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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처방전 노란 잠수함 6
정연철 지음, 김규택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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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란 말을 요즘 아이들의 심리를 반영해 풀어낸 점이 신선했다.
회장선거, 경시대회, 학예회 등 각종 압박에 시달리고 친구와 비교 당하니, 우리 아이들은 똥이 마렵지 않아도 배가 아플 수밖에 없다. 마음껏 친구를 축하하거나 칭찬해줄 수도 없다.

예전에 같이 수업하던 아이 중에 책 속에 나오는 준동이 같은 아이가 있었다. 그 친구는 평소 발표도 잘하고 수업 준비도 잘 해오는 성실한 친구였다. 그런데 어느 날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자 소리를 지르고 친구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이후, 아이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성적 압박을 겪는다고 털어놓았다. 어른들이 아이들의 마음을 너무 모르고 있었구나 싶어 반성했다.

이 책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학부모나 교사가 읽어 보았으면 좋겠다. 나도 혹시 이 책의 엄마처럼 아이를 병들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아이’로 만들면서 천사 같은 표정을 지으며 ‘친구가 상을 타면 축하해야지’라는 이율배반적인 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닐지 말이다.

이 책을 끝까지 읽으면서 ‘엉터리 처방전’이더라도 주인공 아이가 자유로워지고 엄마가 생각을 고쳐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야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릴 것 같았다. 하지만, 엄마는 여전히 아이를 압박할 것 같고 주인공은 배가 아플 것 같다. 그래서 더 우리 현실이 씁쓸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다행인 건 주인공이 친구의 아픔에 공감하고 친구가 땅을 사도 박수쳐줄 마음이 생겼다는 거다. 우리 모두 불쌍한 인생이야. 그러니 우리 끼리는 서로 미워하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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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관희 선생님이 번역한 <맹자>의 서두에는 이런 글귀가 나온다.

 

 "스승인 공자와 마찬가지로 맹자 역시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다."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면서 가슴의 전율을 느꼈다.

 그는 얼마나 많은 길을 걸었을까?

 자신의 이상을 펼치기 위해 제나라의 왕을 찾아가는 길에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3년 상을 치르기 위해 고향으로 가는 길엔 어떤 마음이었을까?

 자신의 정치를 받아 줄 제후를 만나지 못하고 유세의 꿈을 접고

 돌아오는 길에 그는 또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서두를 맹자로 거창하게 시작했지만, 맹자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오늘 오랜 만에 세계테마기행을 보면서,

얼마 전 읽은 맹자의 글귀가 함께 떠올랐을 뿐이다.

 

세계테마기행은 장수 프로그램이다.

 2008년 2월부터 시작했으니 '페루'를 3~4번도 더 갔을 것이고

 가까운 동남아는 그 이상을 갔을 것이다.

 늘 대자연의 경의를 만나고, 대자연 속에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고

 역사 이야기에 시장은 곁다리로 꼭 들어가고....

사실, 한번 씩 세계테마기행을 볼 때마다 참 지루함을 느끼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 세계테마기행 '페루' 편은 달랐다.

 그래, 세계테마기행 죽지 않았어, 란 말이 터져나왔으니.

 여행을 하는 '구광열' 교수의 살아있는 맛깔나는 표현과

  적지 않은 나이에도 온 몸을 불 사르는 열정, 넉넉함이

 잔잔한 프로그램에 흥을 돋우니 말이다.

 <세계테마기행 홈페이지에서 퍼온 그림>

 그리고, 1편에는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를 거의 15분 정도 보여준 듯하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대낮, 보통 사람이 평생 꿈꾸는 사막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보고(걷고, 풍경 보고, 썰매 타고, 자동차 트래킹하고)

 사막 위에서 황홀한 저녁노을을 보고 캄캄한 밤을 사막 위에서 맞으니 말이다.

 

 이 장면을 보면서, 앞으로 세계테마기행에서 이곳 사막도시를 또 갈일은 없겠구나 싶었다.

 여행의 참맛은 그 도시에 아침과 점심과 저녁과 밤 모두를 다 느껴봐야 되는 것.

 이것이 세계테마기행이 이렇게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래 세계테마기행에서선 수없이 길을 걷는 여행자가 등장한다.

 

 오래 전, 세계테마기행을 보면서 내 마음을 빼앗은 건

 길 위의 수많은 사람들이었다.

 머나먼 아프리카땅, 어떤 이방인도 찾아올 것 같지 않고

 이름없이 묻힐 것 같은 사람들이 있는 곳...

 그곳에서 소를 모는 목동은 소 수십 마리를 이끌고

 소를 시장에 내다팔기 위해 꼬박 며칠을 걸었다.

 고작 열댓살이었을 텐데...

 그때도 나는 저 소년은 저 많은 소떼를 몰고 며칠을 걸으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였다.

 

 뭐, 그 소년은 단지 이 지루한 길의 목적지가 빨리 보이기만 기다릴 수도 있다.

 학창시절 나도 학교를 갔다 집에 가는 길 위에서

 끝나지 않은 지루함과 고단함을 느꼈으니 말이다.

 인생의 무게가 적었기에 단지 길이 지루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두살을 더 먹고

 삶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깨져 보고 방황하고 막막함을 느끼다보면

 길 위에선 늘 많은 생각이 뒤따른다.

 그리고 숨겨진 은유의 잎사귀, 돌부리를 찾게 된다.

