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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 잔혹동화 속 문장의 기억 (양장본) - 선과 악, 현실과 동화를 넘나드는 인간 본성 ㅣ Memory of Sentences Series 2
박예진 엮음,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원작 / 센텐스 / 2024년 5월
평점 :
동화는 누구에게나 어렸을 적 재미있고 즐겁게 읽은 책이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의 동화는 누군가 지어진 이야기라기 보다는 어린시절을 가득 채워준 또 다른 세상이었던 것 같다.
현실에서는 아직 겪어보지 않은, 겪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포함되어 있는 꿈이 있는 그런 세상.
그렇기에 세상을 잘 알지 못할 나이임에도 동화를 읽으며 서툴지만 세상이 어떠한지를,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알게 해주는 나침반의 역할을 동화가 해주었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런 동화 중에서 안데르센의 동화는 단연 상상의 나래를 펼쳐준 이야기 중의 이야기였다. 따듯하고 감동적인 이야기..
그런 안데르센의 동화가, 우리가 아는 내용이, 사실은 어린이들을 위해 각색된 것이고 실제는 잔혹한 내용들이 있다는 것을 어른이 된 후에 알게 되었다. 하지만 선뜻 안데르센의 원본을 읽고 싶지는 않았다. 어린 시절의 소중한 기억이 조금이라도 훼손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나 할까. 원작의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안데르센의 잔혹동화 속 문장의 기억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잔혹이라는 문구보다, 선과 악, 현실과 동화를 넘나드는 인간 본성이라는 소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안데르센이 누군가의 호기심을 위한 2, 3류의 자극적인 이야기를 지어낸 것이 아닌 안데르센이 처한 그 시대적 상황과 자신의 내면을 비춘 이야기를 만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자, 그동안 내가 만든 시선의 벽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렇게 좀 더 어른의 시각으로 안데르센의 동화 속으로 다시 들어가게 되었다.
이 책은 총 16개의 동화가 나온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동화의 제목도 많이 나온다.
빨간 구두, 인어공주, 외다리 병정, 눈의 여왕, 미운 오리 새끼, 성냥팔이 소녀 등등
어렸을 적 정말 재미있게 읽고, 애니메니션으로도 많이 봤던 친숙한 그때 그 이야기들.
그래서인지 동화들을 한편 한편 읽어 나갈 때마다 만감이 교차했다.
그래 이 동화는 이런 이야기였지 하며 오래된 추억의 사진을 보는듯한 나의 오랜 기억들이 하나 하나 온몸으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때의 그 기억과 그 느낌들.. 갑자기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그렇게 추억의 감상도 잠시, 읽다보면 어느새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닌 진실의, 좀 더 진지한 세상이 읽혀진다. 어른의 시각에서 바라 본 안데르센의 그 숨은 이야기 말이다.
생각보다 자극적인 용어가 많이 나오지는 않았다. 중세 유럽이나 산업혁명의 시대를 표현하는 소설에서나 나올법한 특유의 우울함들이, 그 시대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작가는 더욱 선명하게 각각의 동화에 대해 어떠한 시대였는지, 사람들의 처한 상황이 어떠했는지, 당시 안데르센이 어떠한 가정과 부모와 사회 생활을 했는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그것이 점점 더 이야기에 빠져 들게 만든다.
인어공주가 안데스센이 좋아하는 동성으로부터 거절당한 그 아픔으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라니 약간은 충격적이었다.
성냥팔이 소녀가 그 시대 열악한 성냥공장에서 어린 소녀들이 일하다가, 유독물질에 서서히 목숨을 잃던 슬픈 이야기라니 동화가 아닌 현실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져온다.
다리 한짝이 없는 병정 인형이 고난과 역경을 겪고 결국 불속에 던져지는 최악의 상황에서 짝사랑하는 발레 종이 인형이 바람에 날려 같이 화로속에서 하나의 사랑의 징표로 태어난다는 그 아름다운 이야기가 사실은 안데르센이 받은 사회의 규범과 소외, 차별에서 나온 고통과 희망에서 나온 이야기라고 하니 한꺼풀 더 안데르센에게 가까이 가는 느낌을 받는다.
처절한 상황과 인물의 상황들이 역설적이게도 동화의 형태로 표현되어 미래의 세상은 희망과 사랑과 용서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졌으면 하는 안데르센의 바램이 담긴 것이 아닐까. 잠시 안데르센의 간절한 소망이 아련해진다.
이 책은 동화의 내용도 있지만 주요한 내용은 원본의 영어도 같이 실어주어 좀 더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다. 이렇게 340개나 되는 주요 문장을 읽다보면 동화의 생상한 장면이 마치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작가의 배려가 돋보인다.
재미와 함께 감동, 거기에 더 깊은 여운을 남겨주는 이 책을 지금이라도 접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어린이의 세상에서 어른의 세상으로 한 발 더 나아가게 해준 고마움이 더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