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일요일 오전(울 집 강아지 여름이 빼고) 늦잠자고 일어나서 간단히 밥을 먹고 혹시 금방 배고파질까 봐 복숭아 한 알까지 먹고 샤워하는 동안 커피를 내리고 젤 큰 유리컵에 얼음 꽉꽉 채워 넣은 뒤에 커피를 부어 아이스커피를 만들었다. 막 씻고 나와 순간 뽀얗게 보이는 얼굴에 팩을 올리고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인생의 일요일들>의 첫 페이지를 넘겼다. 위의 구절을 읽으면서 지금 나의 시간과 같은 느낌을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 집은 산골에 있어서 거리 소음 대신 새소리가 거슬리지 않을 만큼 들리는 것이 딱 하나 다른 점이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더라도 다양한 사람만큼이나 다양한 감정과 깨달음이 있기에 때론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가' 가느냐가 더 중요할 때가 있다. 그리스를 여행한 이야기를 특정한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 것인데, 책을 읽는 동안 편지를 받는 사람은 나로 느껴진다. 여행에서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얼마나 많은 곳을 다녔는지, 얼마나 맛있는 음식을 먹었는지 이런 흔한 소회가 아니라 여행을 하는 현재 속에서 내 생각의 흐름대로 편지를 쓴 것 같아서 아무 곳에 나 앉아서 저 멀리 바라보고 있는 사람의 옆에 앉아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은 경험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