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식당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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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즘에는 경제경영 관련 책을 주로 읽는 중이라서 소설책은 오랜만이다. 

나는 원래는 일본 추리소설 마니아다. 그것도 꼭 반전이 있는 추리소설을 읽는다. 

《달팽이 식당》은 추리소설은 아니지만 그에 버금가는 반전을 담고 있다. 

현실을 그린 것 같으면서도 허구가 잔뜩 있고, 따뜻한 것 같으면서도 잔혹함도 물씬 풍긴다. 

 

잔잔한 수채화 느낌의 책표지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엠보 처리된 책 표면때문에 진짜 비가 내리는 듯한 기분이 난다.


전 세계적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는 사람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아닐까 한다. 

무언가 하나씩은 부족한 부분이 있는 등장인물들에게 담은 애정이 한 장 한 장 종이를 통해서도 폴폴 풍긴다. 

그렇기에 다소 충격적일 수 있는 내용들도 시냇물 흘러가듯이 잔잔하게 넘어간다. 

넋 놓고 읽다가는 현혹당할 수 있으니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 달팽이 식당의 결말 및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이 점 꼭 참고해 주세요. ※

무화과나무, 사과, 산포도, 석류, 송이버섯, 생굴, 옥돔, 서양배, 밤, 순무, 복어, 머위, 아스파라거스, 두릅...

위의 모든 식재료를 구할 수 있는 유방산 자락의 어느 산촌 마을.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갑자기 목소리도 안 나오게 된 린코가 엄마가 있는 고향집으로 10년 만에 돌아와 식당을 차린다. 

엄마는 엘메스라는 백 킬로그램이 넘는 돼지를 기르면서 살고 있다. 

식당에 다양한 손님이 찾아오면서 일어난 이야기들을 그리고 있다. 

달팽이 식당

달팽이 식당은 작은 공간을 책가방처럼 등에 메고, 지금부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나와 식당은 일심동체. 일단 껍데기 속에 들어가 버리면 그곳은 내게 '안주'의 땅이다.

달팽이 식당은 손님을 하루에 한 팀만 받는다. 전날까지 손님과 면담 혹은 팩스나 메일로 대화를 주고받아 무엇이 먹고 싶은지, 가족 구성은 어떤지, 장래의 꿈을 무엇인지, 예산은 어떤지 등을 상세하게 조사한다. 그 결과에 따라 그날의 메뉴를 생각한다. 

식사 시작은 되도록 저녁 여섯 시부터로 한다. 식당 안은 모두 금연, 음악은 틀지 않는 것이 규칙이다. 

판타지

이 책은 무심코 읽다 보면 당연시한 사실이라고 생각하며 넘겨버릴 수 있는 포인트들이 많다. 

이 책은 엄연히 판타지다. 

작은 산골 마을에 온갖 식재료가 육해공을 가리지 않고, 있어야 할 것은 다 있고, 없어야 할 것은 없다는 점. 

린코가 한식, 일식, 중식은 기본이고 전 세계의 요리를 만들 수 있다는 점 등이다. 

눈 뜨고 코 베이지 않으려면 정신을 단디 차리고 읽어야 한다. 

반전

린코는 사실은 처녀가 임신해서 낳은 아이다. 

엄마에게는 고교 시절에 사귀었던 일 년 선배인 약혼자가 있었다. 선배는 의학부에 진학했는데, 엄마가 대학 진학 후 약혼자의 집에 찾아갔을 때는 이미 이사를 간 뒤였다. 

엄마는 일시적인 연애로 상대를 골라 정자를 물총에 담아 구멍에 넣고 쭉 쏘는 물총 정자로 임신했다.

현재 엄마는 암에 걸렸고, 앞으로 몇 개월밖에 살지 못하며, 담당 의사가 그 선배다. 

첫사랑을 만난 것이다.

반전의 반전

엄마는 린코에게 피로연을 부탁한다. 

이참에 엘메스를 먹어 버린다고 한다. 엄마가 없어지면 엘메스도 슬플 테니까. 

린코는 엄마에게 엘메스를 요리로 세계 일주를 선물한다. 

하이라이트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엘메스의 마지막 순간이 아닐까 한다. 

잔혹하지만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상황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순간이 아닐까. 

엘메스는 프랑스풍 미미가 샐러드로, 미얀마의 채이오로, 오키나와의 데비치로, 프랑스의 포토푀로, 이탈리아풍 탕수육으로, 월남쌈으로, 튀르키예의 피망돌마로, 러시아의 피로시키로, 아메리칸 스페어립으로, 중국풍 쟈오옌파이구로 모습을 바꾸었다. 

엘메스의 뜻은 명품 브랜드가 아니라, 돼지 품종을 나타내는 '랜드레이스(Landrace)'의 'L'과 여자라는 뜻의 '메스'를 합쳐서 만든 조어다. 

톡톡톡

덤덤하게 읽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부분의 책장을 넘겨갈 즈음에 나도 모르게 눈물 몇 방울이 떨어졌다. 

가족 이야기가 나오면 공감하며 눈물짓게 되는 것은 인간이라면 숨길 수 없는 본성인 것 같다. 

따꼼한 주사기 바늘처럼 내 마음의 한곳을 콕 찌르고 갔다. 

목소리를 되찾은 린코

엄마가 돌아가시고, 식당도 문을 닫고 무기력하게 지내던 린코는 엄마가 남긴 편지를 발견한다. 

우연히 죽은 비둘기를 발견하고 들비둘기구이를 만들어서 먹고 난 후 소리가 돌아온다. 

사연 많은 손님들

구마 씨

시뇨리타가 딸을 데리고 마을을 떠났다. 달팽이 식당에서 석류카레와 아메리칸커피를 먹고 난 후 시뇨리타가 집으로 돌아왔다.

첩 할머니

상대 남자가 세상을 떠나고 상복만 입기 시작했다. 달팽이 식당에서 개다래나무주 칵테일, 사과겨된장절임, 굴과 옥돔 카르파초, 삼계탕, 어란리소토, 새끼양고기구이와 야생버섯마늘소태, 유자셔벗, 마스카르포 티라미수, 에스프레소커피를 먹었다. 상복이 아닌 옷을 입고 외출하고, 지팡이도 짚지 않고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모모양

달팽이 식당에서 계절 야채로 만든 수프(일명 주 뗌므 수프)를 먹고, 사토루와 서로 사랑하게 됐다. 

고즈에

거식증에 걸린 토끼를 도와달라고 데리고 왔다. 달팽이 식당에서 코코아, 마롱글라세, 몽블랑, 얼그레이 홍차를 먹고, 엄마가 토끼 키우는 걸 허락해 줬다. 

항상 TV에 나오는 맛집들은 우리집 근처에는 없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내가 사는 곳 근처에도 달팽이 식당이 있다면 당장에 그 문을 열고 들어가서 주인장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받았을 텐데 너무 아쉽다. 

이 참에 나도 모르게 지나쳤을지 모를 우리 동네 달팽이 식당을 찾아보아야 겠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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