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일요일들 - 여름의 기억 빛의 편지
정혜윤 지음 / 로고폴리스 / 2017년 6월
평점 :
품절



최근에 출간된 <인생의 일요일들>까지 정혜윤 작가의 책을 8권이나 읽었다. 한 작가의 책을 8권이나 읽었다는 건 그 작가의 확실한 팬이라는 것이고 작가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혜윤 작가의 글 쓰는 영역은 꽤나 넓어서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뜨거운 독서생활에서 나오는 책 이야기, 런던, 스페인 여행기, 사회에서 알아주기를 바라며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절대 평범하지 않다. 나는 이것이 작가만의 특별한 감수성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일요일 아침. 우리는 익숙한 이불, 냄새, 온기, 사랑하는 가족의 촉감, 창밖으로 들리는 희미한 거리 소음, 눈꺼풀 위로 일렁이는 햇빛, 읽다가 접어둔 책, 마시다 만 컵, 편안함을 주는 사물들에 둘러싸여 있다. 그때 발가락만 꼼지락거리면서, 반쯤은 꿈결 속에 있는 것처럼 이렇게 말할 것이다. "조금만 더 이렇게 있을래. 깨우지 마!" 혹은 정반대로 낯선 곳에서, 익숙한 것과 멀리 떨어져서 전보다 훨씬 고독해진 상태일 때 이와 똑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우리가 영혼 안으로 받아들인 무엇인가가 우리를 그렇게 만든다. 우리는 그 시간 속에서 새로운 힘을 얻는다. "아, 참 좋다. 이렇게 조금만 더 있으면 좋겠어." 
(인생의 일요일들 p.7)


아무도 없는 일요일 오전(울 집 강아지 여름이 빼고) 늦잠자고 일어나서 간단히 밥을 먹고 혹시 금방 배고파질까 봐 복숭아 한 알까지 먹고 샤워하는 동안 커피를 내리고 젤 큰 유리컵에 얼음 꽉꽉 채워 넣은 뒤에 커피를 부어 아이스커피를 만들었다. 막 씻고 나와 순간 뽀얗게 보이는 얼굴에 팩을 올리고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인생의 일요일들>의 첫 페이지를 넘겼다. 위의 구절을 읽으면서 지금 나의 시간과 같은 느낌을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 집은 산골에 있어서 거리 소음 대신 새소리가 거슬리지 않을 만큼 들리는 것이 딱 하나 다른 점이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더라도 다양한 사람만큼이나 다양한 감정과 깨달음이 있기에 때론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가' 가느냐가 더 중요할 때가 있다. 그리스를 여행한 이야기를 특정한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 것인데, 책을 읽는 동안 편지를 받는 사람은 나로 느껴진다. 여행에서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얼마나 많은 곳을 다녔는지, 얼마나 맛있는 음식을 먹었는지 이런 흔한 소회가 아니라 여행을 하는 현재 속에서 내 생각의 흐름대로 편지를 쓴 것 같아서 아무 곳에 나 앉아서 저 멀리 바라보고 있는 사람의 옆에 앉아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은 경험을 했다. 


어떤 때는 뭔가에 발이 걸려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도 좋은 일 같아요. 그때 강제로라도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되니까요. 오늘 저는 생각이 많습니다. 오디세우스의 고향 이타카는 과연 도착할 수 있을지 고뇌에 들끓게 하는 목적지지만 그렇다고 장소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에요. 이타카는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마술에도 걸리지 않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늘 그리워하면서 바라보고 움직이는 '방향'이에요. 
다른 세상이 아니라 '다른 삶'이라는 생각이 지금으로선 제게 '이타카'예요. 그냥 놔두고 죽으면 후회할, 고쳐야 할 단점은 너무나 많아요. 사소하게나마 시작할 수 있는 일도 그런 단점만큼이나 많아요. 이 생각이 없다면 저는 일요일을 풍요롭게 보내고도 월요일 아침을 제대로 시작하지 못할 거예요. 
(인생의 일요일들 p.212)


단점 많고 고민 많은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앞이 아닌 다른 방향을 잠깐 보고 '다른 삶'을 생각하며 나의 '이타카'를 찾고 있다. 언제쯤 찾을 수 있을지, 언제쯤 도착할 수 있을지 끝없는 생각으로 채운 일요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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