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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행 완행열차
박찬순 지음 / 강 / 2018년 3월
평점 :
긴 머리카락으로 가린 얼굴... 외롭게 웅크린 몸... 그 무엇들을 가리고 감싼, 그늘지우고 막연하게 깊어 보이는 공간...
우리는 이렇게 모호한 단서만으로 어우러지는 누군가의 이미지에 자신의 영감을 그에게 덧씌운다. 그의 아우라를 그렇게 완성시킨다. 그러다 문득... 그런 아우라에 스스로가 현화된다.
박찬순 소설집, 암스테르담행 완행열차...
프레임의 윤곽이 선명하지 않은 11편의 삶들은 이어진 길 위에 드문드문 흩어져 있는 것들이다. 그러면서 그 길은 아스라이 멀고 아득하며, 황혼 때문에 그늘지고 늘어져 있다. 길 위를 걷는 사람들 표정들도 바람 같은 긴 머리카락에 덧없이 덮여져 버린 모양으로 우울하다. ‘어떻게 발길이 저절로 그쪽을 향했을까’.... 책 첫머리의 문장처럼 단편 속 모든 인물들은 그 길 위에서 쓸쓸하고 망설인다. 모든 등장인물들은 집이 아니라 길 위에서 외롭다. 책을 다 읽고 왼쪽으로 마지막장을 넘기면서도 그 첫 문장은 계속 소심한 내 발등에 차인다.
‘어떻게 발길이 저절로 그쪽을 향했을까’
인생은... 삶은... 너무도 쓸쓸하고 아득하며, 길 위에서 삶은 그렇게 비루하며, 느리고 눅눅한 완행열차를 타고 있단다.
기대할 수 없게 디자인된 책의 모양 때문에... 촉망 없이 읽기 시작했지만, 두 번째 쪽부터 투명한 밀도로 넘실거리며 나를 깊숙하게 의자에 눌러 앉힌 이 소설은 일본이나 여느 한국 소설에서 맴도는 마당과 부엌 같은 답답하고 텁텁한 협소성이 안 느껴진다. 유연하고 자연스런 뻗침이 투명한 애잔함으로 비롯되어 삶의 애련함으로 조용히 스며든다. 무엇보다도 성가신 개연성으로 어설프게 직조되지 않은, 11편 이야기들의 욕심 없는 조형성과 그 연결 방식은... 무척이나 미묘하며 고급지다.
또한... 버려진 마을의 우물처럼 조용하고도 심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