연의 냄새가 난다. 농부의 딸은 글에서도 흙냄새가 나게 하는 것일까?

인상 깊게 읽은 글은 조카와의 에피소드인데 저자가 20대 중반일 때 결혼한 언니 집에 4살배기 조카와 같이 살았더랬다. 선천적으로 건강체질이 아닌 저자는 당시 자주 아팠나본데 야근과 밤샘 근무로 집에서 앓고 있을 때 이 꼬맹이가 유아용 해열제를 입에 넣어줬고 세상에 그 유아용 시럽 한 숟가락에 쇼크를 일으켜서 병원에 실려갔다고 한다. 그녀는 참으로 안타까운 몸뚱이(?)이었고 조카는 상당히 영민하고 예민한 타입이었다. 그 어린 나이에 이모가 쓰러진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커서는 약품이 유발하는 사고에 민감해져서 그 분야 해외 신간서적 리스트까지 출판사 대표인 이모에게 검토해보라고 보내주다니. 4살짜리가 당시 일을 기억하고 자랐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조카와 이모 사이의 끈끈함이랄까 교감도 다정해서 좋았다. 이 에피소드의 제목이 "다행히 나는 별일 없이 살고 있지만..."인데 책 제목은 "다행히 나는 이렇게 살고 있지만"이어서 또 웃었다. 어떻게 4살 짜리가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이모가 쓰러진 것까지 알렸을까 천재 아닌가 싶고 덕분에 이모가 목숨을 건져서 이렇게 살고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다 싶다.

그 다음으로 재밌게 읽은 에피소드는 금수저 친구의 시골 김장 체험기이다. 일가친척이 모여서 수 백포기의 김장 담그는 게 버킷리스트라는 뼛속까지 도시인인 친구. 성화에 못이겨 허락한 저자와 함께 그녀의 고향 마을로 내려가서 1박 2일로 400포기의 김장을 체험하고는 구부려지지도 펴지지도 않는 몸이 되어 서울로 올라가 일주일 동안 물리치료를 받는 웃픈 결말로 끝이 난다.

 

 

이렇게 저자의 주변에는 귀여운 친구들이 많다. 직접 농사지은 쌀을 보내준 선배도 있고 같이 밥을 먹으며 회포를 푸는 오래된 벗도 있다. 사람 냄새가 나는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인정이 많고 감수성이 풍부한 탓일 것이다. 편집인으로 또 출판사를 경영하면서 녹록치 않은 경험을 하고 고생도 많이 했을 텐데 여전히 인간에 대한 믿음과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아서 다행이다. 또한 솔직하다. 출판사에 투고 원고를 들고온 어느 할아버지 이야기도 그렇다. 편집인이라면 이렇게 자신의 글을 들고 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것이다. 아마도 투고자의 글 대부분이 출판하기에는 함량 미달일 텐데 문제는 어떻게 이야기를 하고 돌려보내느냐겠지. 요즘처럼 아예 얼굴을 볼 필요가 없이 메일로 답을 주면 간단할 텐데 노인이 혼신의 힘으로 쓴 육필원고를 거절하는 게 어떤 기분일지 상상이 갔다. 그 분과의 불편한 식사자리를 참으며 위로한 마음도 그렇고, 식사를 거의 못 들고 실망한 채 돌아간 할아버지도 안타깝다.

예술의 영역은 잔인하다. 다른 영역도 마찬가지지만 마음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자비출판이라면 모르겠지만 시장에서 이윤을 내야 하는 사업을 하는 것은 냉혹한 비즈니스의 세상이다. 작은 출판사를 경영하면서 겪는 아픔도, 가족과 친구에게 얻는 위로도, 또 세상 사는 일원으로 느끼는 소소한 일상도 이웃집 누구의 이야기처럼 공감이 갔다.

특히나 지하철에서 젊은 여자와 어느 노인의 싸움은 나에게도 소제목처럼 '엿같은 기분'을 느끼게 했다. 막말하는 그녀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노인을 보며 도대체 우리사회의 약자끼리 붙으면 누굴 응원해야 하는가 헷갈리기까지 했다. 그녀는 여성차별과 윗세대의 언어폭력을 함께 묶어서 억울함을 코스프레하고 노인은 속사포같은 젊은 여자의 말을 뭐라 제대로 대꾸할 새도 없이 당한다. 이제 우리사회의 청년들은 자리 비키라는 지하철 노인의 말에 바로 대거리를 할 정도로 강해졌다. 그들 중 일부는 노인들을 혐오한다. 나 역시 비슷하게 불편한 상황을 몇 차례나 봐왔지만 쉽게 그 싸움에 끼어들 수 없었다. 에세이 속 노인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분도 드물었고 둘 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기 때문이다.

좋은 글은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는 글이라고 한다. 동시에 나는 그저 복잡한 머리를 쉬려고 에세이를 읽었는데 오히려 정신이 말짱해져서 새벽까지 잠을 못 이루고 있다. 그럼 이 글은 좋은 글일까 나쁜 글일까? 농담이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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