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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
천운영 지음 / 창비 / 2011년 3월
평점 :
김치를 먹다보면 가끔 생강을 씹을때가 있다. '윽'소리와 함께 생강을 내뱉으며 엄마에게 왜 김치에 생각을 넣었냐며 궁시렁거리기도 했었다. 그땐 몰랐었다. 생강이 김치에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가를...
천운영의 장편소설인 <생강>은 사실 실제 생강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내용이다. 이 소설의 내용은 남북 관계가 긴장에서 평화로 변하면서, 국민의 영웅인 빨갱이 잡던 경찰에서 악마같은 고문기술자인 도망자 신세로 전락하게 된 어느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딸이 겪는 이야기가 중심이다. 도망자인 아버지가 자신의 보금자리였던 엄마의 미용실 다락방에 숨어살게 되고, 아버지가 벌였던 행동들을 알게 되고, 그로인해 사랑과 우정을 잃게 되고, 아버지를 찾는 사람들로부터 고난을 당하게 되면서, 과거 위대했던 아버지가 점점 나약하고 야비해지는 모습을 보게되면서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계속 커져가는 딸이 모습을 그려냈다.아버지가 밉지만, 누가 아버지를 찾아내기를 원하지만, 자신이 아버지를 신고할 수는 없었던 딸... 이러한 상황을 소설내에서는 과거 딸의 친구인 진이의 돈으로 하루종일 놀고 난 이후에 그 돈이 도둑질한 돈인 것을 알았을 때와 대응시키고 있다. 자신은 잘못이 없지만 이미 진이의 공범이며 한배를 탓다고 생각하고 끝까지 의리를 지켰던 딸이 자신은 잘못이 없지만 아버지와 공범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아버지가 밉고 싫었지만 끝까지 아버지를 배신?하지는 않는 딸을 그려낸 것이다.
그러한 아버지가 딸에게는 김치의 생강과도 같은 존재가 아니였을까? 생강을 싫어해 김치를 먹을 때는 혹시나 먹을까하고 골라내면서 먹고, 혹시나 먹기라도 하면 얼굴을 찌푸리며 뱉어내지만, 그렇다고 김치의 맛을 내기위해서 중요한 존재인 생강... 아버지가 밉고 싫어서 빨리 자수를 하던지 발견을 당하던지 했으면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과 엄마에게 중요한 존재인 아버지...
이 글을 읽으면서 우리 시대의 아버지상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점점 말도 안듣고 자신에게 무엇인가 불만이 있는 듯한 딸과 친해지기 위해 이런 저런 장난을 걸어보기도 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딸에게는 더욱더 짜증나는 일일 뿐이다. 아버지위 권위를 잃어버린 아버지는 아버지가 아닌 가? 나를 낳고 잘 길러주신 은혜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가? 그렇다고 아버지의 그 악행들을 덮어야만 하는가?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소설에서는 마지막 장으로 해결하려 한 것 같다.
이 소설을 읽는 또 다른 재미는 상황에 대한 생생하고 자세한 묘사와, 인간의 심리를 표현하는 문장들을 읽는 묘미이다. 특히 초반 고문 장면에 대한 묘사나, 갱생원과 폐가에서의 심리 묘사는 마치 주인공이 내 앞에서 행동과 생각을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또, 초반에 지나가는 듯이 나오는 인물과 장소가 소설 말미에 그것이 단순한 인물이나 장소가 아니였음을 알려주는데 이것 또한 이 소설을 읽는 재미의 한 요소이다. 천운영의 <생강>, 모처럼 재미있는 한국소설을 읽었다.