 

 나이 먹으면 소설이 절로 써지더라 하는데...

 나이 먹으면 여행은 문학이 되더라...

 

 나의 길 위의 여행과

 구광열 교수의 길 위의 여행과

 맹자와 공자의 길 위의 여행이 같을 수 없지만

 '길 위의 여행'이란 말은

 참 서글프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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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주말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이유인 즉슨, 돌잔치 업체를 운영하는 동생이 아르바이트생을 구하지 못할 때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그날도 대형 연회장에서 동생과 함께 돌상 세팅을 끝내고, 돌잔치를 치를 부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액자 사진 속 부부는 삼십 대 중후반처럼 보였다. 이런 경우, 둘 다 직장에서 어느 정도 직책을 갖고 있거나, 한쪽이 전문직일 경우가 높다.(그냥 나의 생각)


드디어 아기를 안고 부부가 들어왔다. 아빠는 사진보다 더 큰 체격에 목소리도 우렁차고 호탕했다. 풍기는 모습과는 다르게 오자마자 아기 기저귀를 척척 갈고, 행사 전반에 대해 체크했다. 보통은 엄마가 돌상을 예약하고 꼼꼼하게 행사를 챙기는 경우가 많다.

전날 일로 제주도에 다녀온 엄마는 돌잔치고 뭐고 마사지를 받고 싶다는 둥, 남편이 없으면 돌잔치도 못 치뤘다는 둥 자신은 이런 복잡한 것엔 신경쓸 틈이 없는 사람인데, 이런 바쁜 와중에도 많은 손님들을 불러모아 돌잔치를 할 수 있는 건 다 '자상한 남편' 때문이란 이야기를 했다. 그러니까 남편 자랑이었다.


손님이 오시기전에 마지막으로 행사장을 둘러보시는 아버님. 죽 둘러보시다가 뒷자리에 뒤집어놓은 의자를 발견하시고는 이걸 이렇게 해놓으며 되냐며, 다들 자기일 아니라고 이렇게 일할거냐며 손수 의자를 똑바로 놓기 시작했다. 그 말이 화를 내거나 짜증이 아닌, 웬지 회사 과장님이 여직원들에게 핀잔 주면서, 솔선수범하는 그런 모습이었다. 연회장 직원이 할 일을 아버님은 자기 일처럼 아무렇지 않게 아주 편하게 하셨다.


우와~ 나도 이런 남편을 만나면 참 좋을 것 같았다. 부인에게 참 자상하고, 직장에선 아주 일 잘하고 성격좋은 과장님 포스가 풀풀 풍기는 그런 사람.

더욱이, 그 전에 함께 일한 상사가 극도로 책임감을 회피하는 사람이어서 질릴 대로 질려서 그런지 이 아버님 같은 상사와 함께 일한다는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암튼, 그렇게 돌잔치는 시작됐고 문제는 뒷정리를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동생이 다른 돌잔치 행사 때문에 뒷정리를 나에게 맡긴 것. 돌잔치 하이라이트 돌잡이 이벤트가 다 끝나고 나는 돌상을 치우기 시작했다. 아직 자리엔 많은 손님들이 있었지만, 나는 행사가 끝났다는 생각에 돌상을 정리해 버린 것이다. 그때, 갑자기 포토그래퍼가 다가오더니 가족사진도 안찍었는데 돌상을 치우냐고 했다. 그리고 아버님까지 오시더니 원래 이렇게 가족사진도 안 찍고 돌상을 치우냐고 하셨다. 몹시 당황한 나는 돌상을 다시 차릴까요....라며 어쩔 줄을 몰랐다.

당황한 내 모습을 봤는지 아버님은 "자 그럼 이렇게 합시다. 그럼 이미 돌상을 치웠으니 어쩔 수 없으니 현수막만 잘 정리해서, 그 앞에서 사진을 찍자"고 하셨다. 컴플레인이 들어왔을 수도 있었지만, 아버님은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바로 상황을 정리하셨다.


역시, 멋진 아버님이셨다. 난 다시 한번, 멋진 과장님의 모습을 봐 버렸다.

위기 상황에서 후배들이 어쩔 줄 모를 때, 재빠르게 플랜B를 꺼내 위기를 넘기는 리더십과 능력을 소유한 과장님....정말 어느 여자 후배들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랴~


사실 우리 주변에, 사회에 이런 멋진 과장님은 보기 쉽지 않다. 지난 한해 우리가 세월호라는 엄청난 사건을 겪으며, 대통령을 포함한 사회 리더들에게 바랐던 건 위기 상황에서 남탓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사건 속에 뛰어들어 시기적절하게 플랜B를 꺼내드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세월호는 멋진 리더가 없었고 골든타임을 놓친 채 가라앉아야 했다.


한때 리더십과 관련된 다양한 책이 나온 적이 있었다. 카리스마형 리더십, 부드러운 리더십 등등. 암튼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리더는 어떤 상황에서도 책임 회피 하지 않고, 아랫사람이 식은땀을 흘릴 때 망설이지 않고 플랜B를 꺼내드는 사람이다. 물론 거기서 성격 파탄에 까칠하면 안 된다. 호탕하게 잘 웃는 마음 너그러운 사람.


글을 쓰고 보니 나도 이제 선배의 자리다.

그런데 난 플랜B를 멋있게 꺼내드는 선배였을까...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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