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홀의 조선회상
셔우드 홀 지음, 김동열 옮김 / 좋은씨앗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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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관심사 내지 사명감을 뒤로 쳐두고라도 2대에 걸쳐 한가지 목적을 달성하고자 목숨을 담보로 미개한 나라에 몸을 던지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거 같은데 전혀 두려움없이,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나가는 모습은 참 감동스럽다. 뭐 회고록의 특성상 자신의 쪽팔린 행동이나 생각은 기술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이야기는 1890년 홀의 아빠가 의료선교사로서 아내(역시 의사)와 함께 조선에 입국한 다음부터 시작한다. 그 다음 아빠는 한국에서 병으로 요절한 다음 아들이 미국에 가서 의학공부를 하고 또 의사인 아내와 함께 조선에 들어와서는 1940년 일제에 의하여 추방되기 까지 회고한 글이다. 1940년에도 미국으로 귀국하지 않고 곧바로 인도로 가서 20여년간 의료선교활동을 한 걸 보면 대단한 깡다구의 소유자다. 1988년에 이 아저씨가 91세 되던 해에 한국에서 이 분의 공적을 알고는 한국으로 초청을 했는데, 이 양반이 입고 나갈 외출복이 없었단다. 아지매도 마찬가지. 그래서 양복은 캐나다에 있는 한국인 독지가들이 마련해주고, 아지매 옷은 부유한 친구들의 것을 얻어입고 한국을 방문했단다. 그리고는 1991년 98세에 돌아가시고, 아지매는 5개월 후 95세에 돌아가셨단다. 물론 죽은 곳은 고향인 캐나다에서 죽었는데 화장한 다음 한국의 양화진에 묻었단다. 거기에는 아빠, 엄마, 아들, 누나, 마누라, 딸도 함께 묻혀있다는 걸 보면 한국에 대하여 참 대단한 애정을 가진 거 같다. 이 장면에서는 감동의 쓰나미가 몰려온다. 의사라면 어딜 가든 부자로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을 때까지 인류에 헌신하고 가난하지만 당당하게 사는 모습은 참 멋지다.

 

몇몇 인상적인 부분만 추려보면

- 1890년에 아빠가 처음 선교사로 부산에(물론 배편으로, 샌프란시스코에서 18일이 걸려서) 도착했는데,

  . '언덕과 산들이 매우 가파르고 암석이 많고 나무가 없어 삭막해보였다'...아마도 땔감이 없어서 모든 나무들을 부엌 아가리로 보낸, 가련한 삶을 살고 있을 때가 아닌가.

  . 일본인, 중국인보다는 키가 월등히 크다. 모자를 장신구로 쓰고 그 종류도 엄청나게 많다. 선비, 고관들은 모두 부채를 들고 다닌다. 여름, 겨울 구분없이.

- 이 때만 해도 사과가 국내에는 없었다.1892-1932년에 선교사로 한국에 재직한 스웰런이란 분이 도입했다.

- 불교는 국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서민은 잡신을 숭배, 양반들은 유교를 숭배...이 아저씨가 잘못 파악한 거 같다. 대부분이 잡신 아니었나 싶다. 요즈음도 뭐, 한꺼풀만 벗기면 '祈福' 아닐까.

- 평양은 그 모양이나 풍수지리설에서 '떠나가는 배'모양이라, 성중에 우물이 없단다. 우물을 파면 배에 구멍을 내는 것과 같아서 도시가 가라앉는다고 해서.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북청물장수라는 산업도 생긴거라.

- 서양의 천년전으로 돌아온 것 같다. 그만큼 후진 모습이었다.

- 아직도 도심에 호랑이가 출몰한다.

- 조선사람들은 대부분 시계없이 살고 있다. 조선에선는 사람들의 긴박감과 시간개념을 배울 수 없었다. 조선인들의 생활철학은 서두르지 않는 태평함에 있다.

- 조선의 영문표시는 'CHO-SEN'이다.... 아마도 1800년대 말부터 조선을 강점한 일본인들이 자기들 부르기 쉽게 이렇게 표기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조센징'이 되었을 거 같다.

- (선교사들의 눈으로 볼 때)가장 아름다운 곳이 소래포구와 원산의 해변이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조선의 풍경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금강산도 숨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아침 해돋이도 다른 나라의 그것과는 달리 너무 장엄하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걸 해돋이를 보면서 느꼈다.

- 가장 참기 어려운 거 중의 하나가 무당이 밤세워 굿하는 소리, 그 중에서도 찢어지는 듯한 징소리와 북소리이다.

- 조선인들의 믿음은 산이라도 움직일 듯 굳건하다. 이들은 밤을 세워서 기도하고, 큰 소리로 하기를 좋아한다....요새도 마찬가지.

