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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스페셜 에디션)
박민규 지음 / 예담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대학생 때 박민규 작가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재미있게 읽고 전혀 관심 없던 야구를 보기 시작했고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더블>까지 읽었는데 그 이후 작가의 활동도 뜸했던 탓인지 다른 소설은 읽지 못했다. 그러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리커버 에디션이 나와서 다시 읽게 됐는데 너무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줄거리가 전혀 기억나지 않아 두 번째 읽는 것인데도 처음 읽는 것 같았다. (지겹지 않고 좋은 건가?) 게다가 사실 원래 책 표지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리커버 에디션은 핑크색의 하드커버의 여심 저격하는 표지라 눈에 들어왔다. 인터넷 서점 구매율이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높다고 하니 여성의 취향에 맞는 표지가 책 판매에는 더 좋을 것 같기도 하다.
오로지 집에서 푹 자고 맘껏 먹고 읽고 싶은데 쌓아만 두었던 책들 읽고 완결되면 보려고 참았던 <비밀의 숲> 보려는 계획으로 일주일간의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다. 여름휴가의 첫 번째 책으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읽었는데 8년 전에 읽었던 책이 맞나 싶을 정도로 똑같은 책을 대하는 '나' 자신이 많이 달라졌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무명의 배우였던 주인공 '나'의 아버지는 고정적인 경제활동 없이 집에 있는 전신 거울 앞에서 연기 연습을 하고 때때로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볼 때, 어머니는 식당에 나가 일을 하며 가장 역할을 했다. 빠듯한 생활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연기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턱없이 비싼 비디오를 사온다거나 느닷없이 춤이나 노래를 배우러 다닐 때 어머니는 현실을 해결해야 했다. 그리고 미남이었던 아버지에 비해 뒤에서 사람들이 수군거릴 만큼 어머니는 펑퍼짐하고 아버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박색이었다. 그러다 아주 우연한 기회로 아버지는 인기 스타가 되었고 집에 오는 횟수가 줄어들더니 탤런트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티비를 통해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지닌 '나'는 열아홉 살이 되어 백화점에 취직하면서 '그녀'를 만나게 된다.
입사할 때부터 봐왔지만 아무도 '그녀'의 이름을 모르고 일을 잘하는 것과 상관없이 점점 더 지하로 내려가 일을 하게 되고 동료가 아닌 연인으로서 함께 걷는다면 떨어져 걷거나 부끄러워 얼굴을 돌린다에 월급을 걸 정도로 추하고 못생긴 여자였다.
그런데 '나'는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어울릴 것 같진 않았던 나와 그녀가 퇴근 후에 함께 치킨과 맥주를 먹고 가끔 영화도 보며 가까워지고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그녀의 외모에서 비롯되는 낮은 자존감과 현실의 벽으로 인해 헤어지게 되고 결국 재회하게 되지만 비극적인 사고를 맞이하는 극적인 스토리와 더불어 생각지 못했던 결말과 반전으로 이야기는 쉼 없이 달려간다.
이 책의 화자인 '나'의 이야기가 촘촘히 전개됨과 동시에 '나'의 생각과 감정이 설명되고 묘사되는 부분은 어쩔 수 없이 작가의 생각으로 읽히게 되는데 아마도 '내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실감 나게 쓰는 작가의 능력인 것 같다. 이렇게 느껴지는 것은 생동감이라는 장점도 있지만 너무 작가의 말 같아서 적당히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내 입장에선 장점으로만 다가오진 않는다.
특히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선 못생긴 여자였던 어머니, 못생긴 여자였던 그녀인 그들의 암울한 삶은 '못생김'에서 비롯됐다는 전제가 너무 불편했다. 얼굴이 예쁜 여자는 상처 없이 살아왔기 때문에 상처를 받더라도 살아갈 수 있지만 상처를 가진 못생긴 여자는 살아가는 일 자체가 힘들다는 구절, 못생긴 여자는 항상 어둡고 자신감 없고 사회에서 차별받는 존재로 그린 점, 예쁜 여자는 자신의 미모를 무기로 이용해서 살아가는 그런 종류의 사람으로 묘사한 점을 읽으면서 외모를 향한 작가의 시선을 여실히 알 수 있었다.
나 역시 이 사회가 외모지상주의의 단면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못생긴 여자는 으레 그럴 거라는 확신에 찬 어조와 그와 더불어 예쁜 여자에 대한 묘사도 그 미모를 이용하는 속물적인 존재로 그린 것엔 동의할 수 없다. 그럼 못생긴 남자는? 이란 의문이 들고 못생긴 여자는 용서할 수 없고 못생긴 남자는 괜찮다는 말인가? 삐딱한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작가의 말에서 '인류는 단 한 번도 못생긴 여자를 사랑해주지 않았습니다'라고 고백한 것처럼 이 책을 읽고 못생긴 여성에 대한, 추함에 대한 작가의 차별적인 생각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소설과 그 소설을 쓴 작가의 적당한 거리감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야기의 재미와 상관없이 읽는 게 불편했다면 프로불편러인가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