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풀어보는 문화 이야기
박상언 지음 / 이음스토리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숫자를 소재로 문화, 역사적으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낸 에세이이다. 사실 읽다보면 숫자가 크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히려 숫자 아래에 붙어있는 소제목이 더 의미가 있고 숫자 그 자체는 책을 엮기 위한 형식에 불과하다. 다만 숫자를 엮어서 101편의 글을 쓸 정도로 박학다식하고 조사를 많이 했을 저자의 노력에 감탄하게 된다.

 

한 주제당 2~3페이지의 짧은 글은 신문의 칼럼처럼 스피디하게 읽힌다. 대부분의 글이 2008~2010년 사이에 쓰였고 비교적 현대라고 할 수 있는 2018년도 글은 딱 4편 뿐이고 그 사이는 아예 없다. 어쩔 수 없이 올드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반면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볼 수 있어서 재미있기도 하다. 왜 신간서적인데 이렇게 오래된 글만 실었나 좀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는데 예를 들어 '16.9 마음으로 취하는 술'이란 글은 소주의 도수에 관해 쓰였는데 술의 도수가 계속 내려간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일제 때 35도짜리 소주에서 시작해서 1965년 희석식 30도 일반 소주, 1973년 25도, 90년대 중반 16.9도 소주까지 출현에서 끝이 난다. 이 글이 쓰인 시점은 2006년 11월 4일. 그럼 지금 소주의 도수는 어떻게 됐나 궁금한 채 다음 주제로 넘어가는 식이다. 기왕 숫자를 모티브로 이야기를 푸는 것이라면 현재 시점까지 업데이트가 되어서 출판되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그 의문을 풀어준 게 제일 마지막에 읽은 저자의 말이다. 본문을 먼저 읽고 나중에 맨 앞으로 돌아가 저자의 말을 읽어보니 이 101편의 글은 라디오 프로그램인 '박상언의 문화 사랑방'을 맡았을 때 진행자 칼럼 형식으로 발표했고 방송 후에는 '웹진 아르코'에도 이어서 연재했던 글을 출판사 대표의 권유로 출판했다는 것이다. 아마 저자는 연식이 오래되어서 이 글을 그대로 내는데 상당히 주저한 것 같지만 출판사 대표가 그냥 날짜까지 그대로 밝히고 출판하면 바뀐 세상의 모습을 독자들이 스스로 그릴 수 있어서 더 좋지 않겠냐고 설득하자 넘어간 것 같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는 과거의 글과 현재의 글을 좀 섞어서 업데이트를 해서 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하지만 오래된 글뿐이라는 약간의 불만을 접고 읽다보면 화자의 경험과 내 경험이 만나는 부분이 생기고 책을 통해 동시대를 함께 산 경험을 공유하는 것 같은 친밀감이 느껴진다. '천원의 행복' 역시 오래되어서 웃음이 나는 글이다. 2009년도에 쓰인 이 글을 읽어보면 물가의 차이가 확연하게 느껴진다. 천원으로 pc방 게임, 노선 버스타기, 공연보기까지 가능했다니 요즘은 천원이 500원처럼 느껴지는데 아마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얼마전 10년만에 껌 한통 샀다가 천원 내고 거스름돈을 안 주기에 화들짝 놀란 기억이 난다. 책을 읽다보니 2007년의 최저임금이 3480원이었다는 것, 또 2008년에도 여전히 한국 경제는 어려워서 경제 성장률을 정부는 3%, 한은은 2%로 잡았다는 얘기에도 쓴웃음이 났다. 올해 1%대 경제성장률에 그칠 거란 뉴스를 엊그제 봤기 때문이다. 글을 썼던 2008년에서 무려 10년도 더 지났는데 한국 경제는 나아지긴커녕 지속적인 악화를 걸었다는 방증 아닌가? 책을 읽으면서 우리 경제가 나아지고 있다는 소리를 하는 담당 공무원들에게 이 책을 한 부씩 나눠주면 어떨까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글을 읽으면서 놀란 것은 저자의 국어실력이다. 사어에 가까운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말이 칼럼 하나당 1~2개씩은 꼭 있어서 정확한 뜻이 궁금하면 찾아보면서 읽어야했다.내 무지가 부끄럽기도 하고 외국어를 새로 배우는 것처럼 재미있기도 했다. 예를 들어 '어둑서니가 자라고 있다, 생게방게 질문 하나 던져본다, 짓쩍긴 하지만, 한올진 벗의 마음자리, 콩켸팥계, 옹숭망숭 몽몽하기 일쑤여서' 등 어감이 귀엽고 다정한 고유어가 저리도 많고 참 자유자재로 쓰였다.

문화, 예술계에서 오래 일한 저자답게 다방면에 관심이 많고 역사에도 통달해서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또 무슨 순서가 있는 것이 아니고 칼럼 하나당 분량도 짧아서 이동중에 간단히 읽기 좋았다. 에세이와 잡문을 많이 쓴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떠오르기도 했다. 읽다보면 숫자는 그저 양념일 뿐 저자라면 충분히 어떤 주제로도 글을 쓸 수 있는 에세이스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