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문학과지성 시인선 460
이제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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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이라 부르면 안심되는 마음(삶은 달걀 곁에)은 '가장 큰 정사각형이 될 때까지'와 만난다. 계란이라는 말은 그것이 닭의 알이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그것이 시인은 불편했던 것이다.

닭의 알을, 태어나지 못한 생명을 취하는 것 같았을 것이다. 새가 되지 못한, 새가 될 수도 있었을 어떤 것을. 시인의 언어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은 '가장 큰 정사각형이 될 때까지'의 '알을 깨고 나오지 못한 저것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거냐. 저 알 속에서, 저 어둠 속에서. (어둠 속에서 얼굴 없이 죽어가는 저 깃털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자랄 수 없고, 자라지 못하는 것들. 그래서 때로는 '쓸모없음'으로 쉽게 분류되어버리는 어떤 것들. 그것을 취하는 어떤 삶. 지우개는 발이 없고 달걀에도 발이 없고 지우개는 지우고 지우개처럼 삶은 닳아 없어진다. 매일 조금씩 닳고 닳는다. 그리고 우리는 잊혀지고 잊고 또 잊혀진다.

 

계란은 달걀로 순화해서 써야 한다고 네이버 국어 사전은 내게 가르쳐주었다. 시인의 언어는 달걀과 계란 사이 어디쯤을 건너간다. 겹겹이 쌓인 마음을 꺼내 시인은 시를 썼고 자신만의 문장을 만들었다. 살아있음으로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처럼, 진실은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는 듯이, 있음으로 그저 살아있음으로 죽음을 건너갈 수 있다는듯이. 삶은 지우개처럼 닳아 마모되지만, 우리가 가는 길이 결국 죽음으로 향해 가는 길일지라도, 삶이라 이름 붙은 이 아름다운 길을 건너갈 수 있다는듯이.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기 때문이다. 삶에 대해 말하기에는 삶에 대해 모르기 때문이다. 그저 태어나 존재하고 있는 그 자리에서 들숨과 날숨을 내뱉으며 다만 걷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저 존재함으로 인해 다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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