- 크리스마스 실은 덴마크에서 시작했다. 어떤 시골마을의 폐결핵 환자 촌에 운영비가 부족한 걸 그 동네의 우체국 직원이 우표를 작은 값에 사는 것을 보고 십시일반으로 크리스마스 때 실도 함께 팔아서 이들을 도울 수 있을 거 같다는 아이디어로 시작했고, 성공적이서 덴마크는 폐결핵인구가 당시 세계 최저였다. 홀이란 분이 이걸 한국에 처음 적용했다.

- 크리스마스 실과 관련한 압권...이 사업을 시행한 첫 해에 여러 사람, 조직으로부터 다양한 편지가 왔는데 대부분은 좋은 행사다. 앞으로도 계속 지원하겠다 등등이었는데, 그 중의 한 편지에는.......

   '.....저는 당신이 결핵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돕는다는 광고를 보고 실을 샀습니다. 그리고 매일 밤마다 이 실을 정성껏 가슴에 붙였습니다. 그런데도 이 약은 나의 심한 기침을 조금도 낫게 해주지 않았습니다. 돈을 돌려주시기를 청구합니다'.

...................

   '...여러 사람들 입에 자자한 그 훌륭한 크리스마스 실 약을 좀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값은 얼마라도 지불하겠습니다...'

  ...'당신의 요양원에 무료 입원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 실 입원권을 좀 보내주십시오. 저의 친구들도 많이 들어가려고 합니다'

- 조선의 한 부유한 가정에서 어떤 아줌마가 아팠는데, 의사를 3명을 고용해서 치료하는 중에 또 이 양반에게도 치료를 해달라고 해서 격분했다....요즈음 말하는 '의료쇼핑'이 그 때도 있었다고나 할까. 

- 일제가 전쟁에 광분하면서 단파라디오는 모두 압수해갔다. 그래서 이 양반은 의사가 가지고 있는 청진기를 활용할 수 없을까 생각하다가 장파라디오의 스피커 부분에 청진기를 대고 튜너를 조심스레 돌려 봤다. 그랬더니 단파 방송 중의 하나가 잘 들렸다. 그래서 외국에서 보내는 방송을 청취할 수 있었다.

- 인도를 기행하면서, '정적의 탑'이란 곳을 방문하였는데 Parsee교도들이 사람의 시체를 독수리가 뜯어먹게 하는 것을 봤다...鳥葬이라고도 하고 天葬이라고도 한다....그 신자 중의 한사람에게 물었더니, 왈, '새에게 먹히는 것 보다 벌레에게 시체를 먹히게 하는 것이 더 몸서리쳐지는 것'이라고 했다...같은 행동(장례)에 대하여 사람의 생각에 따라 이렇게도 달라질 수 있나 싶다.

 

 

참 부러운 것이 보였는데, 뭐냐하면 미국 내지 캐나다의 사회 시스템이란 것이다. 선교활동과 생물학자 등을 중심으로 식자층들이 제3세계로 진출하는 이면에는 다양한 관점의 정보를 본국에 전한다는 것이 있다고 하지만

- 종교단체에서 선교자금을 받다가 자기가 벌인 사업을 수행하기에 예산이 부족하면 주저없이 본국의 친구들, 교회, 자선단체에 사업계획서와 자신이 이룬 성과 등등을 보내면 이들은 믿고 지원을 해준다는 것.

- 안식년이라는 걸 철저히 준수하여 충전의 기회를 갖고(쉬기도 하지만 새로운 전문지식을 더 쌓는 기회로 여기는 것 같음), 자신의 사업을 널리 이해시키고(교회 등지에서 설교하는 시간을 배려), 자금도 모으는 기회도 가지며,

- 안식년을 통하여 특정한 사람에 의하여 조직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에 의하여 조직이 운영될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즉, 안식년으로 이 사람이 자리를 비우게 되니 반드시 대타를 마련해서 그 조직을 맡긴다).

- 많은 여행을 통해서 식견을 넓힌다. 서울에 부임, 안식년(2차례)을 가지려 미국과 캐나다를 오가는 행로를 만주와 러시아를 관통하는 경로, 유럽과 인도, 싱가폴 등지를 통하는 경로를 선택하여 1달 내외 기간 동안 여행하면서 통과하는 나라를 방문한다.

- 이상은 미국인들이 100년전에도 하던 생활방식인데 우리나라의 살림살이도 많이 좋아진 거 같은데 이런 식으로 애들을 키우거나, 행동하지 않는다. 오로지 학원, 과외, 경쟁...불신지옥 예수천국... 생각할 바가 많다. 물론 사회적으로 제동장치가 있는 그들 나라와, 내가 무너지면 가족이 곧바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우리사회와는 분명 많은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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