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감정학 How To Break Up Like A Winner K-픽션 24
백영옥 지음, 제이미 챙.신혜빈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9년 2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백영옥 작가의 책은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아주 보통의 연애' 등 제목은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읽어보는 것을 처음이다. 그것도 바이링궐 한영 소설로! 학생때 영한대역소설은 몇 권 읽어봤지만 이렇게 젋은 한국작가의 소설을 영어로 번역한 출판물이 나와있다는 것도 이번 기회에 처음 알았다. 책은 작고 가볍고 얇아서 휴대가 편하게 생겼고 왠만한 핸드백에 쏙 들어갈 사이즈이다. 나는 평소 영어 공부가 취미인 사람이므로 한국어로 먼저 읽고, 영어로 2번째 읽어보았다. 이 책, 두 가지 면에서 아주 인상적이었다!

 

 

첫째, 이 k픽션 시리즈는 옛날에 만들어진 어색한 영한 대역소설이 아니다. 한국어와 영어의 중요도가 똑같은 바이링궐 소설이다.  

기존의 영한대역소설은 영문소설이나 영미권 소설을 1:1로 번역한 것이라 한국어로 옯긴 내용이 어딘가 어색하게 마련인데 한영대역인 '연애의 감정학'은 그런 매끄럽지 못한 번역투의 영어가 1도 없었다. k픽션 시리즈는 나처럼 한국어가 모국어이고 영어를 공부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재미있게 읽히지만, 영어가 모국어이고 매끄러운 한국어를 공부하고 싶은 외국인 학습자에게도 좋은 도구가 될 터였다. 예를 들어 한국어는 흔히 주어가 생략되지만 영어는 주어가 꼭 필요하다. 없으면 it같은 가주어라도 집어넣어야 직성이 풀리는데 본문 36페이지에 "내 주위를 봐도 헤어져서 두 달을 못 넘기고 다시 만나더라. 의지력이 없어진 건가?"라는 주인공의 대사가 나온다. 주인공 친구가 "참을 필요가 없어진 거지."하고 바로 되받는데 다음 페이지의 영어본을 보니 이걸 "Kids these days have no need for willpower."라고 아주 훌륭하게 번역해놓았다. kids는 단순히 어린애들만 뜻하는 게 아니라 젊은이들도 포함해서 지칭하는데 소설 속에서 다이어트 중인 사람이 과자를 못 참고 집어먹는 걸로 비유가 나왔으므로 한국소설 원본에는 주어가 없었다고 해도 이를 영어로 옮길 때는 어린애와 젊은이를 모두 포함하는 kids보다 더 좋은 주어를 생각해낼 수가 없는 셈이다. 이 소설은 소설 자체만으로도 재밌지만 외국어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아, 이런 한국어 표현을 어떻게 영어로 바꿀까' 궁금할 때 바로 옆 페이지나 그 다음 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된다. "눈에 보이는 곳에 과자를 사놓고"라는 대사가 나와서 어떻게 바꿨나 슬쩍 봤더니 "Why leave snacks lying around in plain view"라고 멋지게 작업해놓았다. '눈에 보이는 곳' 같은 한국어를 곧이곧대로 영어로 번역했다면 a visible place가 되었을 것이다. 문법적으로 맞더라도 어딘가 이상하다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plain view라니, 말만 들어도 탁 트인 시야가 느껴진다. 역자인 제이미 챙의 약력에 저절로 눈이 가는 순간이었다.

 

둘째, 요즘 20대의 연애를 sns와 연결시켰다는 것이다. 백작가의 장기가 연애물이라는 것은 대충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은 여주와 남주의 연애 그 자체보다는 헤어진 후의 심리를 다루고 있다. 철저히 여주인공인 태희의 관점만 나온다. 남자친구인 종수가 태희와 헤어진 후에 어떤 심정으로 전여자친구를 다시 만났는지, 왜 그가 태희를 또 만나게 된 것이지, 결국 다시 헤어진 것은 정확히 어떤 이유인지 때문인지 알 수가 없다. 모든 것은 태희가 하는 대사와 행동을 통해 추측해봐야 하는데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로 일하는 태희는 sns를 하는 요즘 20대 여자의 표본같다. 나는 이미 20대를 지나왔기에 그렇게까지 sns에 집착하지 않지만 데이터 마이닝이라고 지칭하는 스토커짓이 사실은 우리 모두가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일이라는 데 놀랐다. 인스타그램,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등 대다수의 sns는 친구의 친구를 넘나들고, 서로 팔로우해서 아는 사람을 늘리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내가 굳이 관심이 없어도 끝없이 이런 사람 알지 않냐고 추천에 뜨고, 언젠가는 그 추천인들을 클릭하게 된다. 이런 초연결사회에서 sns와 연애를 동시에 하는 사람이라면 헤어졌다고 옛연인의 흔적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없을 것이다. 잊혀질 권리는 가상의 공간에서 없다. '자, 이제 우리 헤어지자'하고 땅땅땅 결정을 해도 내일 sns에 들어가면 그 사람의 친구를 통해서 혹은 단톡방 소환을 통해서라도 전여친, 전남친과 언제라도 마주칠 수 있는 것이다. 

 

 unfriend는 소셜 네트워크의 친구목록에서 삭제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나 태희는 종수를 unfriend하는 작업, 즉 이별에 실패한다. 종수에 대한 관심을 도저히 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녀가 종수를 아직 사랑하고 있어서 종수의 흔적을 sns상에서 죽어라 찾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전남친 증후군'이라는 병 아닌 병에 걸려 종수의 전여친, 과거 행적, 친구들이 올린 단서를 마치 탐정처럼 찾아헤매면서 종수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다. 사귈 때보다 헤어진 후에 더 많이 알게 되는 아이러니, 그녀는 책 초반에 종수와 헤어진 게 그녀가 겪은 이별 중 3번째라고 했다. 종수와 제대로 헤어지고 싶은 태희에게 이별이란 마치 페이스북을 끊는 것처럼 여러번에 걸쳐서야 완성된다. 처음 읽을 때는 소설 속 결말이 갑작스럽고 모호하게 느껴졌는데 책 뒤편의 창작노트와 해설을 통해 이해를 더할 수 있어서 좋았다. 또한 sns키즈이건 아니건 연애는 어쩌면 자신의 완성을 위해 더 필요한 과정일지 모르다는 생각을 했다. 상대를 통해 들여다보는 객관적인 나. 태희는 종수를 스토킹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성장했다. 그리고 끝내 이별을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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